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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lin Jun 26. 2020

퇴사합니다

"퇴사하겠습니다."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빈 시간을 틈 타 팀장님 방문을 열어젖히고 얘기했다. 나의 다급함이 느껴졌을 것이리라. 주말 내내 머릿속은 퇴사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음이 기운지는 좀 오래되었다. 가게를 열었으니 제대로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달이 통장에 꽂히는 고정 수입을 포기할 자신이 없었다. 가게에서 얼마의 수익이 날 것인가 확신도 없었고... 그래서 조금만 버티며 병행하자 했던 것이 반년을 넘어가고 있었다.


올봄부터 이상 징후는 곳곳에 있었다. 잔 병치레 없이 살아왔다 자부했는데 걸핏하면 몸속 어딘가에 염증이 생겨 항생제를 달고 살았고, 내부의 상태를 반영하듯 얼굴도 하루가 멀다 하고 뒤집어지기 일쑤였다. 몸이 아픈 건 그래도 버틸만했는데, 문제는 내 정신. 나를 위한 온전한 시간이 단 하루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점점 궁지로 몰아넣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 시간을 쓰기 위해선 스케줄 없는 시간 중 일정 부분만을 쪼개서 할당하는 것이 최선이었으므로 언제나 충족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영화를 봐도 집중이 되지 않았고, 텍스트도 읽기가 버거웠다. 이 모든 게 몸도 마음도 지친 징후였을 것이다. 


계속 이상태로 살 수 없다는 판단하에 퇴사를 결심했다. 요즘처럼 퇴사가 흔한 시대에 그게 뭐 별건가 싶지만 그래도 막상 본인 입에서 퇴사를 말한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회사란 게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8할은 차지하고 있을 테지만 반대로 알게 모르게 그 울타리가 주는 안락함이 있고 먹고사니즘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 통장에 매달 일정하게 찍히는 숫자들은 또 얼마나 소중한가. 또한 다년간의 이직 경험으로 밖은 생각보다 더 춥다는 사실을 나는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다 알지만 그래도 저는 퇴사합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저의 앞 날이 저도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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