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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형 May 03. 2022

적폐 청산 재판 추적기(6) 오! 용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6화 오! 용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 <오! 수정>



김용판은 행정고시 출신이다. 





88 올림픽이 끝나고 경찰 선진화 방안으로 특채가 진행되자 경찰로 입문한다. 그곳에서 조현오를 만나 간부교육을 함께 받았다. 


조현오도 어릴 적부터 경찰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외무고시 선배인 허준영은 먼저 경찰이 됐다. 


그때는 다들 친했다. 


조현오와 김용판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른바 라인에서 갈린다. 경찰 조직에 외무고시 출신은 딱 두 명이다. 조현오는 허준영 라인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경찰청장이 된 허준영은 후배 조현오를 경무관으로 승진시켜 줬다. 그러나 조현오에게 모든 청장이 허준영일 수 없다. 




2009년 경찰청장 강희락은 조현오를 싫어했다. 하지만 김용판과 강희락은 고교 선후배로 절친한 관계였다. 


강희락은 김용판을 치안감으로 승진시켰고 조현오가 2010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되자 김용판을 서울청 차장으로 발령낸다. 


조현오는 당시 김용판이 ‘성과주의’를 비롯해 다른 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마치 강희락이 김용판을 통해 조현오를 견제하는 듯했다. 


강희락(좌)-조현오(우).시사저널 인용.

  


2010년 8월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된다. 김용판은 대구청장을 희망했지만 연고지 하나 없는 충북청장으로 발령받는다.  


조현오는 치안감 마지막 해에 김용판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였다고 회상했다. 부탁은 한 가지뿐이었다.

  

경찰 임기 마지막을 대구에서 하고 싶다며 간절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조현오는 김용판을 가장 돋보이지 않는 경찰청(본청) 보안국장으로 발령 낸다. 


‘자꾸 그놈(조현오)이 그러는 것은 니(김용판) 피를 말려 죽이려는 것이여.’  


이렇게 파국으로 치달았다.   






김용판은 이후 조현오를 따로 만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증인은 경찰청 보안국장 기간 중에 피고인과 독대해서 피고인으로부터 이 사건에 문제가 되는 댓글과 관련돼 지시를 받은 적 있었나요?” 
“저는 이 사건만이 아니라 독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김용판은 보안국장 시절 보안사이버수사대가 정부 정책에 우호적인 댓글을 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김용판이 보기에 정부 정책에 대한 댓글 작업은 조현오 지시인 게 분명했다.  


노컷뉴스 인용


김용판은 바로 댓글 금지를 지시했다. 


직원들도 위법성을 알기에 보안국장 지시를 핑계로 댓글을 달지 않았다. 






추락하던 김용판은 조현오 퇴직 후,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화려하게 영전한다. 


김용판에게는 이후에도 고비가 찾아왔다.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고 권은희 폭로가 발단이 돼 김용판은 직권남용으로 기소됐다. 하지만 무죄판결로 다시 살아났다. (오히려 애초에 무리한 기소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김용판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회의원 입성에 성공했고 문재인 정부 때 재선까지 성공한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앞세운 적폐 청산 증인이 됐다. 


김용판은 법정 증인으로 나와 피고인 조현오에게 살을 날렸다. 



하지만 검찰은 현혹되지 않았다. 


검찰은 조현오와 김용판을 한패로 봤고, 공소장 내용을 이렇게 만들었다. 


‘피고인(조현오)은... 여론 조작을 하기로 보안국장 김용판과 순차 공모하였다.’ 


김용판은 법정에서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안국장 시절 김용판은 조현오와 말도 섞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용판은 너무나 기가 막혀서 헌법소원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김용판은 분명히 보안국 직원에게 정부 정책에 우호적인 댓글을 쓰지 못하게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보안과장, 보안계장, 보안사이버수사대 직원 그 누구도 이러한 지시를 들었다는 사람이 없었다.   






김용판 씨 말대로 당시 보안국 직원들이 정부 정책에 우호적인 댓글을 달았다고 가정하자. 


이듬해 2012년 12월에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지고 난 뒤 '댓글 공작'이라는 말이 빈번히 쓰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보안국 직원들도 2012년 12월 국정원 댓글 사건 직후 자신들이 작성했던 정치적 댓글을 삭제하려 했을 법하다.  


하지만 정작 댓글을 지우려던 시점은 2018년 경이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을 내세우면서  경찰청 특별수사팀이 수사를 시작했을 때다.  






이러한 직원들 진술에 김용판은 이렇게 주장했다. 


“저는 진술을 다 봤습니다. 진술 거기에 ‘기억에 안 난다’고 돼 있습니다. 정확한 기억이 없다고 해서 팩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김용판이 강조하는 팩트는 보안국장으로 재임했던 4개월 동안 정부에 우호적인 댓글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용판은 한탄했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조현오 지시로 진행한 댓글 작업을 자신이 금지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타났다는 게 팩트다. 


검찰은 댓글 수가 적은 부분을 정상 참작하여 김용판을 기소유예 처리했다.   






그렇다면 김용판 진술 하나 때문에 보안 분야 댓글 공작에서 조현오가 기소가 된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경찰청 특별수사팀은 보안국 직원 나홍진(가명) 진술에서 미끼를 물었다.   



나홍진은 수사기관에서 “상부 지시를 받고 부하직원들로 하여금 정부 또는 경찰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 작업하도록 지시했다”라고 인정했다. 


이러한 보안국 직원 나홍진(가명) 진술은 김용판 주장을 뒷받침한다.  




나홍진은 보안사이버 분야 최고 전문가다. 


나홍진은 23년 사이버수사대에서 근무했고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경찰청 보안2과 3계장(보안사이버수사대장)이었다. 


조현오가 오기 전부터 보안국 댓글 활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같은 부서 직원은 일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승진 때문이면 요령껏 해도 된다. 무식할 정도로 새벽에 제일 먼저 출근하여 밤늦게 마지막으로 퇴근했다. 






보안은 적성국가를 감시하고 파악하는 업무이기에 IP를 노출하지 않는 게 기본이다. 애초에 신분을 당당하게 밝히면서 하는 일이 아니다.   


보안국 직원들은 자신을 숨기고 소문이 자자한 친북 사이트 <우리 민족끼리>, <조선중앙통신> 등을 살펴본다.  




그다음 이러한 북조선 사이트가 국내에 어떤 미끼를 던지는지 추적한다. 이런 미끼는 국내 여론을 현혹할 가능성이 컸다. 



보안국 직원들은 검색 키워드를 활용해 기사를 검색했다. 북한 사이트 주장이 국내 사이트에 번졌는지도 살폈다.  


보안 업무 영역은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보안 부서는 오랫동안 근무한 직원이 많다. 


보안국이 특정 게시물에 대해 대남 선전 내용을 그대로 인용했다고 판단하면 조치를 진행한다. 안보를 해치는 문건을 게시한 사이트는 삭제하거나 차단한다. 


그런데 삭제 또는 차단 조치하기 애매한 경우가 있다. 단순히 글 또는 댓글로 대남 선전 내용을 인용한 정도라면 간단하게 댓글 대응을 했다. 


한 보안국 직원은 이런 익명(비공식) 댓글 대응을 이렇게 생각했다. 


“2011-12년 보안사이버 요원으로서 업무를 하는데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일을 열심히 했고 그다음에 특히 친북 관련 불법 문건 삭제나 차단 이런 부분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있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법정에서 보안경찰관들은 북한이 자신들 신상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으며 유사시 가장 먼저 처단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댓글 대응은 국가 안보 위해 요소를 줄이고자 그전부터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일이었다. 


친북 사이트 게시글에는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반정부 글이 대다수였다. 댓글 게시는 이에 대한 당연한 대응으로 인식했다. 


보안국은 댓글 대응을 조현오가 경찰청장이기 전부터 했고 조현오가 퇴임하고 나서도 지속했다.  


활동 당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직원들은 단지 바쁜데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느냐며 투덜거렸을 뿐이다. 더군다나 성과에 반영되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홍진은 왜 경찰과 검찰 수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재판장도 그 이유를 물었다. 


“그때는 왜 북한 이야기를 한 번도 안 했나요?” 
“제가 그때 조사관들에게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부분에 보안에서 하던 부분들은 북한 대남선전에 대한 부분으로 우리가 대응하는 부분이었고 천안함 이야기를 분명히 하면서 천안함 자체가 정부 발표와 전혀 다른, 천안함 자작극이라는 북한 주장을 도배하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해나갔던 것이다.” 


하지만 나홍진은 수사관들과 말씨름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야생 버섯으로 인한 정신착란증’이 더 나은 설명이 될 듯했다.  




10년 사이 남북관계는 예전과 달라졌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문재인과 김정은, 두 정상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지역으로 갔다가 다시 남측으로 넘어왔다. 


jtbc 방송 인용


조사를 받던 나홍진은 수사관 질문에 이미 보안 업무가 시대 저편으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천안함 조작극이라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그게 무슨 잘못이냐?”        



(계속해서 다음 제7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오! 수정>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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