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ious
2018년 6월, 108년 역사상 처음으로 샤넬은 재무제표를 통해 매출을 공개했다. 약 96억 달러, 한화로 10조가 넘고, 이는 전년도보다 11.5%나 오른 수치이다. 루이비통이 108억 달러, 한화로 13조인 것에 비해 조금 못 미치지만, 여성복만을 주력으로 삼는 샤넬 패션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수치이다. 이러한 수치를 보고 왠지 모르게 궁금증이 생겼다. 샤넬이라면 그것도 몇십 년간 칼 라거펠트가 이끌어 왔고, 여성복에서 10조라면 남성복까지 했을 때, 더 많은 금액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왜 샤넬은 남성복을 만들지 않는 것일까?
샤넬이 남성복을 아예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매년 12월 정기적인 시즌과는 별개로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칼 라거펠트는 메티에 다흐라는 공방 컬렉션을 선보여왔고, 이때 남성복도 같이 선보였다. 하지만 많아야 네다섯 명의 남성 모델이 등장하고, 정기적인 컬렉션에서는 남성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2019년에는 퍼렐 윌리엄스와 콜라보레이션을 하여 후드와 백팩 등 캐주얼한 스트릿웨어 스타일의 캡슐 컬렉션을 발표했다. 오호라, 샤넬의 아우라를 입은 남성복이 나오는가 싶었는데 로고만 샤넬이지 전체적인 디자인은 샤넬이 아니었다.
2017년에는 샤넬이 남성복을 에디 슬리먼에게 맡긴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샤넬은 공식적으로 남성복을 런칭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러한 소문이 돌았던 것은 디올 남성을 담당했던 에디 슬리먼과 칼 라거펠트의 관계 때문이었다. 이 둘은 오랫동안 가까운 친구 사이었고, 라거펠트가 슬리먼의 락앤롤 디자인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칼 라거펠트는 에디 슬리먼이 디올 옴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을 때, 그가 만든 자켓을 즐겨 입었다. 또한, 슬리먼에게 프랑스 보그 커버를 찍어달라고 했을 정도로 친하다. 무엇보다도 가장 유명한 비화로는 디올 옴므의 옷을 입기 위해 칼 라거펠트가 엄청난 다이어트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서는 둘 사이의 우정(?!)과 당시 에디 슬리먼이 입생로랑과의 계약이 끝난 시점이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패션 언론사가 에디 슬리먼이 샤넬에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던 것은 상당히 논리적이다. 한편, 이러한 추측과는 관계없이 근본적으로 칼 라거펠트가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에서 남성 라인을 런칭했지만 왜 샤넬에서만큼은 남성복을 만들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도 샤넬은 주식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눈치를 볼 주주도 없고, 37년간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활동했다면 내키는 대로 남성복을 런칭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엄청난 자료조사 끝에 그 이유를 찾았다. 라커펠트는 남성복을 입기만 좋아하지 디자인하는 것은 싫어했다.
그가 실제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으니 반문할 수 없겠으나, 무언가 논리적인 이유를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2가지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먼저, 샤넬의 아카이브의 시작점에 여성이 있기 때문이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샤넬은 1913년 부티크를 오픈한 후, 코르셋이나 페티코트가 아닌 단순하고 편안하고 실용적인 여성복을 디자인했다. 이는 여성들이 자유롭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숨을 터주었는데, 이후에는 리틀 블랙 드레스, 주얼리, 트위드 소재의 샤넬 수트 등 여성의 아름다움도 동시에 드러내면서 여성들에게 자유를 선물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재미있는 점은 샤넬의 시작에는 남성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가 여성들을 위한 헐렁한 가디건을 개발했을 때, 남성의 니트 셔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남성 속옷에 사용되던 저지 천을 투피스에 활용해서 실용성을 더했다. 이처럼 샤넬은 남성복과 전혀 무관한 브랜드가 아니다.
객관적인 분석 외에도 필자는 샤넬이 남성복을 만들지 않는 이유를 지난 샤넬런을 보고 발견할 수 있었다. 5월 12일, 샤넬이 가격 인상을 하자 샤넬런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백화점 앞에 곧 오를 샤넬 제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런데 샤넬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가격을 올렸을까? 그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나 그보다도 샤넬의 브랜드 가치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길거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샤넬을 구매하고 있다. 백화점 어딜 가나 낮이건 밤이건 샤넬에서는 줄을 서야 하고, 그만큼 샤넬에 대한 관심도가 높고, 판매도 많이 된다. 하지만 샤넬이 여성복만으로도 10조가 넘는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나 못 가지고 있는 것'이 샤넬과 샤넬의 꾸준한 고객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복을 만들었다고 해보자. 먼저, 더 많은 남성복에서 SKU가 늘어나는 것은 샤넬에 대한 희소가치를 떨어뜨린다. 또한, 소비자의 경험을 중시하고 제품뿐 아니라 샤넬 매장에서 구매 과정까지 희소하다고 여기는 회사인데, 더 많은 사람이 줄을 서야 한다면 경험 환경이 좋아질 수가 없다. 소비자에 대한 샤넬의 철학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리고 남성복이 출시되면 기존의 여성복만을 만들어온 아카이브의 통일성과 샤넬에 대한 소비자의 관점도 달라질 수 있다. 남성복과 여성복이 균형 있게 성장할 수 있지만, 제품에 따라 카니벌라이제이션이 일어날 수도 있는 등 리스크는 충분히 있다.
아니면 샤넬은 남성의 소유 접근을 자신의 가까운 여성(여자친구, 아내, 엄마, 동생 등...)에게 전환하여 남성의 구매를 이끌어내는 것일 수도 있겠다.(말도 안 되지만)
칼 라거펠트가 죽은 이후 그의 오른팔이었던 비르지니 비아르가 샤넬을 책임지고 있다. 부임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서 샤넬의 정체성과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지금, 새로운 남성 컬렉션을 런칭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굳이 남성복을 출시할 필요까. 왜냐하면 샤넬은 이미 그 자체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샤넬은 샤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