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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임문화포럼 Dec 24. 2021

재활을 위한 디지털 치료제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 곳곳에 ‘디지털 치료제’ 바람이 불고 있다. 여기에 요즘 COVID-19 이라는, 반갑지 않은 이름의 팬데믹은 디지털 치료제의 수요를 급가속으로 배가시키고 있다. 이 배경에는 획기적으로 향상된 ICT 기술, 동작 인식 기술, 인공지능 처리, 때맞춰 높은 질로 개발된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Head Mount Display (HMD) 출시가 다 함께 작용했으리라 보인다.


사실 미국에서는, 이미 11년 전 당뇨 관리를 위한 소프트웨어 디지털 치료제가 FDA의 승인을 받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로 꾸준히 새로운 디지털 치료제들이 인허가를 받고 있다. 2017년에는 약물중독을 위한 컴퓨터-인지행동 치료용 모바일 앱이 인증을 받았는데 소프트웨어가 직접적으로 치료에 관여하는 치료제이다. 같은 해에 인증받은 MindMaze사의 뇌 손상 운동장애를 위한 가상현실 재활 플랫폼 역시 소프트웨어 콘텐츠가 치료제 역할을 한 예이다. 디지털 치료제를 정의하자면 질병이나 장애를 예방, 관리, 치료하기 위해 환자에게 치료적 중재를 제공하는 고도화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oftware as a Medical Device, SaMD)다. 이것은 의료기기 안에 포함된 소프트웨어(Software in a Medical Device, SiMD)와는 다르게 소프트웨어 자체가 치료제로서 핵심역할을 한다는 특성이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이 소프트웨어와 함께 활용되는 중요한 센서나 구동기 같은 하드웨어가 필수적인 구성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식약처의 인허가를 득한 제품은 없지만, 다양한 제품들이 현재 개발, 혹은 임상 시험 단계에 있다.


디지털 치료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전 ICT 헬스케어, 즉 진료 수준까지 도달하지 않은 건강관리 개념의 해법들이 제안되고 시도되었다. 현재 우리가 활발히 사용하고 있는 갤럭시 워치, 샤오미의 미밴드 같은 것들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후로는 ICT 정보를 건강이나 의료 보조용으로 활용해 지속적인 개발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유명 제약회사 로슈가 소유한 ‘마이슈거(mySugr)’프로그램은 당뇨 환자의 관리 앱을 사용하여 환자의 혈당, 약물 복용 상황, 운동 수준 등 데이터를 스마트폰에 업로드 하고 의사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디지털 헬스 서비스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디지털 치료제에 해당한다고는 볼 수 없다. 소프트웨어가 직접적으로 치료제 역할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디지털 치료제의 예라면 작년에 FDA의 승인을 받은 Akili 사의 EndeavorRx일 것이다. 소아의 ADHD에 치료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으며 실제 내용으로 보자면 태블릿 PC에서 실행하는 만화 캐릭터 게임과 같다. 이것이 어떻게 치료제가 될 수 있을까 신기하게 생각될 수 있으나 FDA의 승인 서류를 본다면 어떠한 과학적 체계로 임상에서 입증하였는지 잘 설명되어 있다. 오랜 기간 연구를 거듭했고, 임상 시험도 참여자 수를 늘리며 반복해서 유의미한 효과를 보여주는 결과를 얻었기 때문에 이 게임은 비로소 치료제가 될 수 있었다.


디지털 치료제는 여러 종류로 각종 대상 질환에 적용할 수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의 특성, 그리고 쉽게 연동될 수 있는 하드웨어의 특성에 따라, 보다 직접적인 치료 작용이 일어날 수 있는 질환의 종류는 중추신경계 쪽이 된다. PC보다는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HMD를 사용할 때 효과적으로 시각적 메시지 전달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흥미도와 몰입도가 강력해진다. 따라서 중추신경의 손상에 의한 장애가 발생한 경우 가상현실, 증강현실 디지털 치료제는 효력을 잘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환자는 수술이나 주사 등을 한, 두 번 처치하여 해결할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 약을 복용하여도 나을 방법이 없다. 오로지 한 가지 방법은 특정 목적을 가진 치료적 실기의 반복을 주 내용으로 하는 엄청난 훈련, 쉽게 말하자면 ‘재활’ 뿐이다. 가장 대표적인 질환으로 나이가 들면서 발생률이 증가하는 뇌졸중이 있다. 뇌는 각 위치마다 고유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만약 대뇌에서 운동신경로가 손상되면 반대쪽 팔과 다리에 마비가 발생하여 일상생활에서 손을 쓰거나 정상적으로 보행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뇌 재활은 이렇게 못 쓰게 된 팔과 다리를 쓸 수 있도록 여러 동작을 수행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재활의 과정은 엄청난 의지력을 발휘하지 않고는 스스로 이루어 내기 어렵다. 환자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치료의 방향과 내용을 의사가 결정하여 주어야 하고, 정확한 실기를 이끌어주는 치료사의 도움을 직접적으로 받아야 하고, 환자 본인도 최대로 기꺼운 마음으로 반복하면서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 과정은 사람들만 있다고 해결될 수도 없다. 몸이 불편한 환자가 병원 내 치료실까지 이동을 해야 하고, 치료에 대해서는 비용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뇌 손상이 일어난 후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입원 재활의 필요성을 인정해 주고 있어서 많은 환자들이 이 기간 동안 재활만을 위하여 입원 치료를 받고 있기도 하다. 위 기간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신경학적 회복 기간을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다. 이 기간 이후라 해도 노력하기에 따라서 더 많은 회복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현실에서는 그러한 노력을 지속하기 어렵다. 노력 대비 효과가 작기 때문에 지치고, 경제적인 지원도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보다 큰 회복이 일어날 수 있는 급성기와 아급성기 뇌 손상 환자들의 경우에서도, 같은 명목의 재활치료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본인들의 노력과 치료 콘텐츠의 효력에 따라 예후는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뇌 손상 후 발생하는 우울증이 재활치료의 효과를 반감시킨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환자의 내과적 질환 상태 역시 재활치료를 어렵게 만들기에 제대로 재활에 의한 결과를 도출할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치료 효과에 관하여 무엇보다 강력한 요인을 꼽자고 하면 그것은 ‘동기력(motivation)’이다. 적극적으로 나아지고자 하는 마음으로 힘든 과정을 기쁘게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이다. 동기력은 개인적 성향에 따라 좌우되는 면이 없지 않으나 재활의 과정이 재미있다면 향상되는 것이다. 이 재미를 높이기 위하여 많은 치료사들이 게임 형식으로 즐겁게 환자가 참여하도록 이끌기도 한다. 


병원에서 치료받는 경우 재활치료실의 환경이, 집에서 자가 재활을 하는 경우 집의 환경이 바뀌기는 어렵고, 또한 기존의 방식이 모두 준비된 콘텐츠를 활용하다 보니 종류에서 한계가 있다. 누구나 식사 메뉴를 동일하게 매일 반복하면 지겨워질 것이라는 일반적인 추측만 해보아도 치료의 종류가 많아지거나 환경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면 더 흥미로운 재활 훈련 참여가 가능해지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상현실을 통하여 갑작스럽게 새로운 환경과 신기한 시청각적 자극이 주어지면, 이전에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움직임이 나오던 손이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며 훈련에 참여하게 된다. 본 연구팀에서 경험한 예에 따르면 운동실행증이 있어서 마비가 심하지 않고 인지기능에도 큰 손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왼팔을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없었던 뇌경색 환자가 HMD를 사용한 몰입형 가상현실에서 물고기 잡기 게임을 시작하면 바로 자연스러운 동작이 나오면서 바로 운동실행증 증세가 사라졌다. 해당 환자는 이 훈련을 계속 받고 싶어 하였고, 가상현실 훈련의 반복을 통하여 실행증으로부터 많은 회복이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뇌 손상 환자에게 무조건 가상현실만 제공한다고 해서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본 병원 재활의학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몰입형 가상현실 치료를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였을 때 스스로 훈련을 지속하고 싶어 하였던 환자들은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해당 훈련이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느낌이 들고, 콘텐츠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고, 프로그램의 난이도가 적절하다고 생각됨”. 의사가 처방하는 약은 잠깐 꿀꺽 삼켜주기만 하면 몸에 들어가서 효력을 내지만, 디지털 치료제는 환자가 지속적으로 계속 활용할 수 있어야 효력 발생의 기본 조건을 갖추게 된다. 따라서 환자가 반복하며 즐기는 상태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재미 요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기에 게임 형식은 거의 필수에 가깝다. 뇌 재활을 위한 디지털 치료제는 뇌의 다양한 기능 손상 각각에 대하여 적절한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사용자가 불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유저-인터페이스(user-interface) 기술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환자의 재활 훈련 중 나타내는 실행 특성을 분석하여 상태를 평가하는 시스템 마련도 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들과 함께 뛰어난 아이디어의 콘텐츠가 동반될 때 제품의 성공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므로 관련 전문가들의 진정한 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https://journals.lww.com/md-journal/Fulltext/2021/07160/Efficacy_of_virtual_reality_therapy_in_ideom

최근 세계적으로 급성장세에 있는 디지털 치료제는 우리나라에서도 개발이 활발해지는 추세이다. 가장 대표적인 적응증인 뇌 손상 재활에서 그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본다. 효과 검증을 통한 의료적 사용이라는 목적을 위하여, 처음 개발 단계에서부터 치료의 내용을 결정하는 임상 의사와 사용자 친화적인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엔지니어,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로 콘텐츠를 구성할 수 있는 전문가 등으로 이루어진 팀의 활동이 성공을 결정할 것이다. 이를 위한 협업이 우리나라에서 잘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현실상황 – 손을 펴려고 하나 펴지 못함
가상현실 – 자신도 모르게 손이 잘 펴짐

※위 영상을 무단으로 도용 및 불법으로 복사할 경우, 경고없이 저작권법에 의한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https://journals.lww.com/md-journal/Fulltext/2021/07160/Efficacy_of_virtual_reality_therapy_in_ideomotor.54.aspx 




김민영

차의과학대학교 분당차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CHA미래의학연구원 디지털혁신의료센터장

2021년 게임문화포럼 투고분과 위원

2020 ~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 전문평가위원회 위원

2019. 1 ~ 분당차병원 연구중심병원 제1세부장

2008. 7 ~ 2020. 6 대한소아재활발달의학회 이사장

2007. 1 ~ 2008.2 UC San Diego 신경과학 post-doc

2005 ~ CHA의과학대학교 분당차병원 재활의학과

1999.12 ~ 2002.12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초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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