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의 나
운좋게 기관의 1차 면접에 합격한 후, 나는 원없이 놀러다녔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없던 시절이라, 마스크 따위 없이 신나게 국내여행을 즐겼다. 비록 최종면접을 앞두고 있었으나, 만약에 합격한다면 나에게는 근로시간뿐, 자유시간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여한 없이 놀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졌다.
암표는 사지도 팔지도 맙시다
면접 스터디원 6명 중 2명이 1차 면접에서 불합격하며 4명만이 남아 최종면접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최종면접 준비에 집중하지 못했다. 고지에 거의 다 왔기에 마음이 들떠서였을 수도 있고, 우리끼리 너무 친해진 탓도 있다.
무엇보다도 면접 준비를 거듭하며 우리는 기관의 안 좋은 이야기들을 일삼기 시작했다. 물론, 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 : 여기, 부산에 이전할 수도 있다면서요? 가족, 친구 다 서울에 사는데 부산 가면 인간관계 다 끊길텐데...어쩌죠.
� : 그것도 그건데, 저는 벌써부터 기관에 대한 뽕이 사라졌어요. 얼마 전에 여기 채용비리 밝혀진 거 아시죠. 그만큼 좋은 데니까 비리가 있는 거겠지만, 정정당당하게 승부 보려고 준비하는 사람들한텐 너무 허탈한 거잖아요. 결국 돈 보고 가야되나 싶기도 해요.
지하에서 거래되는 암표는 정정당당하게 티켓을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의지를 꺾는다. 특히, 그런 암표는 매-우 비싸서 우리 같은 서민들이 눈독 들일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지금껏 정정당당히 싸워왔구나, 싶었다. 노베이스로 시작해 여기까지 왔으니, 마무리만 잘해보자, 하는 심정이었다.
나는 필기, 1차 면접, 그리고 최종면접에 갈 수 있는 티켓을 획득한 상태였다. 이제 정말 '입사' 티켓만 받으면 끝이었다. 거의 다 왔다.
이제 끝이다
11월 말, 나는 기관의 최종면접을 응시하러 여의도로 갔다. 이젠 정말 추웠다. 로비에 앉아있으니, 직원 분이 나를 회의실로 안내해주셨다. 회의실에 모인 경제직렬 지원자들은 총 20명. 그 중에서 13명은 합격하고, 7명은 불합격하는 싸움이었다.
모두가 훌륭해보였고, 모두가 당당해보였다. 그에 비해 나의 몸과 마음은 상당히 위축되었다. '내가 가진 것은 뭐지?', '나는 왜 이 기관에 입사하고 싶지?'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불현듯 나를 괴롭혔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잘 치르면 되는데, 왜 갑자기 궁금해진 것일까? 몇 달 전부터 꾸준히 공부해 온 내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죽기 전에 지난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더니, 내가 최종면접장에서 장렬히 전사하려고 그러나 싶었다.
긴장했다. 나는 긴장을 원래도 잘 하는 스타일인 건 맞으나, 이상하게도 필기시험과 1차 면접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비하면 덜 긴장된 스테이지였다. 하지만 최종면접은 확실히 달랐다. 거의 다 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오히려 긴장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지원번호가 호명되었고, 나는 직원 분의 안내를 받아 면접장에 들어섰다. 6명의 나이 지긋한 면접관들 앞에 나는 홀로 앉아 그들과의 티키타카를 시작했다.
그리고 끝났다.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10분이었다. 불안했다. '이건 무조건 합격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떨어지겠다'라는 생각이 앞섰다.
다음 두 가지 상황에서 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첫째, 딜레마 질문에서 막혔다. '만약 팀장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른 사실을 혼자만 알게 된 상황에서, 감사실에서 이에 관한 문의를 해왔을 때 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여기서 나는 둘 중에 하나를 명확히 선택해야 했다. '고발하겠다' 혹은 '숨기겠다'. 그런데 나는 횡설수설했다. '그것이 비윤리적인 행위가 맞는지 아닌지는 나만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했는데, 이것이 면접관의 심기를 건드렸나보다. 나의 말은 맥없이 끊기고, '아니, 그런 것 말고, 어떻게 할 거예요? 고발할 거예요, 말거예요?'라는 질문을 재차 받았다. 이에 '하, 하겠습니다'라는 단답과 함께 그 면접관과의 질의응답이 종료되었다.
둘째, 전문성 관련 질문에서 막혔다. 나는 대학교 4학년을 다니고 있던 상황이었고, 인턴 경력 하나 없었다. 경제학이 본전공이 아니었으므로, 관련 학회나 경험을 쌓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경제 공부를 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나는 '이론적으로 배운 거 말고, 금융 관련 전문성을 쌓았던 경험을 말해보세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사실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질문이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전문성 관련 질문에 대해 '이론적인 공부'로 답하곤 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배운 거 말고'라는 조건이 붙는 순간 실질적으로 아무런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별 대답 없이 마무리되었다.
이상하게 잘한 것보다, 못한 것이 나에게 너무나 명명백백하게 다가왔다. 주식으로 벌었을 때보다 잃었을 때 '왜 잃었는지'를 어떻게든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손실회피 성향이 스스로의 퍼포먼스를 평가할 때도 발휘되는 것이다. 잘한 것도 분명 있었을텐데,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최종면접 이후 나는 급격히 다운되었다. 나의 100%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 몇 달 간의 채용과정이 마무리되었다는 허탈감, 그리고 이제 2학기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버거움 등이 작용한 결과였다.
학교 커뮤니티에는 급격히 다운된 나머지, 나와 같이 최종면접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자조적인 글이 올라오곤 했다.
맥없이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은 추하다
(그런데 결국 합격하면 안 추하다)
추하게 2주 정도를 보냈다.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며 발만 동동거렸다. 생산성이 제로인 삶이었다. 고생했으니까 좀 쉬면서 보내도 되지, 싶었지만 마음 편히 쉴 수도 없었다. 그냥 빨리 누가 홈페이지 서버에 침입해서 합불 결과를 알려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졌고, 세상은 겨울을 맞이했다. 낙엽을 털어낸 나무들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드러낸 채 봄을 기다렸다. 맥없이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은 추하지만, 그 결과가 봄임을 확신할 수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12월 어느 날, 나는 신촌 한가운데에 위치한 어느 스터디 카페에서 최종 면접 결과를 알게 되었다.
1장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장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