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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집 Apr 16. 2024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짜로 지켜야 하는 것은?”

장 퇼레 『자살가게』-생명은 사라졌으나 희망은 가라앉지 않는다-

I 거대한 자살가게 I           


2014년의 일이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300여 명에 이르는 아까운 생명들이 사라졌다. 처음 배가 기울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전원 구조’라는 뉴스의 헤드라인에 모두들 대수롭지 않게 구조가 되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날씨가 맑은 아침이었고 충분히 구조가 예상되는 장면이 뉴스를 통해 우리들 눈에는 비쳐졌던 것이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구조기관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세월호는 아까운 목숨을 끌어안고 침몰해버렸다. 그 생명들과 함께 가족들의 평화도 사라졌고, 무엇보다 안전불감증으로 억울한 생명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정부와 관련 기관들의 소극적 대처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지쳐버렸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니, 비통하고 억울하여 모두가 한마음으로 울었다. 온종일 텔레비전 뉴스로 전해지는 세월호 참사 현장을 보면서 사람들은 변화했고 그대로 이 현실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국민영웅도 애국선열도 아니지만 희생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위무하고자 전국에는 합동분향소가 설치되었고, 침묵시위가 진행되었던 것이 벌써 많은 세월이 흘렀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이다. 전 국민들은 죽음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자살가게’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에 비참해하며 어떤 식으로 대처해나가야 할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화시킬 지를 고민해왔다.


                       

I 삶과 죽음의 교차 순간 I          


세월호 침몰 사고처럼 ‘삶과 죽음의 교차 순간’은 사람들 각자에게 의도치 않게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도와주는 곳이 있다면? 상상만 해도 오싹하지 않은가.     

프랑스 소설가 장 퇼레는 그의 소설 『자살가게』에서 비겁하고 잔인하여 삶의 회의를 느끼게 만드는 사회로부터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자살’이라며,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튀바슈 가족을 등장시킨다.     

가족 구성원은 아버지 미시마와 엄마 뤼크레스, 큰아들 뱅상, 딸 마릴린, 그리고 막내아들 알랑이다. 여느 집과 다름없는 가족 구성인데, 이들 중 가장 ‘보통사람’에 가까운 막내아들이 이 가족 중에서는 별종으로 취급받는다. 튀바슈 가족 중 유일하게 자살에 반대하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튀바슈 가족이 특이한 것은 타인들이 잘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다양한 자살도구들을 개발하고 판매하면서 이들이 맡은 소명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죽음을 조장하는 사회 속에서도 이들은 가족을 이루고 있고, 자녀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배려하고 있다는 것이 여느 가족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어떤 사회에서도 가족은 이루어져 왔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근본적으로 얼마나 노력해 나가고 있는지를 반증한다.          


                    

I 삶과 사랑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 I     


일상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작가는 발랄하면서도 신선하게 그려낸다.     

자살가게의 홍보를 자처하며 부랑자가 자살가게의 봉투를 쓰고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에서는 죽음의 도구조차도 돈이 없으면 구매할 수 없으며 목숨을 자기 의지대로 조종할 수도 없다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엿보게 되기도 하고, 타인들의 시선이나 어떤 사건으로 인해 더는 삶을 계속 할 수 없다는 손님들의 사연에서는 우리의 삶은 언제나 누군가와 연관이 있고, 관심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한다.     

튀바슈 가족은 타인들에게 평온을 선사하는 자살도구를 팔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운영하는 자살가게는 삶과 사랑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감정을 나누고, 함께 고민을 하고 행복을 느끼고 웃음을 웃는 가족 간의 정이 복합적 층위로 나타난다.     

죽음을 준비하는 공간으로 기능하는 자살가게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살을 왜 하려고 하는지, 어떤 방법이 있는지, 어떤 도구가 고통없이 자신들을 깨끗한 죽음으로 데리고 갈 수 있을지 상담을 한다. 상담을 하는 과정을 통해 이들은 자신들의 죽음의 이유를 합리화하기도 하고, 삶의 의지를 되찾기도 한다.                         

한편으로 자살가게는 삶의 공간이다. 튀바슈 가족이 생계를 꾸려나가는 공간이며, 사람이 드나드는 공간이다. 더 좋은 자살도구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큰아들 미시마의 모습이나 자살테마파크에 대해 온가족이 얘기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 자살은 이들 가정의 삶을 이끌어가는 동기이자 생계방편이다.     

자살가게는 사랑의 공간이기도 하다. 대를 이어온 자살가게를 지켜야 하는 비관적 성향의 부모 시선 안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애써 외면해왔던 마릴린은 막내동생 알랑의 따스한 말과 선물에 의해 자신감을 되찾는다. 자신감을 되찾으니 타인에 대한 여유도 생기고, 그러다보니 묘지관리인과도 사랑을 나누게 된다. 항상 우울감에 빠져 입맛이 없던 큰아들 뱅상이 알랑과의 소통을 통해 음식을 먹으며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자 한층 자살가게의 분위기는 부드러워진다. 이들 사이에 사랑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 점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나 이들 가족이 자살도구를 파는 일들을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코믹한 설정을 적절히 섞어놓고, 각각의 인물들이 머릿속에 이미지로 떠오를 만큼 캐릭터를 명확하게 잡아놓았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소설의 장면장면이 그려지니 죽음이라는 것은 더 이상 무겁거나 무서운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다.     

우리에게 삶이 느긋하게 흘러가듯이 죽음도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며, 우리의 사는 모양새가 각각 다르다 하여도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을 느끼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 죽음으로 그 사람의 생은 끝나지만, 남은 이의 삶 속에서 죽은 이의 삶도 함께 가고 있다는 그런 것 말이다.     

알랑의 웃음과 낙천적인 생각들이 다른 가족들에게 전이되는 순간순간을 읽어가면서 우리의 삶이란 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가치를 찾고 즐거움을 누리고 행복을 느끼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생명은 소중하고, 가족을 잃어버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 내 아픔처럼 보듬어지는 이유도 그러하다.                              



I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희망 I      

    

세월호 사건을 겪은 이들과 살아남은 사람들,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희생자들은 희망이라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판도라의 상자 중 희망만이 도망가지 않았던 것처럼 절망의 구렁텅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은 아주 오랜 인류의 처음부터 내정된 우리의 긴 여정이다.     

희생자의 가족들은 대한민국의 ‘안전불감’을 일깨워주기 위해 다시 투쟁하고, 거대한 자살도구들이 제대로 된 삶의 도구로 깨어날 수 있도록 각성을 촉구하고, 죽은 이들의 이름을 헛되이 하지 않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작은 것들이 큰 것을 만들어내는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살아내야 한다. 그들의 생명은 사라졌으나, 행복을 나눠주고 웃음을 전파시키던 자살가게의 막내아들 알랑처럼 우리에게 생명의 존귀함을 가르쳐준 그들의 소중한 삶은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그 사건을 잊지 않았고 어느 때보다도 명민하게 깨어있으며, 그대로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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