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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집 Nov 24. 2024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소록도 가는 길 _ 한하운

소록도 가는 길

                


---한 하 운--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오래 전 중학교 시절 국어학습위원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을 돕는 도우미 같은 역할이었는데, 국어 선생님의 인기가 좋아서 국어학습위원의 자리는 경쟁이 굉장히 치열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국어학습위원을 하면서 선생님과도 개인적으로 친해졌는데, 당시 선생님이 추천하셨던 한하운의 시집을 빌려 읽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 캐비넷에서 꺼내어 꼭 읽어보라고, 읽고 소감을 말해달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때 어떤 소감을 말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글이, 그 책이 내게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은 분명하다.



절름거리며 신을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니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것들이 

그렇게 스멀스멀 사라지고 나면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만리를 가야하는 우리의 삶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그 곳에 닿으면 사라진 것들은 어찌 되는가.

아득하고 기이하고 아파서 계속 읽게 되는 

소록도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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