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 세계와의 만남
오늘도 해변 카페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 15 이집트 파운드(한화 1100원) 면 망고 주스 그리고 아름다운 홍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하루 종일 이 카페에 앉아서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해변 카페에서 몇 발자국 걸어서 홍해 바다에 몸을 담근다. 그리고 다이빙 마스크를 쓰고 스노클링을 한다. 물이 맑고 투명해서 저 바닥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햇살이 수면을 통과해서 모래 바닥에 비추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다. 햇빛 그리고 아름다운 바다에 잠시 취해 본다. 이 곳은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파라다이스 이집트의 ‘다합'이다.
이집트 다합(dahab)에 온지도 벌써 3달이 지났다. 이 도시에서 꽤 오래 머물렀다. 이제 슬슬 다음 여행지를 물색해야 되는데, 이곳을 떠나는 것이 그렇게 내키지 않았다. 이곳에서의 한량 생활이 제법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다합은 관광객들에게는 유명한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배낭 여행자들에게는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다. 다합의 싼 물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홍해 바다 그리고 다양한 배낭여행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의 비싼 물가와 바쁜 관광일정으로 지친 여행자들은 여행 중의 휴식을 취하러 다합에 오곤 했다. 또한 다합은 아프리카 종단 여행의 시작점 또는 종착점인 도시였다. 힘겨운 아프리카 여행을 끝내고 온 여행자들은 다합에서 여독을 풀었다. 앞으로 아프리카를 여행할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동행을 구하고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했다.
나는 다합에 오는 대부분의 여행자들과는 다른 부류였다. 나는 세계여행의 시작점으로 다합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세계 각 도시와 멋진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매일매일 들을 수 있었다. 세계여행을 귀동냥으로 하는 느낌이었다.
다합에서의 3달 동안, 나는 스쿠버다이빙 다이브 마스터 코스를 이수했다. 다이브 마스터란 프로페셔널 다이버의 시작이다. 즉 이 자격증이 있으면, 다이버로서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 세계 어디의 바다에서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심 뿌듯했다. 새로운 프로 자격증을 하나 딴 사실이 기쁘기도 했지만, 낮에 할 소일거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했다. 그리고 다이브 마스터를 따면 다합을 떠나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이제 곧 이 파라다이스와 이별을 할 생각에 마음이 안 좋았다. 여기 다합에서 더 지내려면, 나 스스로에게 뭔가 명분이 필요했다.
그렇게 명분을 찾고 있던 나에게, 준영이가 매력적인 아이템을 갖고 왔다. 준영이는 대학교 휴학을 하고, 호주에서의 1년간 워홀을 해서 모은 돈으로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청년이었다. 머리는 반삭을 하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끼고 있다. 세계여행을 하는 친구답게 얼굴도 제법 그을려 있다. 공대생이지만, 인문학적인 것에 관심이 많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청년이다. 그리고 진취적인 겉모습과는 다르게 물 공포증이 있었다.
“동건이형, 프리다이빙 같이 하자”그 매력적인 아이템은 바로 프리다이빙이었다. 여행과 레저를 좋아하는 나도 생소한 분야였다. 전에 얼핏 한 번 들어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프리다이빙은 간단히 설명하면, ‘무호흡 잠수’였다. 스쿠버 다이빙은 공기통을 메고 물 안을 여행하지만, 프리다이빙은 공기통 없이 잠수를 한다.
“사람이 숨을 참고 잠수를 할 수가 있어?” 나는 원래 계획에 없던 프리다이빙이란 것에 의아했지만, 반면에 호기심도 생겼다.
치밀하게 잘 짜인 계획표를 따라 여행하는 것은 내 여행 스타일은 아니다. 나는 한국에서의 바쁘고 계획표에 따라 움직이는 그런 삶을 벗어나고자 여행을 해왔다. 그런 매일매일 반복되는 삶을 살다 보면, 우연이 주는 인생의 선물을 만나기는 좀처럼 쉽지 않기 마련이다. 일상을 떠난 여행에서라도 우연한 만남- 사람과의 만남 또는 사건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합 여행 중에 프리다이빙 과의 우연한 만남에 나는 본능적으로 설레기 시작했다. 프리다이빙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왠지 이것이 나의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여행을 떠나기 전 현실에서의 삶이 팍팍했던 만큼, 새로운 삶으로 나를 인도해 줄 무언가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알 수 없는 ‘운명' 또는 내가 운명이라고 생각한 힘에 이끌려, 프리다이빙 코스에 덜컥 등록했다. 정말로 덜컥 등록해 버렸다. 프리다이빙 기초 과정만 등록한 것이 아니라, ‘zero to hero’라는 과정에 등록했기 때문이다. 이 ‘zero to hero’라는 과정은 글자 그대로 ‘무'에서 시작해서 ‘hero’가 되는 과정이었다. 초보자 과정부터 강사가 되는 일종의 패키지 프로그램이었다. 기간은 4-6개월 정도가 걸리는 과정이다.
프리다이빙을 접해보지도 않은 내가 그런 끝판왕 패키지 코스를 ‘덜컥' 등록해버린 것이다. 여기 다합에서 더 머물고 싶었던 마음도 크게 한몫했다.
프리다이빙 수업 첫날이다. 아직 무엇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그 강의실에 앉아 있는 사실 만으로도 설레었다. 연인과의 첫날밤을 앞두고 있을 때보다 더 설레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나는 이미 프리다이빙 강사가 되어 있었다. 여기 다합에서 새로운 여행자들에게 프리다이빙을 알려주는 그런 멋짐이 묻어나는 프리다이빙 강사의 모습. 상의를 벗어젖히면 드러나는 탄탄한 근육과 구릿빛 피부, 그리고 적당히 긴 머리.
다시 현실로 돌아와 수업을 시작한다.
나의 첫 프리다이빙 스승님이 될 분이 앞에 있다. 그녀의 이름은 혜민이다. 미모의 한국인 여 강사님이다. 키는 160 정도의 아담한 체구를 가진 분이었다. 갈색과 노란색의 사이 어디쯤으로 물들인 긴 머리는 예쁘게 그리고 얌전하게 따여져 있었다. 다이빙 강사님 답게 군살 없는 탄탄한 몸매를 갖고 계셨다. 그리고 피부도 검게 그을려 있었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건강미를 갖고 있는 분이었다. 혜민 강사님에게서는 현실에서 찌든 모습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이 혜민 강사님을 보자마자, 이 사람은 밝고 속세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프리다이빙 강사님은 다 이런 맑은 느낌을 갖고 있구나'
프리다이빙은 첫 수업에 호흡에 대해서 배운다. 프리다이버가 물속에서 숨을 참고 오랫동안 잠수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이 ‘프리다이빙 호흡법’이다. 프리다이빙 호흡은 ‘준비 호흡’과 ‘최종 호흡'으로 구성되어 있다.
‘준비 호흡'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최대한 안정시킨다. 들숨보다 날숨을 길게 내뱉는다.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에 집중을 한다. 숨소리를 느껴보고, 내 마음이 점점 비어 가는 것을 느껴본다. 어느새 마음은 고요해져 있고, 심박수 또한 떨어져 있다. 이 준비 호흡은 명상에서 ‘호흡명상'을 하는 것과 아주 닮아 있다.
명상을 하는 것과 같은 ‘준비 호흡'이 끝나면 이젠 ‘최종 호흡’을 한다. 숨을 복부에서부터 차곡차곡 눌러서 담아서 가슴까지 그러고 목까지도 가득 채운다. 이렇게 숨을 채우면 평상시에 비해서 아주 많은 양의 숨을 몸에 채울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숨을 참기를 시작한다.
강사님이 숨 참는 시간을 재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숨을 참고 있는 이 느낌이 묘하다. 숨을 참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평온하다. 생각이 느려지고,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는 것 같다. 항상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잡념들이 사라진다. 뇌리에 박혀 있던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이 점차 희미해져 간다. 그때쯤 가슴이 뜨거워지고, 횡격막이 꿀렁이기 시작한다. 바로 ‘호흡 충동'이 온 것이다.
‘호흡 충동'은 사람이 살고자 하는 방어기제이다. 이제 숨이 점점 고갈되어가니, 어서 빨리 숨을 쉬라는 신호를 몸에서 보내오는 것이다. 이 ‘호흡 충동'을 처음 겪으면, 정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극한의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더 이상 숨을 참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숨을 급히 쉬게 된다.
하지만, 이 ‘호흡 충동'이라는 것은 사실은 산소가 부족한 상태는 아니다. 단지 체내에 이산화탄소가 많이 쌓여서 나타나게 되는 생리적 현상이다. 그래서 이 고통스러운(?) ‘호흡 충동'이 와도, 사람은 숨을 꽤 오랫동안 더 참을 수 있다.
나는 숨 참기를 끝내고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잘했어요. 얼마 동안 숨을 참은 것 같아요?”
혜민 강사님이 물었다.
“글쎄요. 한 1분 정도요?”
내가 대답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길게 느껴졌지만, 사람이 어떻게 숨을 1분 이상 참을 수 있나 라는 생각이었다.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나는 2분 30초나 숨을 참았다. 깜짝 놀랐다. 어떻게 사람이 숨을 2분 이상이나 참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어려운 걸 내가 해 냈다.
‘나에게 이런 숨은 재능이 있었다니' 32년 동안 몰랐던 내 재능을 발견한 기분이다.
왠지 모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의 이야기처럼 보이는 프리다이빙 강사가 되는 것도 왠지 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사님은 잘했다며 나를 칭찬해 주셨다. 처음인데 잘 해낸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아울러 이런 이야기도 덧 붙이셨다. 프리다이빙 강사가 되려면 최소한 숨을 ‘4분'이상 참아야 한다고 말이다.
프리다이빙은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테스트가 있다. 그중에서 ‘스테틱( static)’이라는 것은 숨을 참는 시간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사람이 4분이나 숨을 참을 수 있나요, 강사님?” 나는 조심스레 강사님에게 여쭈어 봤다.
“연습하면 누구나 4분 이상 숨을 참을 수 있어요" 혜민 강사는 사람 좋은 웃음을 띄며 대답했다.
프리다이빙 강사가 되는 것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솟구쳤다. 32년 만에 발견한 나의 재능 덕분에 한 껏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어쩌면 나는 이 프리다이빙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지도 몰라'
새로 발견한 재능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현실에서의 삶이 썩 행복하지 않았다. 하루하루는 힘들고 고되었다. 그리고 항상 주말만을 미치도록 기다렸다. 주중에는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오면, 집에 와서는 지쳐서 쓰러져 있는 것이 전부였다.
‘ 이 길이 정말 나의 길인가'
‘ 하루하루 버티는 이런 상태로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삶을 평생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나에게 뭔가 새로운 삶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항상 들었었다.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수능을 보고 대학교 전공을 선택할 때, 진지한 나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 사회의 분위기에 이끌려, 그리고 타인의 기대에 이끌려 치과대학을 선택했다. 공부를 잘하는 이과생이라면 의대 아니면 치대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다. 그리고 나는 치과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무려 3수를 했다.
치과대학에 들어가면, 그리고 치과의사가 되면 행복하고 편한 인생이 내 눈앞에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치과대학 6년은 방학을 제외하고는 매일이 고난의 연속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지식들을 배우고,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외워서 시험을 보았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비인간적일 정도로 시험이 많았다. 거기엔 ‘워라밸'따위는 없었다.
힘겹게 치과대학을 졸업해서 치과의사가 되었다. 그렇지만, 공부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주중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세미나를 찾아다니며,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초보 치과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녹록지 않았다. 책으로 익혀왔던 지식을 실전에서의 기술로 녹여내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었다. 교과서에는 나와 있지 않던 변수들이 발생할 때마다 나는 머릿속으로 가능한 상황들을 1번부터 10번까지 나열해보았다. 그중에서 지금은 몇 번에 해당하는지 찾기에 바빴고,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지 해결책을 강구하기에 바빴다.
직장에서 누가 나를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점점 지쳐만 갔다. 나는 매일매일 치과의사로서의 나의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존감은 낮아져만 갔다. 더 나은 진료를 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화도 많이 났다. 잠자리에 자려고 누우면, 나를 믿고 나에게 치아치료를 맡긴 환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나를 믿어준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학생 때는 느껴보지 못한 책임감 그리고 부담감이었다. 나의 무능력함에 대해 남 탓을 할 수가 없었다. 오롯이 나에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곧 좌절감 그리고 나에 대한 미움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이렇게 내적인 투쟁으로 인한 탈진뿐만 아니라, 치과라는 작은 공간에서 평생을 보낼 자신도 없었다. 이렇게 작은 진료실에서, 더 작은 치아만을 보며 평생을 살 자신이 없었다.
나는 세상을 더 돌아다니고 싶었다. 어떤 목적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경험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내면의 목소리는 매일매일 어디로든 떠나라고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선 평생 이렇게 살 순 없다고 나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내일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나에게 버거웠다. 오늘 하루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나에게는 내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사치였다.
‘오늘 하루라도 행복하게 살고 싶다'
‘오늘이 행복하지 않은데 내일이 그리고 미래가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때가 되면 어디로든 떠나리라'
‘그때까지만 하루하루 버티자'
나는 어느 정도 임상경력이 쌓일 때까지만, 버티기로 했다. 그래야 맘 편히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돌아오더라도 내가 치과의사로서 설 자리가 있을 만큼은 실력을 쌓고 떠나야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집트 다합에서 프리다이빙 ‘zero to hero’를 하고 있다.
이것이 나에게 제2의 인생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