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대학 본과 3, 4학년 원내생 생활
본과 3학년이 되면 대부분의 수업은 교실이 아닌 치과병원에서 이루어진다.
소위 말하는 ‘병원실습’을 시작하는 시기다.
이때 처음으로 흰 가운을 맞추기도 하는 시기다. 가운 맞추는 사장님이 오셔서 팔 치수와 가슴 치수를 재서 만들어 주신다. 병원실습을 시작하는 선배들이 흰 가운을 입고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멋있어 보였다.
‘아 나도 이제 흰 가운을 입을 수 있는 날이 왔구나’
흰 가운을 입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그동안 힘든 시절에 대한 보상을 받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흰 가운을 받고 병원으로 실습을 나가기 전까지 잠깐 기간 동안기분이 셀레고 좋다.
4명씩 한 조가 되어 병원에서 교육을 받는다.
원내생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이것을 우리는 ‘원턴’이라고 부른다. 1주마다 각 과를 배정받아서 교육을 받고, 다음 주에는 또 다른 과로 배정을 받는 방식이다.
구강외과, 교정과, 보존과, 보철과, 치주과
소아치과, 예방의학과, 병리과, 구강내과, 영상치의학과
이렇게 10개의 과를 돌면서 각 분과 내에서 교육을 받는다.
오전에 해당 과로 가서 교수님과 수업을 간단히 진행하고, 교수님들 진료시간에는 원턴들은 옵저( Observation)을 한다. 진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는 것이다. 어떤 기구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진료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눈여겨봐야 한다.
그런데, 그 작은 입안을 멀리서 서서 봐봐야 뭐가 보이진 않는다. 술자 옆에 딱 붙어서 석션을 잡고 봐야 자세히 볼 수 있는데, 원턴은 아직 그럴 짬이 안 된다.
치과병원에는 교수님이 진료를 하면 체어 주변에 장벽이 세워진다.
1. 진료하는 교수님
2. 첫 번째 어시스트인 수련의
3. 두 번째 어시스트인 수련의
4. 인턴( 치과의사 1년 차, 수련의 전 단계)
5. 원내생
6. 원턴
이런 두터운 장벽이 있기 때문에 원턴이 감히 저 인파를 뚫고 환자 입을 보기는 쉽지 않다.
간혹 어시스트할 사람이 없어서 원턴이 석션을 잡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긴장 되서 술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볼 틈이 없다.
석션을 잘 하는 것만도 벅찬 시기이기 때문이다.
임상에 직접 관련이 없는 과는 대부분 병원진료가 끝나는 6시면 실습이 끝나서 편하다.
그러나 임상에 관련된 관들은 병원실습이 끝나도 저녁을 간단히 먹고 다시 병원으로 가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어떤 과에서는 밤 12시까지 붙잡혀 병원에서 실습을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수님들 수련의 선생님들의 노고에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에게 그렇게 자세히 신경 쓰면서 알려주는 것도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되는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고마움에 대해서 이해하게 됐지만, 당시엔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몸이 피곤하다 보니 머릿속은 항상 멍하고, 시키는 대로 할 뿐이었다. 병원일이 서툴다 보니 혼나는 일도 많아서 그저 실수하지 않고 무사히 오늘 하루가 넘어가기만을 바라는 시절이었다.
그렇게 원턴을 3학년 1학기 동안 하고 나면 이제 ‘원내생’으로 레벨업을 한다.
원턴때는 4명이 한 조로 움직였다면, 이제 원내생 개인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자율적으로 과들을 돌아다니면서 실습을 하고 학점을 받아야 한다. 병원에 신환( 병원에 새로 온 환자)이 오면 원내생 한 명이 그 신환을 안내해줘야 한다. 그 신환이 어떤 과를 가던 따라가서 치료를 받을 때마다 어시스트를 하고 다음 예약을 잡아주고, 다른 과를 가게 되면 또 따라가고 그런 시스템이다.
김동건 님이란 신환이 왔다고 예를 들어보자. 김동건 님은 잇몸이 안 좋고, 임플란트를 해야 할 것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처음에는 영상의학과로 안내를 해줘서 x-ray를 찍게 도와준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 x-ray를 갖고 치주과( 잇몸을 보는과)로 가서 진단을 받는다. 진단 결과 김동건 님은 치주치료와 임플란트 시술이 필요하고, 충치가 있어서 보존과 협진이 필요하다고 계획이 세워졌다. 그럼 원내생은 이 김동건 님이 치주치료를 받을 때마다 치주과에 와서 치료를 받을 세팅을 해놔야 하고, 술자가 진료를 할 때 석션을 하며 어시스트를 해야 한다. 한 진료가 끝나면 그 진료에 대한 점수를 사인 받는다. 각 과마다 최소한의 시간을 이수해야 학점을 받을 수 있다. 좋은 학점을 받으려면 발로 더 많이 뛰어야 하는 시스템이다.
원내생 초반에는 진료시마다 세팅해야 하는 기구들을 외우기에 급급해서 마음의 여유가 없다. 하지만 2-3달 정도 지나면 병원시스템과 원내생 생활에 적응을 하게 된다. 몸이 조금 고단할 뿐 그래도 머리로 하는 공부에 대한 부담감은 적은 시기다. 학기 중에는 8시에 교실에서 수업을 1시간 듣고, 9시부터 6시까지는 병원에서 실습을 하고, 6시부터 7시까지 다시 수업을 들으면 공식적인 일과가 끝난다. 7시부터는 개인별로 병원일이 남았으면 다시 병원으로 가서 할 일을 한다. 예를 들면, 치과기공물을 만들게 남았다 던 지, 환자 본을 떴던 모델을 정리한느 작업이 남았다던지 이런 남은일을 하게 된다.
원내생 시기에는 여름방학 겨울방학이 따로 없는 게 힘들었다. 그러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이것도 곧 받아들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름방학 겨울방학에는 오전 8시에 1시간 오후 6시에 1시간 있던 수업이 없는데, 이 사실만으로도 방학이 고맙게 느껴지게 된다. 그리고 여름방학 겨울 방학에는 공식적으로 휴가를 3일 쓸 수 있다. 병원으로 출근 퇴근 시에 지문 도장을 찍지 않아도 괜찮은 3일이다.
본과 1, 2학년 시절보다 본과3학년 이후의 시절이 몸은 고되지만 더 보람은 있는 시기다. 점점 치과의사라가 돼 가고 있구나를 자연스럽게 느끼는 시기이기도 하다. 치과대학은 진로를 정해 놓고 시작하는 분야이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치과의사를 향해서 한 발짝씩 나가는 분야이다. 본과 2학년때까지는 뜬구름처럼 느껴지던 치과의사의 길이 본과 3학년때는 가까이 와 있는 느낌이다.
본과 4학년 1학기 까지를 끝으로 공식적인 병원 실습은 종료가 된다. 그리고 아주 꿀 같은 여름방학이 2달 주어진다. 힘겨운 원내생생활의 끝에 맞이한 여름방학은 천국과 같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때 해외여행을 다녀온다. 이때가 아니면, 길게 해외여행을 다녀올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필자도 학부 졸업 이후에 대학병원에서 4년의 수련의 과정을 염두하고 있었기에 마지막 여행이다 생각하고 3주간의 터키 여행을 다녀왔었다. 해외여행을 갈 만큼의 여유자금은 없었다. 하지만 본과 4학년쯤 되면 마이너스통장을 쓰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워지는 시기이기 때문에 자금조달에 대한 문제는 없었다.
마이너스 통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본과 2학년이 되면 치과대학, 의과대학생들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 치대생 의대생들은 졸업하면 거의 100프로 치과의사, 의사가 되기 때문에 은행에서도 신용대출을 마음 놓고 해 준다. 그래서 치대생, 의대생들은 어린 나이에 좋지 않은 소비에 길들여지기 쉽다. 소비를 잘 조절하면서 학업에 목돈이 필요할 때만 마통을 사용한다면 마통은 치대를 졸업하는데 필수 도구라고 생각하다. 치대본과시절에는 실습비용 명목으로 학비 이외의 목돈이 들어갈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전공서적 책값도 비싸다. 고학년이 되면 동아리 모이에서도 한 번씩 계산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졸업여행을 갈 때도 목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가고시를 보기 위해서도 목돈이 필요하다. 필자도 이때 학자금 대출로 학비를 충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저런 목돈을 더 달라고 할 수 없었다. 시간 나는 대로 과외알바를 하면서 생활비에 보탰지만, 그 돈을 모아서는 필요경비를 다 충당하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마통이란 게 처음 쓸 때는 떨리고 두렵다. 하지만 마통의 특성상 점점 돈을 쓰는 것에 둔감해지게 된다. 그리고 통장에 - 가 찍힌 게 점점 당연하게 느껴진다.
여담이지만, 25살 때부터 붙었던 통장의 - 는 35살 때까지 무려 10년이나 이어졌다 ㅜ.ㅜ
그리고 35살 때부터 정신을 바짝 차렸다. 지출에 있어서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어 40을 코 앞에 둔 지금지금까지도 수입의 90프로 이상을 저축하며 살고 있다.
그렇게 모두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오랜만에 고향에서 부모님 댁에서 머물며 집밥도 많이 먹고 여름방학을 행복하게 보내고 4학년 2학기를 맞이한다.
4학년 2학기는 내년 1월에 있을 국가고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시기다. 물론 정규수업도 있고 종종 병원에 가야 할 일도 있지만, 원내생이라는 큰 고비를 넘긴 본과4학년에게는 이제 무서울 것이 없었다. 원내생 수료를 위해서 마지막 넘어야 할 관문이 ‘신경치료’ 케이스 점수다. 내가 환자를 구해서 수련의 지도하에 신경치료를 시작부터 마무리 까지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수련의 선생님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 제일 어려운 관문인 ‘신경치료’ 케이스 까지 , 이미 4학년 1학기에 모두 끝내버렸으니 4학년 2학기에는 아무런 걱정이 없는 시기다. 이제 곧 졸업을 앞둔 시기여서 선배들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학교에는 후배들만 있으니 학교생활하기에도 편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