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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b Sep 03. 2023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Tell me about yourself

누구에게나 이야깃거리는 있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보다리는 아무에게나 열리지는 않는다. 친하고 편한 사람에게 허용되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가장 가깝기 때문에 불편해서 꺼낼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가끔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 다시는 마주칠 일이 없는 사람에게 내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더 쉽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환자에게 의사란 이 마지막에 해당되는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시간이 없는 의료진과 대화의 시간이 필요한 환자들 사이에 이야기를 어떻게 주고받는 것이 좋을까? 한쪽만 사정을 봐주다가 이 관계의 균형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사와 환자의 대화 중에는 주도권을 의사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의사가 더 많이 알기 때문에, 경험이 많을 것이기에, 아마도 맞는 말을 할 것이라는 분위기 때문에 환자가 지고 들어간다. 근데 그러다가 분명 불협화음이 생긴다.


'내가 정말 해야 할 말을 다 하고 나왔나? 뭔가 까먹은 것 같기도 한데...'


성급히 다음 환자를 위해서 자리를 비워주는 그 순간에 당연히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의대 다니고 있는 나 역시 의사한테 진료받고 나올 때도 그런데 의학 지식이 거의 없을 일반 환자들은 더 방치당한 느낌을 가질 것이다. 


환자이기에 대접을 받고자 한 것은 아니어도 적어도 내 시간과 돈을 지불한 만큼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단을 제대로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의사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결해야 할까?


한국은 잘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오랫동안 산 사람의 입장으로는 보험체계가 엉망인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같이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민보험 시스템이 없기에 많은 미국인들은 아직까지도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오바마 전 대통령 정부가 오바마케어(Obama Care)를 정책화시켜서 많은 시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건강보험을 들을 수 있도록 돕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미 무너져가고 있는 미국의 보험 시스템을 살릴 수는 없었다. 긴급한 상황 속에서 급한 수혈 정도가 되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It's fixing an already broken system. 

이미 고장 나 버려서 지금 이 순간에도 망가지고 있는 미국의 보험체계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다. 사보험 회사들과 제약회사들은 국민보험을 원하지 않고 날이 갈수록 미국에서 드는 의료비용은 천정을 뚫고 있다. OECD 국가 중에서 일인당 의료비를 제일 많이 쓰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비스적으로나 비용에 비해서 치료에 대한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너무 명확한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미국은 첨단 의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한 번 즈음이라도 들어봤겠지만 이 역시 소수의 엘리트 병원에만 해당이 된다. 그리고 MGH, Johns Hopkins, UCSF과 같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기관들마저 자본주의적인 정책과 경영진의 우선순위를 피해 가기 어렵다. 


비용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사실 어처구니가 없다. 미국은 50개 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50개 주에서 맹장수술비가 전부 다르다. 환자가 어떤 보험을 쓰는지, 어떤 의사가 수술을 하는지 그리고 어떤 약을 쓰는지에 대해서 가격을 내는 요소들이 장소마다 서로 다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환자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에 대해서 의료진들은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을까? 답답하지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회피하고 있다고 보면 되는 것 같다. 체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의사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직업상 환자를 배려해야 한다. 그게 맞는 일이다. 이전 글에 적은 것과 같이 큰 변화를 바라기 이전에 내가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소통의 부재로 인해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이 많다면 적어도 나는 내 환자를 어떻게 편하게 할 수 있을지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잘 듣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무언지 고민해야 한다. 돈 받고 일하는데 성장하지 않는 의사는 점점 견고해져 가는 휴리스틱에 의존해서 여태까지 했던 대로만 방식만 고수할 것이다. 이제는 안 된다. '사'자 붙은 직업 중에서 제법 안전하다고 여겨진 의사도 AI와 경쟁하게 된다. AI보다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아직도 기계보다 사람과 대화하고 싶을 것이다. 어드밴티지가 하나 찾았으니 좀 더 잘해보자. 조금만 바꿔서 한 사람이라도 더 웃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작지 않은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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