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귀촌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침이와 호돌이네 May 06. 2022

한 해 농사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귀촌일기 중에서>

5월이 되기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날씨 예보를 보면 안심해도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버텼다. 결국 5월이 되어서야 텃밭에 온갖 채소들을 심었으니 이번이야말로 인간 승리다. 남들은 온갖 농작물을 다 심었는데, 시간도 많고 성질도 급한 농사꾼이 5월이 되기까지 손 놓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남들 따라 일찍 심었다가 냉해 피해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니 올해만큼은 내 뜻대로 하겠다고 굳게 결심한 터였다.

    

나는 텃밭에 심을 모종들을 비닐하우스에서 직접 키우기도 하지만, 일부는 장에서 구입하기도 한다. 특히 텃밭에 몇 포기씩 심는 경우는 모종을 구입하는 편이 훨씬 싸게 먹힌다. 씨앗 한 봉지를 구입하면 몇 년을 쓰고도 남는데, 오래된 씨앗은 발아율이 떨어지기도 하고 종자 구입비도 만만치가 않기 때문이다.    

5월이 되어서야 텃밭에 심은 모종들.

작년에 수확한 생강을 종자로 쓰려고 일부 남겨두었는데 곰팡이가 피었다. 나름대로는 보관에 신경을 썼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곰팡이 핀 생강을 퇴비장에 몰래 버리려다 아내한테 걸렸다. 그간 아깝게 음식물을 버린다고 아내에게 잔소리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하필이면 이럴 때 아내가 볼게 뭐람! 제 발이 저려 묻지도 않는 말을 혼자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잘 보관한 것 같은데 왜 썩었지?”    

 

장에 가서 생강 종자를 구입하려는데 주인아저씨께서 나를 힐끗 쳐다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생강 심어봤어요?" 아니, 왜 내가 농사꾼처럼 보이지 않나? 요즘 봄볕에 타서 얼굴도 검어졌는데 말이다. "그럼요. 그런데 생강 종자 보관이 안돼서 사러 나온 거예요!"  

    

그제야 말이 통하기 시작했다. "일반 가정에서는 생강 종자를 보관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차라리 조금 사시는 게 더 나아요". 말씀하시는 게 장사 속은 아닌 것 같다. 덕분에 옆에 있던 아내에게 체면이 조금은 섰다. "그것 봐. 다른 사람들도 생강 종자는 보관하기가 힘든가 봐!"      

생강을 심어봤냐고요? 내가 작년에 수확한 생강.

나머지 필요한 모종들도 구입했다. 어째 모종 가격이 작년보다 많이 비싸진 것 같다. 그동안 귀찮아서 모종을 만들지 않고 구입한 것도 많았는데 앞으로는 가능하면 집에서 만들어야 할까 보다. "어? 고추 모종 값도 많이 올랐네요!" 모종 파는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새로 나온 품종이라 종자 값이 많이 비싸서요. 그 대신 병에도 강하고 수확량도 많대요!" 

     

정말로 개량된 품종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대개는 모종이 비싸면 비싼 값을 한다.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고추와 토마토만큼은 비싼 품종을 찾는다. 텃밭 농사는 많이 심지 않으므로 모종 구입비로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지만, 나중에 보면 품종에 따라 수확량에서는 확연히 차이가 나기도 한다.    

  

‘그까짓 수확량이 얼마나 차이가 난다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차이가 나에게는 중요하다. 많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랑하기 위해서.     

올해 내 자존심을 지켜줄 토마토 모종들.

내 주위에는 친하게 지내는 형님들 몇 분이 계시다. 평생 농사를 지어오신 분도 계시고, 은퇴 후에 텃밭 농사를 시작한 분도 계시다. 평소에는 형님 동생 하며 잘 지내는데 텃밭 농사만큼은 은근히 경쟁을 한다. 마늘대가 얼마나 굵어졌는지, 고추가 얼마나 많이 달렸는지 슬쩍 비교도 해본다. 또 토마토 작황은 어땠는지 별것 아닌척하며 자랑도 한다. “우리 집 토마토는 터지지도 않고 7단까지 열렸어!” 여기에 기죽지 않으려면 당연히 비싸더라도 좋은 품종을 사야 한다. 

    

모종 파시는 아주머니 말씀대로라면 올해 우리 집에는 빨갛게 익은, 터지지도 않은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릴 것이다. 그때를 놓치지 말고 형님들을 초대해야겠다. 그리고 그 진한 향의 맛있는 토마토를 드셔 보라고 해야지. 형수님들도 부를까? 나중에 집에 가서 잔소리 좀 들으시라고. 생각만 해도 너무나 신나는 일이다. 


고추 모종도 한 판(36포기)을 샀다. 이 정도면 마른 고추 2관은 수확할 수 있으니, 우리 집 김장하고 1년 먹고 고추장까지 담글 정도의 양이다. 올해 우리 집 텃밭에 심는 농작물의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종류는 30여 가지나 된다. 어차피 우리 식구 자급용이니 양이 많을 필요도 없다.   

텃밭에서 비트가 폭풍성장 중에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른 새벽에는 기온이 3도를 오르내렸다. 그간 서리가 내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지 모르겠다. 기상청 예보에 의하면 앞으로는 새벽에도 온도가 10도는 된다고 한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남은 모종들을 전부 텃밭에 옮겨 심어야 할 때이다. 이른 봄에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비트, 브로콜리, 콜라비 등 추위에 강한 작물들은 이미 텃밭에서 폭풍성장 중에 있다. 아직도 일부 모종은 너무 작아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 대개는 모진 생명력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는다. 


이제 시작인데 올해 한 해는 날씨가 어떻게 변덕을 부릴지 모르겠다. 아무리 공을 들여 작물을 키우더라도 기상이변으로 어느 한순간에 망가질 수도 있는 게 농사이니까 말이다. 작년 6월에 우박이 옆 동네를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부러진 고춧대며 우박에 찢긴 사과를 보며 망연해하시던 지인들의 얼굴이 잊히지가 않는다. 그래서 농사는 하늘이 도와주어야 한다. 


다가올 미래를 알 수는 없다지만, 텃밭에 심은 파릇파릇한 모종들을 보면 올해는 은근히 농사가 잘 될 것만 같다. 한두 번 속은 것도 아닌데, 해마다 봄이 오면 희망에 부풀어 농사를 시작하는 것. 이런 게 바로 농부의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올해도 한 해 농사도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