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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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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May 20. 2022

땅콩은 쥐도 새도 모르게 심어야 한다

<귀촌일기 중에서>

해마다 우리 집 텃밭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물이 있으니 바로 땅콩이다. 원래 지인이 먹으라고 준 땅콩을 조금 남겨 텃밭에 심었는데, 지금은 땅콩의 고소한 맛에 빠져 한 해도 거르는 법이 없다. 사람들은 우리 집 땅콩을 맛보면 감탄을 한다. “와! 이렇게 토실토실하고 고소한 땅콩은 처음 봐요!” 알도 굵지만 내가 맛을 봐도 마트에서 파는 여느 땅콩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몇 년 전, 어느 농업기술센터에서 개발했다는 ‘꼬투리 채 심는 땅콩’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땅콩은 보통 꼬투리를 벗겨낸 다음, 우리가 먹는 땅콩을 종자로 심는다. 문제는 땅콩을 한 두 개 심는 게 아니니 매번 땅콩을 심을 때마다 꼬투리를 일일이 벗겨 내는 게 보통 번거롭고 손이 아픈 게 아니었다. 그런데 땅콩을 꼬투리 채 심어도 된다면 그 편한 방법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꼬투리채 심으면 수확량이 두 배로 늘어난다고 하니, 검증만 되면 이 방법이 우리 집 땅콩 표준재배법이 될 터였다.


껍질을 벗긴 땅콩과 (좌) 꼬투리 채 심을 땅콩을 (우) 준비했다.

그런데 좋다는 것 따라 했다가 실패한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아무리 남들이 좋다고 한들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무조건 따라 할 리가 없었다. 초보 농사꾼이었을 때야 귀가 솔깃해서 따라 했다지만, 경륜이 쌓인 지금은 먼저 앞 뒤를 따져보곤 한다. 그래서 땅콩도 시험 삼아 절반만 따라서 하고, 나머지는 예전처럼 땅콩 꼬투리를 벗겨서 심기로 했다.


폭이 85cm인 우리 집 텃밭 한 이랑에 땅콩을 두 줄로 심곤 했는데, 이번에는 비교하기 쉽도록 한 줄은 꼬투리를 벗겨낸 땅콩을 심었고 다른 한 줄은 꼬투리 채 심었다. 같은 밭에 심었으니 이 정도면 나중에 어느 방법이 더 효과적인지 공정하게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참고로 꼬투리를 벗겨낸 땅콩은 물에 몇 시간만 담그면 되지만, 꼬투리채 심으려면 2~3일 전에 꼬투리를 물에 담갔다 심어야 한다.  


그런데 땅콩을 심으며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으니 바로 새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땅콩은 쥐도 새도 모르게 심어야 하는데 새한테 들켰으니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아마도 작은 새인 것 같다. 밭에서 땅콩 싹을 먹지는 못하고 파헤쳐놓기만 한다. 그러면 나는 뽑힌 땅콩을 다시 땅속에 심어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땅콩 밭에 드나들며 이기기 힘든 새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힘은 분명히 내가 센 것이 맞는데, 새들은 나보다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새들은 땅콩 싹을 뽑아놓았고, 나는 뽑아놓은 싹을 다시 심었다.

땅콩 밭에서 씨름하는 나를 보고 아내가 한마디 했다. “그러지 말고 목초액이라도 뿌려봐!” 아! 맞다. 목초액은 냄새가 지독하니 새들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예전에는 새를 쫓기 위해 콩에 석유를 묻혀서 심었다고 한다. 난 요즘 머리 쓰는 일은 전혀 하지 못하고 몸으로 때우는 일만 잘하는 것 같다. 그러니 새하고 싸움이나 하고 있지!  

   

새들이 뽑아놓은 땅콩 일부는 말라죽었다. 빈자리가 많아서 두 개씩 싹이 나온 땅콩은 하나를 뽑아서 빈자리에 옮겨 심었다. 이번에는 새 대신 내가 땅콩을 뽑아야 했다. 다행히도 땅콩은 옮겨 심어도 잘 죽지 않는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새들과 씨름을 했고, 나중에 땅콩 싹이 커지자 더 이상 새들이 달려들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입은 상처가 제법 컸으니 우리 집 땅콩 싹은 크기가 남들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이래서야 어디 땅콩이 열리기나 할까?  

   

이 한심스러운 상황에서 생중계를 하자면, 꼬투리를 벗긴 땅콩이나 꼬투리 채 심은 땅콩이나 싹이 올라오는 시기는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정확히는 꼬투리 벗긴 땅콩이 하루나 이틀 정도 빠르다. 꼬투리 채 심은 땅콩은 꼬투리가 쪼개지며 초록색 새싹이 보이고, 땅 밖으로 빈 껍질이 저절로 밀려 나온다. 참 신기하다.   

  

8월이 되자 땅콩 밭이 풍성해졌다.

처음에는 차라리 땅콩을 몽땅 뽑아버리고 다른 작물을 심고 싶은 유혹도 느꼈었다. 하지만 꾹 참고 온갖 정성을 다해 땅콩을 키웠다. 검증을 해야 하니까. 비록 시작은 초라했지만 가을이 되자 땅콩 밭이 남들보다도 오히려 더 풍성해진 것 같았다. 저 땅콩 밭을 보고 예전의 그 처참했던 모습을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마침내 땅콩을 수확했다. 꼬투리 채 심은 땅콩과 꼬투리를 벗겨내고 심은 땅콩을 비교했다. 과연 차이점을 발견하실 수 있으실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다. 약간의 차이가 보인다면 사진발 때문이다. 물론 올해에는 여러 가지 외적인 변수로 인해 제대로 검증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포기마다 매달려 있는 땅콩 수량은 거의 비슷했고, 우리 집 재배환경에서는 다시 재배를 하더라도 수확량이 두 배로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다.  

   

꼬투리 채 심은 땅콩(좌)과 껍질을 벗기고 심은 땅콩(우)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게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의 미세한 차이밖에 나지 않는 농법이라면 굳이 어느 한쪽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그냥 편하게, 잘 알고 있는 방법대로 땅콩을 심으면 된다.  

    

오히려 땅콩은 꼬투리가 열리는 시기에 인산이나 가리, 칼슘을 주는 것이 수확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처음에는 남들보다 생육이 훨씬 늦었지만, 수확할 때가 되니 포기마다 매달려있는 땅콩이 결코 남부럽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 이 정도면 됐다. 


올해도 우리 집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땅콩 모종을 만들었다. 밭에 옮겨 심은 땅콩 모종이 벌써 흙냄새를 맡았는지 파릇파릇하게 자라고 있다. 머지않아 땅콩은 예쁜 노란 꽃을 피우겠지. 시작이 반이라고 땅콩 농사도 절반은 지나간 것 같다. 앞으로도 우리 집 텃밭에서 땅콩을 계속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땅콩만큼은 꼭 모종을 만들어 심을 생각이다. 텃밭 농사를 지으며 더 이상은 새와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뭐, 새가 무서워서 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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