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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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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Sep 22. 2022

시골 산다고 다 건강한 것은 아니다

<귀촌일기 중에서>

시골에서 살아온 지 벌써 17년째가 되어가니 친구들은 내가 제일 오래 살 거라고 말한다. 시골에서 좋은 물, 좋은 공기를 마시고 직접 재배한 건강한 음식을 먹고 있으니 수명이 쭉쭉 늘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시골이 복잡한 도시보다는 오염이 덜 되기는 했다. 하지만 통계에 의하면 시골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도시 사람들보다 오히려 짧다. 보이는 것이 꼭 전부는 아니란 말이다. 

   

실제로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살 때 파킨슨병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농약의 사용이나 지하수의 오염 등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또 시골 사람들의 수명이 짧은 이유를 낮은 소득 수준과 부족한 의료시설에서 찾기도 한다. 시골에는 마땅한 의료기관도 별로 없고, 아프더라도 웬만하면 약이나 먹고 참으려 드니 병을 키운다.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나는 시골에 살면서 건강이 많이 좋아진 경우다. 농사란 것이 대부분 몸 쓰는 일이니 힘도 세어졌고, 세상 일도 적당히 모르며 살고 있으니 걱정거리도 별로 없다. 때로는 복잡한 세상은 모르는 게 약인가 보다. 하지만 아직도 찬바람이 불고 일교차가 커지는 가을이 되면 비염 증세가 나타난다. 시골에서 이 정도 오래 살았으면 없어질 때도 되었으련만, 비염은 아직까지도 나를 괴롭힌다. 

    

사과가 이제 물들기 시작했다. 이 후지 품종은 11월이 되어야 수확한다.

예전에는 약을 달고 살았었다. 봄에는 꽃가루, 여름에는 에어컨 바람, 그리고 가을에는 일교차에 의한 비염으로 고생을 했다. 그 외에도 내가 모르는 수많은 환경적인 이유로 거의 일 년 내내 훌쩍이며 살았던 것 같다. 어쩌면 이러한 건강상의 문제로 남들보다 빨리 시골로 내려왔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예전에 비하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봄에 꽃가루가 아무리 많이 날려도 거의 증세를 느끼지 못하고 지나간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철에는 에어컨을 끼고 살지만 아무렇지도 않다. 다만 요즘처럼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큰 가을이 되면 아직도 비염 증세가 나타난다. 

    

처음 시골에 와서 비염에 좋다는 것도 많이 먹었다. 환절기에 재치기로 고생하는 나를 보고는 지인 한분이 도꼬마리(‘창이자’라고도 함)라는 풀을 구해주셨다. “도꼬마리는 예전부터 염증치료에 쓰던 풀인데 비염에도 효과가 좋대!” 수많은 작은 가시가 달린 도꼬마리 열매가 효과가 있는 듯해서 아예 우리 집 텃밭에 심어서 복용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 잔재가 남아있으니 봄이 되면 텃밭 여기저기에서 도꼬마리가 싹을 틔운다.  

    

요즘은 도꼬마리를 손질하기가 너무 번거로워서 (가시가 달린 씨앗을 말린 후 볶아서 사용한다) 대신에 작두콩 끓인 물을 먹고 있다. 작두콩은 꼬투리 채 잘라 말린 후 볶아서 차로 끓여먹는데, 맛도 구수하고 효과도 좋은 것 같다.   

  

한동안 내 비염 치료제가 되어주었던 도꼬마리와 열매.

그간 가을에 나타나는 비염의 정확한 원인을 몰라 그저 기온차가 원인이라고만 생각해왔다. 그러다가 우연히 가을에도 꽃가루에 의해 비염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꽃가루는 봄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가을에도 많은가 보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없는 줄 알았다. 그리고 가을철 비염의 주범은 바로 환삼덩굴의 꽃가루라고 한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집 주변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온통 환삼덩굴뿐이다. 길가에 쳐 놓은 과수원 울타리도 환삼덩굴로 뒤덮여있었다. 시골 치고 환삼덩굴 없는 곳은 없는 것 같다. 환삼덩굴 줄기를 살짝 건드려봤더니 꽃가루가 먼지처럼 뽀얗게 날린다. 저렇게 많은 환삼덩굴 꽃가루가 흩날리니 내가 아직까지도 비염으로 고생 하나보다. 

     

가을 비염의 원흉인 환삼덩굴. 과수원 울타리를 아예 덮어버렸다.

9월 중순이 지나 예쁜 사과 색을 내려면 햇빛을 잘 받도록 도장지(위로 솟구친 필요 없는 가지)를 제거해 주어야 한다. 요즘은 밖에서 일할 때면 아예 마스크를 쓰고 지낸다. 과수원에서 혼자 일하는데도 그렇다. 옆집 아저씨가 평소와 달리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내 모습을 보시고는 말씀하셨다. “왜 햇빛에 얼굴 탈까 봐 마스크를 썼나?” “아뇨, 비염 때문에요” 환삼덩굴 꽃가루가 어떻고 설명을 하는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시다. 이상하게도 꽃가루에 시달리는 시골토박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지금이야 코로나로 뜸해졌지만 예전에는 단풍이 물들 때면 동네마다 단풍놀이 간다고 야단법석이었다. 이때쯤이면 대부분의 다른 과수농가들은 이미 한 해 농사를 끝냈고, 텃밭 역시 김장 채소만 남아 있으니 여유가 있을 때이다. 하지만 유독 사과 과수원만큼은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다. 도장지 제거가 끝나면 사과 잎도 따주어야 하고, 과수원 바닥에는 은박지도 갈아주어야 한다. 

     

남들은 을씨년스러운 가을이 좋다는데, 나는 아직도 가을만 되면 비염으로 괴로워한다. 파란 하늘은 좋은 데 아직도 찬 바람이 무섭다. 더구나 그 많은 과수 중에 하필이면 사과농사를 시작해서, 남들은 놀고 있을 늦가을까지도 과수원에 매달려야 한다. 


시골 살면 오래 산다고? 도대체 누가 그래?  


무심하게도 가을 하늘은 맑고 높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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