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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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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Mar 16. 2023

올해 농사는 쉬어야 한대

<귀촌 일기 중에서>

작년에 농사를 시작하신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은퇴를 하고 뒤늦게 텃밭농사를 시작하셨는데 오른쪽 팔에 문제가 생기신 모양이다. "인대가 끊어지기 직전이라 수술을 해야 된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인대 수술을 하고 나면 팔에 깁스를 해야 할 테고, 그렇게 몇 달을 지내야 한다는 건 올해 농사는 끝장났다는 말이다. “애고, 이를 어쩌나? 그러게 일을 좀 쉬엄쉬엄 하시지 그러셨어요!” 걱정한답시고 드린 말씀이 꼭 나무라는 꼴이니, 내 말에 별로 위로가 되셨을 것 같지도 않다. 

     

사실 그 지인이 농사짓는 땅은 텃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400평이라고 하면 겨우 고만큼이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그것은 농기계를 사용하는 전문농가의 얘기고, 초보 농부가 맨손으로 덤벼들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면적이었다. 그런데 의욕만 넘쳐 무작정 덤벼들었으니 몸이 먼저 탈이 난 것이다.  

초보 농부는 장비가 제대로 없으니 몸으로 일을 해야 한다. (출처: Pixabay)

농사를 처음 시작하신 분들은 한 번쯤은 꼭 신고식을 치르는 것 같다. 특히 농사 경험이 없는 초보인 경우에 더욱 그렇다. 처음으로 농사를 시작했으니 필요한 농기구나 장비가 제대로 갖추어졌을 리가 없고, 일머리를 모르니 단지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든다. 하지만 농사는 힘만 세다고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묘하게도 농사에 필요한 근육은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근육과는 다르다고 한다. 모종을 심을 때나 풀을 뽑을 때, 심지어는 수확할 때도 엉거주춤하거나 쪼그린 자세로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런 일은 힘센 나보다 날렵한 아내가 훨씬 더 잘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땅을 파는 일이야 내가 더 잘하겠지만.

     

내 주위에는 농사를 처음 시작하고 심하게 신고식을 치른 분들이 유난히도 많은 것 같다.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다 주말에만 텃밭을 가꾸는 한 후배는 농사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대상포진에 걸렸고, 은퇴 후 처음 농사를 시작한 친구의 아내는 감자를 심은 뒤 앓아누웠다고 한다. 그러더니 이제는 급기야 인대 수술을 하는 분까지 나온 것 같다. 

처음에는 층이 진 땅이었는데 흙을 메워 경사진 과수원으로 바꾸었다

물론 남 말할 것도 없다. 나 역시 귀촌 초기에 무리한 삽질과 호미질을 한 탓으로 아직까지도 손가락에 후유증이 남아있으니까.


귀촌 후 계단처럼 층이 있는 땅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때 과수원을 만들려고 흙을 메워 비스듬히 경사진 땅으로 바꾼 게 탈이었다. 흙을 파헤친 첫 해라 풀도 거의 자라지 않았는데 그 해에는 유난히도 비가 자주 왔던 것 같다. 비만 오면 과수원 가운데로 도랑이 생기고 흙이 쓸려 내려갔다. 


그 당시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으므로 (2년 후에야 비로소 밭 한 귀퉁이에 집을 짓게 되었다) 비만 오면 과수원으로 달려가서 삽으로 흙을 날라 도랑을 메워야 했다. 규모가 커야 굴착기라도 불러 공사를 하련만, 면적이 작으니 매번 몸으로 때워야 했다. 그때는 의욕만 넘쳐 힘든 줄도 몰랐고, 뒤늦게 손가락 관절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과수원 현재의 모습. 이제는 비가 많이 와도 걱정이 없다.

초보자들이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는 데는 외적인 요인도 있는 것 같다. 바로 집과 텃밭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텃밭이 집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밭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날마다 가기도 쉽지 않고, 며칠 만에 가면 그사이에 잡초가 머리를 내밀고 있다. 내일 또 오기가 쉽지 않으니 온 김에 일을 끝마쳐야 한다. 늦게까지 쪼그리고 앉아 일을 하려니 온몸이 파김치가 되는 것 같다. 집에 가면 틀림없이 또 앓아누울 것 같다. 예전의 내 얘기이자 바로 내 친구부부의 얘기다. 

    

그래도 초여름이 되기 전에는 말끔하게 풀도 뽑고 관리를 하는데, 장마가 시작되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한다. 장마 비가 계속되어 한두 주를 건너뛰고 밭에 가보면 이미 온통 잡초들로 뒤덮여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결국 농사를 포기하고, 가을이 되면 무성한 잡초 속에 얼마 열리지 않은 고구마나 땅콩을 수확하게 된다. 해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니 농사가 힘들고 어렵다고 한다.  

사과는 5~7개의 꽃이 뭉쳐 피는데, 제일 큰 것 하나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하는 것이 적과작업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농사에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농사 때를 놓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무리해서 일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사과 적과작업(많이 달린 과일을 솎아내는 일)은 단기간 내에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양분이 따버려야 할 사과로 가버리니 성장속도가 느려진다. 


하지만 그 많은 작은 사과를 일일이 떼어주는 데 시간을 여간 많이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더구나 과수원 규모가 큰 경우에는 더욱 어렵다. 인건비는 해마다 올라가고 일손은 구하기도 어렵다. 어쩔 수 없이 부부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죽어라 일을 해야 하니 몸에 무리가 오고 몸살이 나지 않을 재간이 없다. 

    

그래서 처음에는 작은 규모로 농사를 시작하고, 자신의 능력에 맞추어 서서히 농사를 늘려가라고 한다. 글쎄 맞는 말씀인 건 아는데, 사람 사는 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듯 농사일도 그렇게 계획대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    

시멘트 벽돌로 만든 화단. 화단 12개 만드는데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얼었던 땅이 녹고 따뜻한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우리 집은 토목공사를 시작한다. 내가 토목공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힘을 쓰며 하는 막노동이기 때문이다. 죽은 나무를 뽑아버리고, 유실수를 새로 심어야 하고, 화단 울타리도 새로 만들고, 뒷마당에는 지난겨울에 얻은 보도블록도 깔아주어야 한다. 시골일이란 놀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놀아도 되지만, 일을 하려 들면 끝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힘든 일을 하더라도 좀처럼 앓아눕는 일은 없다. 내 능력의 한계를 알기에,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꾸준히 일을 하고 있다. 시골일은 시험 전날 벼락치기로 공부하듯 해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아득했던 일들도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벽돌로 텃밭 화단을 만드는데 한 달이 넘게 걸리기도 했지만, 적어도 앓아눕지는 않았다. 

    

영화 ‘인생 후르츠’에서 주인공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시골일은 스스로 꾸준히 하는 거라고 했어요. 꾸준히 하다 보면 여러 일이 점점 보이거든요!” 할머니의 말씀이 유난히도 가슴에 와닿는다. 인대 수술을 하는 지인도 쉬엄쉬엄 하셨으면 좋았으련만.


시골일은 지치지 않도록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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