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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Jul 11. 2023

우리 집에는 예쁜 능소화가 있다

<귀촌일기 중에서>

우리 집 능소화가 예쁜 꽃을 피웠다. 정말? 우리 집에 그렇게 멋지고 고급스러운 꽃이 있다는 사실을 못 미더워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다. 어쩌면 그분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시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은 웬만한 유실수는 빼놓지 않고 다 있으면서, 관상수라고는 딱 소나무 세 그루뿐이라고 온 동네방네에 소문이 났으니까 말이다. 입이 방정이라고 그동안 지인들에게 수도 없이 말을 해왔다. “열매가 열리지도 않는 나무를 집에 뭐 하러 심어요?”     


내 말대로라면 그 소나무 세 그루도 진즉에 해치웠어야 했다. 하지만 그 소나무들은 옆집 아저씨께서 주신 소나무라 처분할 수 없었다. 예전에 야외용 테이블을 만들어 드렸더니 아저씨는 작은 소나무 몇 그루를 갖고 오셨다. 그리고는 우리 집 마당을 쭉 훑어보시더니 “여기가 좋겠어!”라며 위치까지 정해주셨다. 아저씨는 내가 나무도 심을 줄 모르는 왕초보라고 생각을 하셨는지, 직접 삽을 들고 소나무들을 심어주셨다. 그때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던 시기라 감히 거절을 할 수도 없었다.   

  

그 이후에도 운동을 하신다고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집 앞을 오가시니 소나무를 뽑아버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세 그루의 소나무들은 옆집 아저씨 백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옆집 아저씨 백으로 살아남은 우리 집 소나무

우리 집에 있는 능소화도 그 아저씨 댁에서 얻어온 나무다. 그 아저씨 집에는 커다란 은행나무를 타고 올라간 능소화가 있다. 은행나무만큼이나 높이 뻗어나간 능소화는 6월이면 짙은 다홍색의 꽃을 화사하게 피웠다. 주위가 온통 초록색으로 물든 초여름에 수많은 다홍색의 꽃이 피었으니, 마치 크리스마스 추리처럼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화사한 꽃에 매료되어 우리 집에도 능소화 한 뿌리를 얻어다 심었으니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 내가 자진해서 능소화를 심은 것을 보면, 내가 처음부터 유실수에 눈이 멀었던 건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 이상하네? 10년이 넘었다는데 왜 그동안 한 번도 능소화를 본 적이 없지?” 우리 집에 와보셨던 분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신다. “그야 못 보신 게 당연하죠. 제가 해마다 능소화 줄기를 잘라버렸으니까요!” 


능소화를 심은 위치가 문제였다. 능소화는 넝쿨을 타고 올라간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주위에 키가 큰 나무는 한 그루도 없었고 전부 회초리 같은 나무들뿐이었다. 마땅히 능소화를 심을 장소를 찾기가 어려웠으므로, 고민 끝에 차고 옆 화단에 심기로 했다. 능소화가 차고 벽이라도 타고 자라주기를 기대하면서. 차고 옆 화단에는 작은 대추나무 두 그루가 심어져 있었지만, 빈 공간이 넓어 휑해 보였으므로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래 보였었다.         

차고 옆에 심은 능소화

능소화의 생명력이 그렇게 강한 줄을 몰랐다. 제자리에서 얌전하게 자라주었으면 좋으련만 능소화는 이리저리 넝쿨을 뻗으며 영역을 넓혀갔다. 급기야 능소화는 내가 애지중지하며 키우는 대추나무마저 휘감아버렸다. '아니, 저놈이 감히 내 대추나무를!' 가차 없이 능소화 줄기를 잘라버렸다.      


그 당시의 나는 꽃보다는 주렁주렁 열린 대추를 보는 게 더 좋았고, 또 달콤하고 싱싱한 풋대추를 먹는 시간은 더더욱 행복했다. 나중에 보니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고, 동네 분들도 꽃구경보다는 공짜로 얻어먹는 대추를 더 좋아하셨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같은 화단에 대추나무 말고도 울타리 콩이나 오이처럼 키가 큰 작물을 계속 심어왔으니 능소화가 발붙일 땅은 없었다. 해마다 죽으라고 능소화 밑동을 잘라냈는데도 뿌리는 살아있어 봄만 되면 어김없이 싹이 나왔다. 도대체 뿌리를 얼마나 깊게 뻗은 거야?      

우리 집 능소화 꽃. 서양 능소화를 닮았다.

시골살이 10여 년 만에 여유가 생겼나 보다. 어느 날 아내가 제안을 해왔다. “이제는 먹는데만 신경을 쓰지 말고 꽃도 키워봐야겠어!” 나도 조금씩 눈에 꽃이 들어오던 시기였다. 


그날 이후로 우리 집 화단에는 꽃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 집에는 목수국도 네 그루나 있고, 아이리스, 작약, 수선화, 상사화 등이 자라고 있다. 그 외에도 이름도 모르는 야생화들도 풀 속에 숨어 꽃을 피우고 있다. 이제는 능소화도 제대로 키워봐야지!  

   

해마다 자르던 능소화 줄기를 내버려 두었더니, 한 해 만에 줄기가 벽을 타고 지붕까지 올라갔다. 더구나 능소화 옆에 있던 대추나무 두 그루는 병에 걸려 뽑아버렸으니, 차고 옆 화단은 온전히 능소화 차지가 되었다. ‘물 만난 고기’가 된 능소화는 신이 나서 화사한 꽃을 피웠다. 


능소화 꽃은 한 번에 활짝 피고 지는 게 아닌가 보다. 피었던 꽃이 지면 또다시 꽃이 피고, 피고 지기를 오랫동안 반복한다. 또 꽃은 시드는 법이 없이, 꽃송이 채 툭 땅에 떨어지며 생을 마감한다.  

     

문득 우리 집 예쁜 능소화를 자랑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능소화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렸다. “우리 집에 예쁜 능소화가 피었어요!” 바로 댓글이 올라왔다. “이웃님 능소화는 우리 전통 능소화가 아니고 서양 능소화예요!” 아니, 갑자기 웬 날벼락같은 말씀을... 능소화는 다 똑같은 거 아냐?      


자료를 검색해 봤다. 미국 능소화 (이름은 ‘마담 갈렌 능소화’)는 꽃받침이 진노랑이고 꽃잎은 진한 다홍색이라고 한다. 사진을 보니 바로 우리 집에 핀 능소화다. 우리 전통의 능소화는 ‘중국 능소화’라고도 하는데, 꽃받침이 연두색이고 꽃잎은 진한 주홍색이라고 한다. 특히 꽃 가운데가 연한 노란색이다.     

서양 능소화 꽃과 (좌) 우리 전통 능소화 꽃 (우) (사진출처: Pixabay)

사진을 놓고 비교를 해 보니 차이점이 보인다. 우리 전통 능소화는 강렬함은 없는 대신 더 은은하면서도 우아해 보인다. 지금 나보고 하나를 택하라면 아마도 우리 능소화를 골랐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와서 지붕까지 타고 올라간 능소화를 바꿀 수는 없다. 그렇게 줄기를 잘라내도 죽지 않던 능소화를 다른 품종으로 교체한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지만, 굳이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지금도 다홍색의 하늘거리는 우리 집 능소화 꽃이 예쁘기만 하다. 조금은 덜 우아해 보일지는 몰라도 그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자신만의 강렬한 색을 비추며 살아가는 삶이 잘못된 것은 아니고, 다만 취향이 서로 다를 뿐이니까 말이다.   

  

차고 입구를 멋있게 장식하려고 능소화 줄기를 유인해 주었다. 능소화 꽃이 활짝 핀 차고 입구가 우리 집에서 제일 예쁜 장소가 될지도 모르겠다. 계속되는 비로 많은 꽃들이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지만, 앞으로도 한동안은 예쁜 꽃들이 계속 피어날 것이다.     


우리 집에는 예쁜 서양 능소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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