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송곳 Jun 27. 2023

마당에 파묻힌 비밀을 파헤치다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 원작소설 후기

*ENA 채널에서 월,화 오후 10시에 방영되는 김태희, 임지연 주연의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의 원작소설 후기


제목: <마당이 있는 집>

저자: 김진영

출간일: 2018년 4월 30일


 <마당이 있는 집>의 사건은 주란의 집 뒷마당 화단에서 풍겨오는 역한 시체 썩은 냄새로부터 시작된다. 판교 신도시의 깔끔하게 리모델링된 주택, 그리고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주란을 위해 남편이 설계한 뒷마당의 화단. 주란은 남부럽지 않은 금수저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스물네 살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가정주부로 살아왔으며,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평화롭던 주란의 일상은 집에 놀러온 친구들이 ‘화단에서 동물 사체 썩는 냄새가 난다’라는 말을 하면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파보면 되잖아. 그게 뭐 어렵다고.”     

 친구들이 돌아가고, 주란은 야전삽을 꺼내 화단 위에 올라선다. 그런데 주란의 눈앞에 보인 실체는 식물의 뿌리도 아니고, 동물 사체도 아니고, 가늘고 긴 사람 손가락이었다. 그 날 밤, 주란은 퇴근한 남편에게 ‘화단 안에 죽은 동물 같은 게 있다’라고 언질한다. 남편의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태연하고 여유롭다. 남편이 본 화단에는 조개 껍질과 쓰레기만 가득했다고 한다. 주란이 본 시체는 어떤 연유로 화단 밑에 파묻힌 것일까? 주란의 남편은 왜 시체를 보고도 보지 못한 척 연기하는 것일까? 아니면 주란은 시체가 묻혔다는 망상을 하고 있는 걸까?


 부유한 삶을 누리는 주란과 달리 상은은 백화점 2층 침실매장에서 판매직원으로 일하는 서민이다. 채광이 잘 드는 주란의 신축 주택과 좁고 어두운 아파트 후문 골목, 이십 년이 넘은 상은의 24평 아파트는 주란과 상은의 빈부격차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주란의 남편(박재호)의 직업은 의사, 상은의 남편(김윤범)의 직업은 의사에게 영업하는 제약회사 직원이라는 점에서도 경제적 격차,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상하관계가 명확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소설 <마당이 있는 집>의 흥미로운 점은 상반된 배경을 가진 주란과 상은이 본질적으로 닮아있다는 데에 있다. 주란과 상은은 둘 다 가정에서 남편에게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를 받는 수동적 존재다. 헨리크 입센의 소설 <인형의 집>의 주인공 노라처럼, 주란은 남편(박재호)의 허락 없이는 아무 행동도 실천하지 못한다. 연애 시절부터 주란은 10살 많은 박재호를 수평적인 연인으로서 보단,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자로 바라봤다. 부유한 박재호와 결혼하면서 상류층의 세계로 편입했다는 사실이 주란을 더욱 수동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오랜 세월동안 수동적인 태도를 유지해온 탓에 4월 9일 밤, 박재호가 김윤범을 저수지에서 살해했다는 의심이 들어도, 남편의 범죄를 적극적으로 입증하려 들지 못한다. 상은은 남편(김윤범)이 사망하기 전까지 가정폭력 피해자였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결혼 생활 4년간 김윤범의 폭언을 견뎌냈다.


누군가는 이런 남편과 사는 나를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직장에서 똑같은 잘못을 해도 경희 언니가 아닌 나에게 비난의 기운이 더 강해지듯,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약자인 나를 비난하는 게 훨씬 쉬운 법이다. 원래 세상은 약자에게 가혹하게 구는 법이니까.




 ‘남편인 박재호가 김윤범을 살해했을 것이다’, ‘박재호 혹은 김윤범이 미성년자와 조건만남을 했을 것이다’라는 의심은 점점 거대해져 수동적이었던 주란과 상은은 주체적이고 역동적인 행위자로 거듭난다. 주란은 4월 9일에 외출하지 않았다는 박재호의 말을 불신하고, 옆집 CCTV를 살펴보려 시도한다. 상은도 죽은 김윤범의 차에서 발견된 수민의 핸드폰을 발견하고, 김윤범의 숨겨진 비밀에 접근한다. 이전까지는 남편을 믿고 순종하는 원칙을 고수해왔던 이들은 조건만남의 대상인 수민, 가출청소년 패거리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다. 즉, <마당이 있는 집>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폭력적이고 지배적인 남편과 가정에 갇혀 있던 주란과 상은이 유리감옥을 깨고 바깥세상으로 탈출하는 서사라고 볼 수 있다.      


 데칼코마니같이 동질적인 두 여성 주란과 상은은 연대해야 할 대상이지만, 되려 서로를 경계한다. 대표적인 여성 연대를 그린 tvN 드라마 <마인>에서 재벌집 며느리 서희수, 정서현이 서로가 연대의 대상임을 알아보고 함께 힘을 합친 것과 대비된다. 소설 후반부에서 상은은 주란과 공모해 박재호를 죽이러 주란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 모든 계획은 김주란, 박재호 부부의 함정으로, 상은이 잠시 뒤를 돌은 사이 박재호는 수석으로 상은의 머리를 내려친다. 주란은 남편이 모든 범죄를 정신이상자라는 명목으로 자신에게 뒤집어 씌우려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박재호를 메스로 죽이려 시도하고 박재호와 같이 계단으로 굴러떨어져 박재호를 사망하게 한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여성 연대는 주란이 상은이 임신한 아이를 위해 바닥에 쓰러진 상은을 메스로 찌르지 않은 장면, 옆집 여자 미령이 주란에 집에서 난 시끄러운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한 장면에서 미약하게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주란과 상은의 ‘비뚤어진 여성 연대’가 소설 전개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생동감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여성 서사가 보여준 두 주인공 사이의 통상적인 협력 관계로 이야기가 진행됐다면, 너무나 예측 가능한 전개가 되어 스릴러 장르의 긴박감이 떨어졌을 것이다. 주란-상은 간의 느슨한 연대를 <마당이 있는 집> 드라마에서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연출 포인트이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 밀리의서재 IP 발굴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