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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도르 Apr 01. 2022

매화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책을 마치고

동산 옆을 지나 돌아오는 길

산비탈 따라 하얀 매화 피었다


애정 하는 것들에 대해 처음 이야기할 때

여린 가지 끝 하늘거리는 꽃잎 닮은 당신은

나이 들면 자그마한 꽃집 열고 싶다 했고


자신이 하나 둘 늘어놓는 이름에 맞춰

알고 있던 꽃말을 말하는 나를

당신은 개화에 다다른 봉오리 같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아히오 블루

로단테

프리지아

델피늄

마트리카리아


문장 대신 이름을 들판 위에 뿌렸고

이름에서 의미가 수줍게 피어났다


약속의 언어를 가꾸던

계절이 여러 번 지나가고

유독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피어 있던 꽃들 지고

씨앗도 더 이상 뿌려지지 않자

땅 위에는 어떤 것도 피어있지 않았다.


함께 애꿎은 언 땅을 파 보았지만

차디찬 손이 삽에 쓸려 상처만 남을 뿐이었다


머지않아 불안이 확신이 되었을 때

안간힘을 다해 잡고 있던 것을 놓고

다가가 서로의 손을 어루만졌다

차갑고 아린 감각만 있을 뿐이었다


처음으로 우리는 문장으로 말했고

 하나의 단문 끝으로

그곳엔 아무 기약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책을 마치고

동산 옆을 지나 돌아오는 길

겨울을 견뎌낸 매화는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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