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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향 Aug 03. 2023

암울한 결혼생활로 집을 나오다

다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으니 1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딸아이가 다섯 살 12월 추운 겨울이었다.

남편은 어느 때처럼 tv를 보고 있었다.

주방에 반쪽이 남아있는 배를 깎아서 소파에 앉았다.

그때 마침 아이가 왔길래.


아빠 배 하나 갖다 줘!


아이는 삐죽 대면서 싫은 눈치였다.

그 순간 갑자기 일어나서 오더니 과일 그릇을 집어던지는 것이다.

그릇은 산산조각이 나서 거실 주변에 널 부러져 있었다.

아이는 내 자동차 그릇인데! 하면서 깨진 그릇 주변으로 달려갔다.


안돼! 발 다칠 수 있으니깐 너 방에 가있어.


트집이 시작되어 불길했다. 오늘도 잠 못 자겠구나! 싶었다.

화가 난 남편을 피해 아이를 데리고 아이방으로 갔다.

남편은 아이방으로 쫓아와 책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거실에 깨진 그릇 치우지 못해!

자기가 던져서 깨진 그릇을 왜 치우라고 하는지 어이가 없었다.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남편은 나를 계속 치우라고 닦달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알고 핸드폰을 옷 주머니에 넣어뒀다.

무서웠다. 아이 목욕 시키고 나서 내복 바람이었다.

아이를 안은 채로 아이방에서 나와 집을 나왔다.

운동복 차림에 맨발에 슬리퍼 신고

3층 계단에서 혹시라도 잡으러 올까 봐 계단을 급하게 내려왔다.

우발적인 행동이었다.

하나님이 나를 구해주신 느낌이 든다.




일주일 전에 사건이 집을 나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직 이곳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12월 영하 날씨에 내복 입은 채 아이를 데리고 나오다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무언가 옷을 갖춰 입고 돈을 챙기고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이혼을 결심한 것도 아니었다.


돈도 없었고, 핸드폰뿐이었다. 아이 내복바람으로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집 옆에 있는 고깃집으로 몸을 피했다. 갈 수 있는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집을 나왔어.

무슨 일인데?

친정은 전주이고 아빠와 주말부부였다. 그 당시 전주집이었다.

일단 쉼터에 가 있어.

엄마 덕분에 쉼터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아이가 추워서 갈 수가 없는데요. “

”여기까지 와주실 수 있나요? “


경찰차가 왔다. 차를 타고 지구대에 무사히 갈 수 있었다.

아이를 안고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자초지경을 말했다.

아이가 갑자기 얼마나 놀랬을까. 아이는 어두운 표정이었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 싫었다. 이혼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긴급지원센터로 보냈다. 긴급지원센터는 일주일 동안 있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처음으로 남편과 떨어져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남편과 살면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마음 졸이고 살았던 5년의 시간은 지옥이었다.

행복할 줄 알았던 결혼은 외롭고 무기력했다.


너는 성격을 바꿔야 해.

너희 엄마는 너한테 관심도 없어.



밖에 나가서는 싹싹한 남자였다.

친정 식구들에게도 잘했다.

제철 음식 사서 집에 가서 고기도 굽고 잔치수, 족발 등

요리를 직접 만들어줬다.

엄마 아빠는 자상한 사위를 마음에 들어 했다.

집에서 그런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남편을 연약한 여자 상대로 자기 마음대로 움켜쥐고 화풀이 대상을 삼았던 것으로 보였다.

남편이 무서워 그대로 당하고 있을 뿐 소리 한번 질러 본 적이 없다.

부부싸움 할 때 남편이 물건 부시면 아내는 더 큰 걸 부숴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내가 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속이 시원하다.

가만히 있으면 우습게 보고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라 여기는 것 같다.



물건을 집어던지고 폭력 상황에 아이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는 상황이 걱정이었다.

늘 마음 졸이며 살아야 하는 그때.

내 집인데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그때부터 내 삶은 마음 편한 게 제일이다

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미 마음이 남편에게 멀어졌다.

신뢰가 깨졌다.

마음이 멀어지면 몸도 멀어지는 건 당연하다.

둘째가 유산되고 나서 피임을 몰래 했다.

그지 같은 결혼생활인데 둘째를 갖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로서 무책임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눈치 보며 어쩔 수 없이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왜 이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아이를 위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참고 살다가는 내 삶은 없고 마음의 병만 남을 것 같았다.

불합리한 것은 당당히 말해야 하는데. 그럴 힘이 내겐 없었다.

그 당시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고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5년 만의 결혼생활을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일단 집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혼 문제는 아직 결정 내리지 못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나의 행복만을 위해 결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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