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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향 Aug 07. 2023

가정폭력 쉼터 생활하며 이혼 결심하다

내 인생이 가장 소중하기에

2020년 써둔 초고를 세상 밖에 꺼내다


지금 상태로 집을 돌아가봤자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을 알기에.

가정폭력 쉼터를 가기로  했다.

여성쉼터 주소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들고 아이와

무거운 마음으로 나왔다.

긴급지원센터에 아이 겉옷과 겨울점퍼가 마련되어 있어 따뜻하게 입혀  나올 수 있어 다행이다.


슬리퍼 신고 무릎 나온 운동복 차림 옷을 입은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느낌이랄까. 남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서울 목적지 도착. 골목을 찾아 들어가는데

오래된 주택 2층 건물이었다. 똑똑똑 하고 들어갔다.

거실에 사람들이 양쪽으로 서서  반겨줬다. 같은 처지의 사람이라 그런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금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내가 왜 이곳에 와서 지내야 하는 거지?

이게 맞는 걸까. 선택한 건가 싶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우리 가정 포함해서 세 가정이 더 있었고

혼자 집 나온 사람도 두 명 더 있었다.

최근에 입소했던 60대 어머님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커다란 캐리어가방을 들고

집을 나오셨다고. 폭력 쓰는 남편하고 이혼 준비를 몇 년 하셨단다. 증거자료로 일기장을 쓰셨다면서 보여주시는데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하는구나 싶었다.

내가 어리석은 건가. 아무 준비도 없이 나왔으니.

뭐 갑작스럽게 그럴 수도 있지 뭐.

각 가정의 상황은 다르니깐.


2014년 3월 꽃샘추위로 바람이 매서운 날.

뼛속까지 마음이 허하다.

남편과 떨어져 지내면서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복잡했던 마음도 풀리기 시작했다.


단체 생활은 쉽지 않다. 집안일, 식사, 장보기 등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해야 했다.

번거롭다는 것보다 당연한 거라고 여겼다. 먹고 재워주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우리나라 복지시스템이 잘 갖춰있구나.

무엇보다 원장님과 선생님께서 마음 써주시는 것이 느껴졌다.


'원장님께서 폭력은 대물림 되는 거예요.'

'사람 쉽게 변하지 않아요.'

'지금 당장 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 것은 천천히 생각하세요.'


남편은 가출신고를 했다. 가출한 아내와 아이를 돌려보내달라고 시청에 민원을 넣었다.

민원이 들어와 쉼터 노출이 된 걸로 간주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적응이 되어갈 때쯤 낯선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 울적했다.




쉼터는 다른 가정들과 살아야 해서 많은 제약이 있다. 가족들을 자유롭게 만나지 못한다.

친정엄마는 바로 집에 들어올 줄 알았는데 들어오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언어폭력으로 모욕감을 느끼면서 아이 때문에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참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안타까웠지만 집에 이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여겼다.

이혼을 하든 집을 들어가든 후회 없는 선택을 해야 했다.


연예 3개월 만에 결혼해 서로 잘 몰랐다. 남자를 보는 눈도 없었던 것 같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고. 내가 이 남자를 선택했기에 감수하고 책임져야 한다. 부모님이 내 인생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이혼 결정도 내가 해야 하지만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집을 나오고 나서 아빠에게 공중전화를 걸었다.

남편의 폭력을 처음 이야기 하게 되었다.

아빠는 믿기지 않은 모양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부부가 살다 보면 힘든 시기가 있어.'

'이제는 안 그런다고 했어.' '아빠랑 약속했어.'

'집으로 돌아와라.''길어지면 안 된다.'


딸은 힘들어서 집을 나왔는데 어떻게 그 집으로 다시 들어가라고 할 수가 있지?

속상했다. 괜히 전화했나 싶었다.

공중전화 앞에서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수화기를 끊고 나서 한참 동안 눈물이 흘렀다.

부모님 만큼은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랐는데.

아무 데 기댈 곳이 없구나.

슬펐다.


집 나온 딸의 입장을 헤아리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힘을 빠지게 했다. 그래서 연락을 안 하고 지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부모님꼐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버스 타고 들어가는 길. 아이를 만나야 하기에 마음을 추슬렀다.


아빠 입장에서는 딸이 잘 사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것 같다.

큰 딸로 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남편이 조금이나마 변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쉼터에 있으면서 남편에게 조건을 걸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전화를 해서 직장을 다니는 조건과 술 끊는 것을 말했다.

말로는 안 한다고 하지만 신뢰가 가지 않았다.

남편은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남편과 통화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

마음은 점점 멀어져 갔다. 기대감도 사라졌다.


쉼터 온 지도 5달이 지나는데 이혼을 결정 못하고 있으니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혼했을 때 장점 단점과 집에 들어가는 경우 장점 단점을 기록해 보세요.'

'글로 적어보면 정리가 될 거예요.'

 

다음날 아이 어린이집을 보내고 나서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a4용지를 꺼내와서 적어보았다.

종이 한 장이 빼곡하게 적어보면서 나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이혼했을 때 장점이 훨씬 많았던 것.

이혼을 하는 것이 나의 행복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에 들어간다면 남편 감당할 자신이 있어?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편안했다.

내가 살면서 오롯이 나를 위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은 처음이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많아졌다.

이제 더 이상 마음 졸이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돈이 없는 것은 걱정되지 않는다.

내가 뭐가되었든 돈은 벌면 되니깐. 마음 편한 것이 제일이다.

우울과 무기력증은 회복되어 가는 중이다.  



혼자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연하고 두렵긴 하다.

내가 선택한 것에 후회하고 싶진 않다.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하면 아이도 잘 자라겠지 싶었다.

엄마 행복이 가장 중요하니깐. 


남편과 다시 시작하는 것은 어렵겠구나. 

집에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

마음이 확고해졌다.



불안하고 두려울 때마다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두려워요.

혼자서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세요.

하나님밖에 의지할 때가 없어요. 저의 길을 주님이 원하시는 길로 인도해 주세요.


아이를 재우고 나서

두 잠든 고요한 시간.

매일 일기를 쓰며 마음을 다스렸다.

기록을 하는 재미도 처음 느꼈다. 내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통해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 알았다.


'앞으로 잘 될 거야. '

'힘내보자;'

내 마음을 다독여본다.




상담 선생님과 심리치료를 받았을 때이다.

어린 시절에 결핍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문제는 외로움이었다.

선생님은 밀가루를 준비해 오셨다.


'밀가루 만져 보세요.'

'선생님 밀가루 촉감이 부드럽고 따뜻해요.'

' 눈을 감고 엄마 배속에 있을 때 느껴보세요.'



엄마는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그 마음이 느껴졌다.

사랑이 느껴지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흘렀다.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면서 혼자 외롭게 있는 내가 느껴졌다.

외로움에 얼굴이 그늘이 졌다.


딸도 놀이치료를 받으면서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이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어떤 환경이든 적응을 잘하는 편이다.

아픔이 있는 엄마들이 모였기에 서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서로 다른 아이들, 엄마들이 모여서 단체로 지낸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적응 못하고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갈 곳이 없기에 쉼터 있는 동안 문제없이 잘 지내야 했다.

곳 없는 나에게 따뜻한 공간과 선생님들이 계셔서 든든하다.

아이들과 딸이 부딪치는 일이 생기면 내 아이를 혼을 내게 되었다.

내주장을 세우지 않고 조용하게 지내는 편이다.

사람들과 갈등 없이 지내려고 노력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은 즐거웠다. 한식요리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요리는 활력을 주기도 했다.  요리를 맛있게 먹으면 기뻤다. 요리가 재밌다.



쉼터생활을  잘 해낸다싱글맘으로 잘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규칙을 잘 지키고 관계에서 큰 문제없이 지낼 수 있었다.

집단 상담, 심리상담, 뜨개질, 종이접기, 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복잡한 마음이 들 때는 뜨개질이 최고였다. 뜨개질을 소질이 없는데 인형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몸통, 팔다리를 만드면서 인형이 완성된 것이 신기했다. 처음에는 잘되지 않아 풀었다 다시 하는 것을 반복했다. 잡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았다. 인형이 완성되었을 때는 마음에 풀리지 않는 것들이 정리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안정되지 못한 상황이다. 0에서 시작하지만 앞으로 뭐든지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 힘이 나에게 있다고 믿는다. 나는 책임감이 강하다. 아이를 데리고 나왔으니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아이를 데리고 생활고로 힘들어 자살을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싶다. 한번 사는 인생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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