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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향 Aug 12. 2023

사춘기 자녀와 상처 받는 엄마

아이를 통해 엄마 결핍을 알아차린다

아이가 2년 동안 교정 했던 장치를 떼러 가는 날이다.

'엄마 왜 일찍 시간을 잡았어?'

'나 더 자고 싶은데'

'변경한 거라 오전 시간밖에 없었어.'


'오후에 나가니?'

'아기들 데리러 가야 하는데 함께 갈 수 있나 해서'

'혼자서 안고 오던지 걸어오면 되잖아.'

'이따 비가 오면 그럴 수가 없지.'

'우산 쓰고 어떻게 둘을 안고 오니?"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모습에 기분이

상했다.

'됐어! '

'필요 없어.'

'엄마 나도 필요 없어.'


순간 아찔했다.

내가 실수했나.

아이가 오해할 만한 말을 한 것 같은 느낌.

진아 너의 존재가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니었어.

오해할까 봐서.

너 놀러 나가는데 서운한 마음에

아기 데리러 가는 것 너 없어도 된다는 의미였어.

아이는 아무 말이 없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버스는 온다면서 왜 이리 안 오는 거야.'


'버스 전광판을 봐봐.'

'지금 3 정거장 전이라고 하잖아.'

투덜대는 아이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아

불편한 마음이 올라온다.


아이와 오랜만에 나왔는데

외출할 때마다 기분 좋게 가는 날이 없는 것 같다.

기분이 다운된 채로 기다리던 버스를 탔다.

아이와 단 둘이 앉아가는데 침묵이 흐른다.

기분 안 좋을 때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순간 이혼하고 8년 전 아이와 교회 갔다 버스 타고 집에 가는 길

아무 말 없이 갔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삶이 고달프니깐 아이에게 말을 걸 여유가 없었던 순간이 스쳤다.

지금과 똑같은 순간의 모습에

불편해졌다.


아이와 수다도 떨고 알콩달콩 지내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으니 답답하고 속상하다.

큰 아이와 코드가 맞지 않는 걸까.

왜 아이와 대화만 하면 불편하고 분노가 올라올까.

<딸은 엄마의 감정을 먹고 자란다>

오전에 이 책이 손에 잡혀 읽었다.

귀 접기 한 부분에 메모가 눈에 띄었다.

2년 전에 만났던 책.

그동안 내가 상처가 많아 아이를 품어주는 것이 어려웠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상처가 많은 엄마일수록 자녀를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상처가 주는
정신적인 충격과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지할 수 없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다이소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사고 버스타고 대화나누며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친구 누구 만난다고 했지?'

'소희 만나는데.'

'그 친구는 누구야?'

'유진이는 친구가 많아서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엄마도 친구 사귀어.'

'집에도 친구 초대하고.'

'엄마도 젊은 사람처럼 꾸미고 다녀봐.'

'염색도 하고.'


'진이는 나중에 뭐 하고 싶은데.'

'돈 많은 백수.'

'뭐해서 돈 많이 벌건데.'

'고민을 해봐야지.'


'엄마 나 알바 언제 할 수 있어?'

'너 아르바이트하고 싶어?'

'그냥 궁금해서'

'네가 하고 싶으면 고등학교 때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20살에는 네가 돈 벌어서 하고 싶은 거 해.'

'나 자취 고등학교 때 할 건데.'

'예술고등학교 가고 싶단 말이야.'

'네가 가고 싶으면 노력을 해야지.'

'그때 방학에 댄스학원 다닌다고 했는데

안 하고 있잖아.'


'지금 뭐든 시도하고 다양한 경험 하는 것은 좋은 거야.'

'실패도 해보고 말이야.'

'엄마도 20대 하고 싶은 것을 못 찾아

지금 배우고 공부하잖아.'

'작가 꿈도 꾸고 있고'

'엄마 작가 50에 되는 거 아니야

'엄마 나이가 지금 몇 살인데.'

'지금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니깐

1년 안에 책 낼 거야.'


신호등에 걸려 창가 건너편에

아름다운 가게가 보였다.

'진이 엄마랑 살 때 아름다운 가게 자주 간 것 기억나?'

'응 기억하지'

'여기 좋은 물건 많아.'

'당근마켓처럼 그런 거잖아.'

'당근마켓과는 달라.'

'사람들이 기부한 물건을 매장에서 판매하고

그 수익금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하는 거야.'


'엄마 나 배고파.'

'뭐 먹을까.'

'삼계탕이랑 김치찌개 중에 뭐 먹을 거야?'

'김치찌개'





아이가 어제 시식하고 사온 비비고김치찌개에

두부를 송송 썰어 넣어 끓여줬다.

아이와 함께 밥 한 그릇 뚝딱했다.

아이도 오래간만에 밥을 다 먹어서 기분 좋다.

'엄마 김치찌개 맛있지?'

'응 맛이 괜찮네.'

'엄마도 이렇게 만들 수 있는데.'

'네가 집에서 밥을 잘 안 먹으니깐 엄마가 한 요리를 못 먹고 있잖아.'

'그럼 다음에 해줘.'

'진이가 먹고 싶을 때 말해'



아이들이 잠든 고요해진 밤

다시 박우란 작가 책을 붙잡았다.

많은 여성이 어린 시절 부모에게 맞추며 살다가

결혼해서 남편과 자녀에게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양보하고 살아가는데.

'딸에게는 감정적인 배출을 서슴지 않는다'는 문장을 보고 깊이 생각했다.

아이에게 감정적인 배출을 하고 살았을까.

어린 시절에는 떼쓸 때 감당이 안되어

분노가 올라와 손찌검을 했던 기억이 난다.


아이게게 전 남편 흉을 보거나

부정적인 말을 일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 아이는 엄마에게 감정적인 배출을 하는 걸까.

엄마가 가장 편하고 모든 것을 받아주기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엄마의 부족함을 책을 통해 배우며

나를 알아차린다.

아이 덕분이다.

큰 아이를 통해 나의 결핍을 알게 해 주고

쌍둥이와 함께 하며 깔깔깔 웃는 소리에

어린아이처럼 깔깔거리며 나도 웃는다.

1호가 뒤에서 안아주는 촉감이 온화해

사랑이 채워지고.

너희가 있어 엄마로 살아있는 순간이다.

부족한 엄마에게 와줘서 사랑을 알게해줘서

고마워.



너를 끝까지 믿어주는 엄마이고 싶다.
네가 힘들 때
 함께 울어주는 엄마이고 싶다.
언제나 너의 곁에서
함께 하는 엄마이고 싶다.

엄마가 부족해서 진이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엄마가 처음이라서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을 주는 것을 잘 몰랐어.
사랑한다.
2020. 10. 24  책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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