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가 사라지면 동네 서점도 사라집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은 동네 도서관에 들러서 자주 빌려 읽었고, 신간이나 소장하고 싶은 책은 교보, 영풍문고 같은 대형서점에 가서 직접 눈으로 둘러보고 샀다. 그래도 많은 비율로 예스 24, 알라딘 같은 인터넷서점 사이트를 이용해서 주문하여 읽었다. 가끔 양품의 중고책을 괜찮은 값에 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경제적인 소비를 했다고 스스로를 뿌듯해했다. 소비자 입장에서 인터넷 서점은 정가의 10%나 할인을 해주고 배송비도 무료다. 게다가 종종 이벤트를 하면 사은품도 끼워준다. 책방에서 정가를 주고 사는 것보다 현명한 소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때만 해도 기성 출판으로 접하는 책이 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지.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의 도서 소비 습관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빌려 읽는 걸 좋아했고 소장하는 책은 인터넷 주문. 어느 순간 독립 책방이라는 문화공간을 알게 되었고 그곳의 매력에 푹 빠졌다. 뒤에 바코드 없는 책들, 모양과 크기가 다양한 정말 난생처음 보는 책들이 었다. '이게 다 책이라고?' 책은 네모 모양에 일정한 두께를 가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게다가 다양한 책들을 모아놓은 공간이 책방지기의 감성으로 개별적이고 독특하게 꾸며져 있는 것도 전시공간 같고 너무 좋았다. 독립출판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책들이라는 점도 특별했다. 이제 대형서점보다 독립 책방을 더 선호하게 되면서 여행을 갈 때마다 그 지역의 독립 책방을 꼭 찾아다닌다. 독립 책방에 가서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볼법한 유명한 작가와 큰 출판사의 책도 사 오기도 하지만 책방에서 도서의 제값을 다 주고 사 오는 습관으로 변했다. 자연스레 인터넷서점은 찾지 않게 되었고.
도서정가제가 독립출판물 그리고 독립 책방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몰랐을 때다. 친구와 우리 동네 예쁜 책방에서 오랫동안 신나게 구경을 하고 있었다. 친구가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집어와 보여주면서 이 책을 사겠다고 했다. 나는 책방지기의 눈치를 슬쩍 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근데 인터넷으로 사면 더 싸게 살 수 있어..!" 친구는 타 지역에서 우리 동네에 놀러 온 것이라 기념품처럼 소장하겠다며 책 한 권을 구매했다. 나도 의미부여를 잘하는 타입이라 친구와 함께 그런 기분을 낸다면 좋을 것 같아서 한 권 구매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와 같이 산 책을 기념하면서 SNS에 올렸다. 그러다 책방 계정이 있길래 들어가 보았더니 오늘 책방을 들른 손님들에 대한 짧은 글이 올라와있었다. 오늘 친구와 함께 방문한 손님 중에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더 싸다고 했다는 말과 함께 아쉬움 같은 걸 내포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글이 나를 두고 하는 말임을 알았다. 부끄럽고 기분이 이상했다. 왜냐면 사실 이유를 잘 몰랐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책방의 책들의 유통되고 판매되는지 그 구조를 전혀 몰랐으니까.
현재 독립출판물을 냈고 그 책의 작가가 되어보니 도서정가제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낀다. 내가 결정한 책값에서 비사업자인 경우는 보통 65~70%의 공급률로 정산받는다.(독립출판물에 한해 60%를 제공하는 곳도 있다.) 예를 들어, 책 한 권에 10,000원이라면 독립 출판 작가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6,500~7,000원. 독립출판은 작가들은 자비를 들여 책을 제작한다. 나의 경우를 적나라하게 얘기하자면, 내 책처럼 컬러감이 있는 드로잉 책은 4도 인쇄 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흑백으로 인쇄할 때의 2배 가격이 책정된다. 100페이지도 안 되는 책이 풀컬러 인쇄해봤자 얼마나 들겠냐고? 황당한 것은 페이지 수로 가격이 정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처음부터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서 소량 제작을 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65%의 정산을 받으면 마이너스다. 70%로 정산받아도 5~600원 남는 정도지만 이마저도 택배비며 포장비, 세금을 떼면.. 남는 건 없다. 책을 쓰는 일 하나만으로는 직업으로서도 책방을 운영하는 것으로서도 참 어려운 것 같다. 독립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작가이거나 SNS 팔로워가 천여 명 또는 만 명이 넘어가는 소위 스타작가가 아닌 이상 예상 독자가 파악이 안 되는데 단가를 낮추겠다고 무작정 많은 부수의 인쇄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부수가 많을 경우는 책 보관이며 운송 및 배송비용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ISBN을 발급받아 대형서점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개인이 몇 천부의 많은 부수를 찍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럴 거면 기성 출판을 하라고? 이것도 참 어려운 부분이다. 출판사와 계약을 통해 이뤄질 때 작가의 의도와는 다른 쪽으로 작품이 변형될 수 있고 6~10%인 인세 그리고 기성 출판을 한다고 해서 모든 걸 출판사에게 맡기고 뒷짐 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각 출판의 형태는 정말 다양하고 장단점이 존재한다.
도서정가제가 폐지되고 대형서점이 마음껏 할인을 적용하게 되면 작은 출판사와 독립 책방의 경쟁력은 점점 떨어질 것이다. 그럼 더 이상 독립출판 작가들도 무모하게 독립출판의 작업을 하지 않게 되고 다양하고 독특한 독립출판물을 점점 사라질 것이다. 이는 독립 책방의 존립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전에 서울 어느 책방에 방문 입고했을 때의 일이다. 책방 대표님은 작은 책방을 운영하시면서 1인 출판사의 대표 그리고 작가를 겸하고 계신 분이었다. 정말 좋아서 하시는 일이라 즐겁게 일하고 계셨다. 처음 방문했을 때 커피 한 잔 하고 가라면서 커피를 내려주셨다. 작은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과 책방에 대한 생각들이 오고 가는데, 내가 문득 이런 질문을 했다.
"앞으로 책방은 어떨 것 같으세요?"
"좋은 독립출판물이 계속 나온다면 책방도 계속되지 않을까요?"
그 답변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이 공간이 유지될 수 있도록 나도 작품 활동을 느리지만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오래도록 독립출판물을 책방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정으로 문화를 즐기는 문화인이라면 제값을 온전히 주고 소비하는 가치를 분명 알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행동이 작가에게는 더 좋은 활동을 할 수 있는 지원이 되고, 독자에게는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기회를 준다는 것도. 독립 책방의 사정을 온전히 알진 못하지만 책 몇 권을 팔아 남는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책방을 운영하고 콘텐츠를 기획하고 월세를 내야 하는 사정이 그리 넉넉지 못한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서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책방을 가꾸는 멋진 분들이다. 그들의 꿈이 계속될 수 있도록 우리가 경제적 관점으로만 책을 대할 것이 아니라 나도 언젠가 문화를 생산해내는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과 건강하게 문화를 소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좋겠다.
해외사례만 보더라도 도서정가제를 폐지했다가 출판 생태계가 완전히 붕괴되고 다시 도서정가제를 재도입한 경우를 여럿 보았다.(https://blog.naver.com/dasan_books/222085729676 내용 참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안이란 건 없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다양한 가치와 공존해야 한다. 특히 신인작가, 작은 출판사, 작은 서점 등의 여러 곳에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조금씩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고 맞춰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어떤 가치를 물려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