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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Apr 04. 2024

허물어지는 존재의 변명과 절망

단편소설

카토가 가증스러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기괴한 모습으로 팔다리를 꺾인 그가 소파에 있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그는 이내 격하게 몸서리를 치며 몸을 긁기 시작했고 입에선 피가 섞인 거품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드디어 웃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자신의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자 카토의 고통스러운 몸짓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줄어들지 않는 것은 오직 카토의 의문뿐이었다. ‘왜 그녀가. 하나뿐인 나의 소중한 딸이 왜 나를.’ 그는 억울한 심정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얼굴의 표정에 담아 그녀에게 보였다. 


그녀는 깔깔 웃으면서 답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해? 내가 왜 당신을 죽이는지? 글쎄, 그전에 내 물음에 답하면 대답해 줄게. 당신을 나를 왜 낳았어?”


카토가 벌려지지 않는 입을 끔뻑거렸다.


“그… 야… 너희.. 어..ㅁ.. 마…. 를… 사랑했고…사… 라…ㅇ 의 결… 실이지….”


그녀는 정말 재밌다는 듯이 더 큰 소리로 웃었다.


“엄마는 먼저 갔어. 아빠. 당신은 행복하게 죽는 거네?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가는 거잖아. 하하하하하하하. 근데 그럼 사랑해서 때린 거야? 엄마하고 우리. 난 당신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소름이 끼쳤어. 선한 영향력을 끼친 100인이래. 사회적 약자에게 1억을 기부했다나? 당신은 회사에서도 최연소 승진자로 인정받고 있었다며 나랑 미사코가 초등학교 다닐 때 그 여자가 찾아와서 말해주더라. ”


그녀는 초등학교에서도 유난히 말수가 적었고 한 여름에도 항상 긴팔을 입고 다녔다. 그녀는 부모님께 옷을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았고, 친구들이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닌다고 놀려도 전혀 슬프지 않았다. 


단지 검은색 긴팔과 면바지가 그녀의 얼룩덜룩한 몸을 가려주는 것만으로 그녀는 비밀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얼룩덜룩한 몸보다 그녀의 어머니라는 사람이 걱정되었다. 그녀가 앨범에서 본 그녀의 어머니의 20대는 초봄의 목련처럼 하얀 눈부심을 담은 웃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어머니는 이제 며칠씩 집을 비운다. 그녀와 그녀의 여동생만을 두고서. 


그리고 돌아와선 그녀와 그녀의 여동생을 방안에 데리고 들어와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숨죽여 울면서 말했다. 


“미안해. 아빠가 미안하대. 이제.. 그러지 않겠대…. 이제부터 그럴 일 없을 거야..”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의 그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거짓말도 어머니의 슬픈 표정도 몸서리치게 싫었다. 


“엄마, 엄마는 왜 결혼했어? 그냥 돌아오지 말지…” 그녀의 질문에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뺨을 날카롭게 휘갈겼다. 맞은 건 그녀였지만 상처를 받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녀의 어머니였다. 그리고는 ‘부모한테 감히 그런 말을 하는 게 어딨냐며 고아원에 가지 않는 것을 감사히 여기라 했다.’ 


그녀는 그때 생각했다. 물리적인 위협보다 자신이 버티고 있는 안전핀을 뽑아버리는 것이 더 잔인한 일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그녀는 어머니에게 사과하고자 했다. 하굣길 정문에서 아버지 회사동료라는 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네가 미토구나. 아버지 닮았네.”


그녀는 조소인지 걱정 어린 눈빛인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미코를 데리고 그녀는 근처 슈퍼로 향했다. 그리고 먹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미코에게 억지로 비타민 음료를 사서 건넸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 든 미코의 긴팔 소매가 올라가자 보이는 멍자국을 보며 말했다. 


“네가 걱정돼서 왔어. 네 아빠 말이야. 우리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선배거든. 그래서 나도 처음엔 네 아빠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래서 선배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해내기 위해 노력했지. 그러던 어느 날 선배가 따로 보자더라. 난 드디어 내 노력이 인정받은 줄 알았어. 근데 선배의 손이 내 손을 잡더니 그 후는…. 아니야…. 난 바로 일어서서 뛰쳐나왔어. 다음 날 회사 가니까 선배를 포함해서 팀 사람들이 전부 나를 외면하기 시작했어. 마치 무언가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가 있는 듯한 느낌. 그래서 오늘 그만뒀어. 내 청춘 같은 곳이었는데 말이야…근데 그 선배 책상에 이 초등학교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이 있더라. 그래서 궁금했어. 너는 어떤 아이인지. 괜찮은지. 네 소매 안을 보니까 옛날 생각나네… 어린 너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네가 잘 지켜. 네 동생. 그리고 더 있다면 그 아내분까지.” 말을 마친 그녀가 미코의 소매를 내려주고 등을 두 번 두드려준 후 떠났다. 


미코는 형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의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미코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이물감 같은 감정이 생긴 것이 그때부터였다. 감정의 끝에 걸려있는 생각이 무엇인지 열심히 찾으려 했지만 미코는 찾을 수 없었다. 


미코는 더 이상의 발작을 멈추고 끔뻑이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아버지의 가슴을 신고 있는 하이힐로 지긋이 그리고 깊숙이 눌렀다. 미코의 아버지, 카토는 격렬하게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너도… 사회생활을 하면 알 거야..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지. 제발 그만하고…. 라….”


그 말은 들은 미코는 있는 힘껏 힘을 싣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물고 있는 담뱃재를 카토의 얼굴에 떨어뜨렸다. 미코는 그 말이 매우 거슬렸다. 카토가 가족을 학대하고 때릴 때 했던 말은 “내가 가족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며 수모를 겪는지 모를 거야.”라는 말과 함께 허리띠를 풀어 미코의 엄마를 미코를 그리고 미사코를 때리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인 미코는 아버지의 거짓말이 선명하게 보였다. 거짓말이 선명히 보일수록 미코의 세상은 무채색으로 보이는 날이 많아졌다. 아버지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단 한 뼘도 성장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기 자신만 가엽고 불쌍하고 외롭다는 이기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사실을 미코는 아버지라는 작자에게 알릴 생각이 없었다. 설령 그가 자각이라도 해서 용서를 구할까였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용서받지 못한 채 죽어야 했다. 미코는 한 뼘도 해결되지 않았던 슬픔의 세월을 담아 아버지 얼굴에 침을 뱉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긴 채 있는 힘껏 손찌검을 했다. 


“카토, 잘 들어. 이건 어린 왕자에 나오는 대사인데 말이야.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대.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는 거야. 그래서 당신은 죽는 거야. 나는 당신처럼 변명은 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이 불우했다느니 힘들었다느니 그랬다는 그런 거지 같은 말 말이야.”


미코는 목을 졸라 카토의 마지막 숨을 끊었다. 그리고는 누구보다도 도도한 발걸음으로 수화기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관할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자수하려고요.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위이 이 이이이 잉-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미코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오늘의 속보입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패륜을 저지른 한 여자가 오늘 경찰에 붙들렸습니다. 피의자는 경찰에 연행되는 순간에도 신난 듯 웃어 보여 경찰은 구속심사를 진행하는 한편, 정신감정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자세한 소식 9시 뉴스에서 전해드리겠습니다.]


미코는 변호를 원하지 않아 국선변호인의 변호를 받았고, 재판장에선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나 카토의 이야기가 나올 때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그런 그녀가 눈물을 흘린 일은 단 한번. 미사코의 탄원서가 재판부에 도착해 낭독될 때였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저의 미코의 이복자매 미사코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늘 미코와 친자매라고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집에 도착했을 때 잘 차려입은 여자가 아빠의 팔짱을 끼고 돈다발을 세며 저희 집을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왠지 저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현관을 열고 집에 들어가는 순간. 저희 어머니는 얼굴에 시퍼런 멍이 든 채 바닥에 쓰러져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황급히 어머니께 달려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기어와 저를 끌어안고 "불쌍한 미사코, 아무 일도 아니야. 아무것도 기억하지 말라."하시며 울었습니다. 그러나 제 시야에는 바닥에 널브러진 친자확인서와 친권포기각서에 낯선 여자 싸인이 날인된 채 뒹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미코와 제가 왜 하나도 닮지 않았는지. 아버지는 왜 한 달에 보름가량을 출장을 핑계로 집을 비우시는지. 그 여자는 마치 애를 낳아보지 않은 여자처럼 자유로워 보였는지 말입니다. 이윽고 귀가한 미코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미코는 결국 모든 게 들킨 사람처럼 눈을 질끈 감아버렸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존재만으로 엄마와 언니인 미코에게 죄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되자마자 저는 가족을 떠나 아주 멀리 도망쳤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른 채 몇 년이 지나 우연히 동창을 만났는데 미코와 엄마가 저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희가 가족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제가 같이 살아온 미코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 탄원서가 재판장에 잘 도착한다면 미코에게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정말 미안하다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끝까지 언니가 하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녀를 선처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을 위해 한 유일한 그리고 절실한 행동이었을 수 있습니다.]


재판부가 탄원서를 낭독하고 미코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미코는 말없이 고개를 흔든 뒤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을 가렸다. 그제야 미코는 자신의 바지에 여러 방울의 물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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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가정에서 조용히 죽어나가는 아이들이 없기를. 무책임한 이기심으로 생을 만들지 않기를. 가정 내 폭력으로 쓰러져 가는 사람들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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