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
홈플러스는 한때 한국 유통시장의 핵심 축이었다. 삼성물산이 1997년 설립한 후, 1999년에는 글로벌 유통기업 테스코(Tesco)가 인수해 ‘삼성 Tesco’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다. 이후 홈플러스는 이마트, 롯데마트와 함께 3대 대형마트로 성장하며 전국에 140여 개 점포를 보유하게 된다. 하지만 2014년 테스코 본사에서 대형 회계 스캔들이 발생하면서 위기가 찾아온다. 영국 내 수익 과대계상 문제가 불거지며 글로벌 신뢰가 무너졌고, 그 여파로 테스코는 한국 시장을 ‘비핵심 자산’으로 분류해 매각을 결정한다.
2015년, M사모펀드는 홈플러스를 약 7조 2천억 원에 인수한다.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이었다. M사모펀드는 홈플러스의 전국 점포 부지와 건물 등, 부동산 자산을 주목했다. 이들은 홈플러스의 영업 회복보다 ‘투자금 회수’ 자체를 목표로 설정한 전략을 취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방식은 바로 ‘세일 앤 리스백(Sale & Leaseback)’이다. 홈플러스는 주요 점포를 매각한 뒤 같은 장소를 임차하여 계속 영업을 이어갔다. 이렇게 확보된 자산은 고배당으로 이어졌고, 홈플러스의 지분 100%를 보유한 M사모펀드는 그 이익을 회수해 갔다. 이 전략은 단기간 수익에는 효과적이었지만, 기업 내부의 재투자 여력을 급격히 약화시켰다.
이러한 방식은 처음이 아니었다. M사모펀드는 과거에도 두산공작기계, C&M, 유진기업 등 다양한 기업에서 동일한 전략을 반복해 왔다. 부동산 자산을 매각하거나, 비용을 절감하고, 고배당 구조를 통해 빠르게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회사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현금화 가능한 구조만 유지한 채 빠르게 떠나는 전략. 이는 법적으로는 정당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고용 안정성은 무너지고, 지역경제는 침체된다.
홈플러스도 마찬가지였다. 인수 이후 신규 점포 출점은 중단되었고, 수많은 점포가 축소되거나 매각되었다. 재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온라인 쇼핑 확대에 뒤처졌고, 기업의 실적도 점차 하락했다. 결국 2024년, 홈플러스는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다. 대형마트 3강 체제를 유지하던 핵심 기업의 몰락은 유통업계 전반에 충격을 안겼고, 수천 명의 고용과 수많은 중소 납품업체, 지역 기반 경제에 위기를 초래했다.
실제로 홈플러스 점포가 철수한 지역들에서는 매장 폐점과 함께 정규직·계약직을 막론한 다수의 고용이 종료됐고, 식자재, 생활용품을 납품하던 중소기업들의 계약도 연이어 끊겼다. 한 지방자치단체 유통 담당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폐점 이후 중장년층의 고용 회복이 어려워 실질적인 인구 유출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전했다. 단순히 대형마트 한 곳이 사라졌을 뿐인데, 그 파장은 유통망의 붕괴부터 가족 경제의 불안정까지 이어졌다.
더욱이 이러한 전략은 ‘시장 회복력’과 ‘제도적 뒷받침’이 충분하지 않을 때 더욱 파괴적으로 작동한다. 기업이 내부 자산을 매각해 단기 수익을 창출하고, 재무제표상의 실적을 기반으로 배당을 확대하는 전략은, 장기적 생존을 위한 투자보다는 ‘현금화 가능한 현재’에 집중하는 구조다. 만약 정부의 규제 보완이나 산업 재편, 혹은 금융감독의 개입이 없을 경우, 이러한 방식은 시장 전반의 회복성을 갉아먹고, 생태계를 구조적으로 침식하게 된다.
최근 금융감독원장도 사모펀드의 행태에 대해 “책임 있는 자본으로서의 역할이 미흡하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사모펀드 관계자들은 여전히 ‘계약 구조상 문제없다’, ‘법률적 절차를 모두 따랐다’는 입장을 반복한다. 시장 내부의 파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반복되는 이 구조적 전략은, 자본이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투자자는 수익을 회수하지만, 그 회수 이후 남겨진 기업과 산업, 그리고 고용과 지역 사회는 치유되지 않는 흉터만을 안고 남는다. 이제는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문제로 바라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