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생각 #3
2023년 9월 16일. 날짜까지 기억하는 이 날은 세 번 째 치른 2차 시험의 발표날이었다. 기다림으로 따지면 두 번째 기다림이었다. 첫 2차 시험은 기대가 영 없었으므로.
몇 년의 수험생활로 깨달은 것은 고시가 기다리는 시험이라는 사실이다. 1차 시험 이후 한 달의 기다림. 2차 시험 이후 두 달의 기다림. 면접 이후 이 주 간의 기다림. 책을 부여잡고 일정한 하루를 보내면서 한 달을 보내고 계절을 보내다보면 1년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공부보다 기다림이 힘들었다. 공부의 어려움은 노력으로 커버할 수 있었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엄습하는 초조함과 막막한 기분은 나의 노력 범위 밖에 있었다. 종교나 미신에 기대어 비는 수 밖에 없었다.
시험을 마친 7월 초부터 9월까지 약 두 달간 내 힘으로 할 수 있는건 기다림의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이었다. 동네 맛집에서 서빙 알바도 하고, 꾸준히 운동도 하면서 주의를 분산시키고자 했다. 취준을 한다든가, 자격증을 딴다든가 하는 아주 의미 깊은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단순하지만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루틴들로 일주일을 채워넣었다. 생산적이지는 않았지만 기다림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럼에도 발표날을 앞두고 떨리는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발표 날짜를 고의적으로 캘린더에 기록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각인되어버린 날짜는 매 시간이 지날 수록 가까워지고 있었다.
초조함이 쌓이자 내 성격도 날이 섰다. 주변 사람들에게 살갑게 대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친구를 만나도 대화를 적극적으로 이어나가질 못 했고, 여자친구에게는 사소한 문제로도 예민하게 쏘다가 이내 사과하기를 반복했다. 사실은 전부 내 탓이었다. 내가 그 정도 그릇 밖에 되지 않았다.
급기야 발표를 일주일 앞두고는 바이오 리듬도 완전히 망가졌다. 눈을 감으면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리가 뿌얘지니 핸드폰 화면을 켜고 밤 늦게까지 인터넷 서핑을 한다. 낮에는 속이 메스꺼워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새벽이 되면 스트레스로 손에 집히는 대로 입에 욱여넣는다.
한 판에 삼십분 정도 걸리는 핸드폰 게임이 있다. 몇 판 하고 나면 순식간에 두 세 시간이 지나간다.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부여잡고 한 때 내가 제일 싫어했던 시간 죽이기를 했다.
그렇게 일주일 뒤면 인생이 끝날 사람처럼, 대책 없이 시간을 보냈다.
발표날은 공교롭게도 아빠의 생일날이었다. ’하필 음력으로 세는 탓에.’ 괜히 예민해져 또 툴툴거린다. 식당 예약 시간은 7시. 발표 시간은 6시. “불합격하면 그냥 집에 있을게요.” 하고 거실에 가족들을 모아놓고 불효자처럼 공언했다.
발표 시간을 10분 정도 남겨 놓았다. 작년처럼 핸드폰을 진동 모드로 해놓고 뒤집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가족들에게는 한번 두고 보자고 호기를 부렸지만, 막상 예정된 시간이 다가오니 주눅이 들었다. 침실과 거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의 취약한 모습을 부모님 앞에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엄마의 카톡에 저장되어 있는 늠름한 우리 아들이라는 프로필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오후 6시. 문자가 오지 않았다. 몇 초 정도의 짧은 정적이 있었다. 이내 아빠는 일년 더 하면 어떠냐고 말을 꺼내셨다. 애써 괜찮은 척 하는 아빠의 얼굴에서 실망감을 읽어낼 수 있었고 더 이상 거실에 있을 수 없었다.
죄송해요. 라고 한 마디하고 내 방 침실로 들어가려는 참에 문자 알림이 울렸다. 오후 6시 2분. 왜 2분이나 늦은거야.
2차 합격 문자가 오고 나서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분이 좋았고. 아빠의 생일에 불효를 저지르는 사태를 피할 수 있었기에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예약된 식당에 따라갔지만 속이 흥분으로 가득차 음식이 입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면접을 준비하는 3주 간은 마냥 기분이 좋았다. 자신감도 넘치고. 사교성도 회복된 것 같고. 다시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면접 이후 또 다시 기다림에 직면하게 되자 나약한 인간으로 되돌아갔다.
2주를 다시 폐인처럼 보냈고, 발표일에는 동일하게 불안에 떨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불합격했다. 2주의 기다림이 1년의 기다림으로 연장되었다.
어떡하지. 나이가 드는건 괜찮은데. 하루종일 책 부여잡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도 괜찮은데. 시험을 다시 치르는 것도 괜찮은데.
다만 더 이상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