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아닌 생각 #4
애증이라는 말을 종종 쓰고 또 듣는다.
정확한 뜻은 모르겠으나 사랑하지만 동시에 미운 구석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사랑한다고만 하면 민망하니까 귀엽게 “으휴 진짜 애증이다.” 라고 하는 걸수도 있다. 오글거리는걸 못 참아 하는 요즘의 정서에 적절한 단어 같다.
1. 좋아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대화가 잘 통하고. 재밌고. 같이 있고 싶고.
사랑한다는 것은 내 마음 한쪽을 떼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줄 수 있다고.
그러나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아서 고통스러울 때가 있었다.
2.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좋아했으면 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게 된 적이있다. 작년 가을, 시험이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내 사랑하는 친구는 철없는 얘기를 마음 편하게 나눌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각자가 하는 일이 달라지면 생각하는 것도 달라진다고 하지만, 만나는 내내 돈 얘기만 하는 친구에게서 예전의 좋아하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나는 그 친구의 소소한 일상이 궁금했지만 걔는 그렇지 않았나보다. 주식 얘기부터 코인 얘기까지, 달갑지 않은 주제의 말들이 계속됐다. 그래도 사랑하기 때문에 친구의 긴 얘기를 관심 깊게 들어주는 척을 했으나, 혹여나 싶어 가진 다음 만남 때도 도무지 다른 얘기는 하지 않는 친구를 나는 좋아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쓸쓸했다. 친구 하나를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을 떼어준 친구인데, 떼어진 마음과 함께 저 멀리 보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의 괴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을 했다.
이는 비단 친구와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오래 만난 애인, 가까운 가족, 먼 친척.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게 된 경우에 나는 어떻게 해야하냐고.
이후 나는 친구에게 의도적으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3. 좋아하려는 노력
이미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랑이 서서히 옅어질 수는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았다. 따라서 사랑과 좋아함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내가 그 사람을 다시 좋아하는 수 밖에 없었다.
올해 시험이 끝나고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험 끝났는데 왜 연락이 없냐고. 한 번 보자고. 친구를 보러가는 불편한 버스 안에서 여자친구와 헤어지던 작년 이 맘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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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날을 몇 달 앞 둔 시점이다. 인터넷에 권태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검색했다. 해외 포럼에 다수의 게시글이 주르륵 검색된다.
<애인을 다시 사랑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자친구를 다시 사랑하는 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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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엇비슷한 글들을 읽으면서, 이 모든 게시글들이 잘못 오해하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애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해답을 얻기 위해 인터넷에 이렇게 긴 고민 글을 올릴 이유가 없다. 여전히 사랑은 하고 있다. 다만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이다.
계속 브라우징을 하던 도중, 어느 이름 모를 상담사가 덧글로 올린 10가지 비법을 발견했다.
1)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보기 2) 서프라이즈 선물을 주기 3) 상대의 장점을 적어보기... 등등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노트에 받아 적었다. 그리고 이후 몇 주 간에 걸쳐 하나하나 실천에 옮겼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놓치고 싶지는 않았기에. 다시 좋아하고 싶었기에. 언젠가 후회할 것 같았기에. 끝까지 노력을 다하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그 모든 건 나와의 투쟁이었다. 그리고 그 투쟁에서 나는 끊임없이 지고 있었기 때문에 급기야 자기파괴적인 수준에 다다랐다.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끔찍하게 싫었고 그런 나 자신을 부정했다.
끝내 나는 이별했다. 원망스럽게도 헤어지자고 말하는 순간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나는 사랑은 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감정처럼 사랑도 그렇게 쉽게 없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별을 말하는 사람이 질질 짜는 꼴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이해한다. 칼은 내가 쥐고 있었지만 칼날은 나를 향해 있었다는 것을.
5.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별개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때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는 한다. 특히 인간관계가 그렇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오히려 가까운 인간관계일 수록 내 맘대로 되지 않음에 무기력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기를 바라는 것. 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또한 좋아한다는 것.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일치하기를 바라는게 욕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노력으로 좋아질 수 없는 것이라면, 그대로 내버려둘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그 길은 자기파괴적일 수 있다.
물론 애인과의 관계에서 마냥 내버려 두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함께하는 미래를 목적으로 하는 느슨한 계약관계로 이루어진 연인 사이에서는 사랑과 좋아함의 괴리를 무시하고 마냥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느덧 30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간은 비극적이게도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고, 기약 없는 기다림은 위험했다.
그러나 시간에 쫓기는 관계가 아닌 이상, 언젠가 다시 좋아지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마음은 변덕스럽기에 수 년이 지나고 다시 이전 같은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사랑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 그게 어쩌면 애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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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금세 서울까지 도착을 했다. 식당에서 친구를 만났다. 시험 보느라 고생했다. 힘들었지? 약간은 어색하지만 정이 뚝뚝 묻어나오는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먼저 나온 밑반찬을 한 두 젓가락 집어먹기가 무섭게, 친구는 작년에 했던 재미없는 얘기를 또 시작했다.
"맞아, 너가 저번에 말한 그 코인 맞지?" 이번엔 내가 말했다.
사실 나는 며칠 전에 이미 친구가 작년 만남 때 떠들었던 주식이며, 제테크며, 비트코인이며...에 대한 공부를 해놓았다. 여전히 기꺼운 대화주제는 아니었지만 이전 같은 티키타카가 그리워서 둘 간에 뭐라 할 말이라도 만들어보려고 공부를 조금 해간 것이다. 친구와 나와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약간의 노력이었다. 한 시간이 넘게 기껍지는 않은 대화를 열띠게 이어나갔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이자 친구 얼굴이 환하게 떳다. 그러더니 주섬주섬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투자 관련 서적이다. 나 선물 주고 싶어서 사왔다고.
이후 친구는 나의 소소한 일상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리고 아주 오래간만에 철없는 얘기를 나눴다. 간극을 줄이고자 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