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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꽃을 곁에 두기를

by Pecado

들판에 핀 꽃들은 수수하면서도 아름답고, 아담하면서도 화려하다. 호텔 로비에 장식된 꽃들은 인위적이면서도 실내 인테리어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다. 플로드지에 싸인 꽃다발은 드러내놓고 보여주면서도 은밀하게 느껴지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꽃이 좋다.


한때 반포에 있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 화훼상가를 즐겨 찾았다. 매주 일요일은 휴무. 운영은 자정부터 정오까지. 꽤나 오래전 일인데 아직도 외우고 있다. 그 시절 나는 삼성동으로 출퇴근을 했었고, 수요일마다 반포의 한 식당에 앉아 책을 펼친 후 느긋한 저녁식사와 반주를 즐기다 자정이 되면 화훼상가로 향했다. 발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신문지에 돌돌 말린 수입 절화들을 잔뜩 끌어안고서 도로로 나가 손을 뻗어 택시를 잡아타고 귀가할 때마다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택시기사님께도 한 다발을 선물하면 그 순간만큼은 낯선 타인과 함께 행복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매일 아침 눈뜨면 식탁 위에 화병 가득 담긴 꽃을 보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기운 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의 인생에도 실패, 상실, 배신처럼 고통스러운 일들이 많았다. 이런 큰 풍파들이 한 번씩 지나면 상처, 우울과 같은 흔적을 깊게 남긴다. 크게 좌절하다 못해 절망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꽃을 봤다. 신기하게도 인간은 예쁜 것을 보면서 활력을 되찾고 희망을 품는다. 어떻게든 딛고 일어나 의미와 교훈을 찾고, 끝내 자기 초월적 가치를 깨달아 타자를 지향하는 성숙한 삶을 살고자 만드는 것이다. 인생이 좀 쓰고 힘겨워도 꽃을 보며 밝은 미소로 기이고 또 점절하며 살아왔다. 이처럼 한 다발의 꽃은 한 사람의 하루를 기분 좋게 장식할뿐더러, 삶을 견지하는 자세를 바꾸게 한다. 그래서 나는 크고 작은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항상 꽃을 선물하는데, 이런 나를 잘 알고 있는 지인들로부터 꽃을 선물 받는 경우도 많다.


오랜만에 꽃 이야기를 들고 돌아온 사연이 있다. 연초에 선물 받은 꽃을 화병에 담아 둔 채 잊고 지냈다. 그리고 4주가 지난 지금, 내 눈을 의심했다.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절화들이 전혀 시든 기색 없이 싱그럽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모친께서 바쁘신 와중에도 아침마다 화병을 세척 후 물을 새롭게 갈아주었고, 줄기의 단면이 미끌거리는 절화들은 따로 솎아내 닦거나 잘라내는 등 정성껏 손질해 주셨다. 애정의 손길로 가꾼 덕분에 아직도 싱싱하게 살아 있는 것이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예정된 이별이 있다.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고, 생명은 너무도 짧다. 꽃 한 송이의 생명은 보통 일주일을 넘기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내가 매번 방치하다가 처음의 모습과 다르게 시들어 추하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이 꽃들을 보면서 느낀 점이 너무나 많았다.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은 말도 안 되는 기적을 일으킨다는 점, 방관하고 방치했던 지난 사랑들에게 죄책감이 들었던 점, 결혼을 한다면 모든 면에서 섬세하고 다정한 나의 모친과 닮은 분이랑 해야겠다는 점 등 말이다.


꽃도, 음식도, 대화도, 눈빛도, 미소도, 시간도, 마음도 모두 다정한 배려와 애정 어린 정성으로 보듬어주면 곱게 피어나 반짝이기 마련이다. 꽃을 보고자 하는 사람의 눈에는 어디에나 꽃들이 피어있고, 그런 사람들이 입을 열 때에는 누군가의 가슴에 꽃을 심는다는 마음으로 말을 놓는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꽃밭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주변에 항상 꽃을 두고 관상하며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진, 글: Pec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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