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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May 25. 2024

‘승무’와 ‘농무’의 거리

삼가 신경림 시인의 명복을 빌며

한국 민중시의 전범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신경림 시인이 돌아가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쓴다.


신경림 시인의 대표작 '농무(農舞)'를 처음 접했을 때 충격을 난 아직 잊지 못한다. 아마 대학 입시를 치르러 서울에 처음 올라온 직후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어느 신문에 해설과 함께 실린 '농무'는 당시 교과서에 실린 , 말하자면 지고지순한 아름다움이나 뭔가 고상한 생각을 표현하는 게 시라고 알던 내 인식을 단박에 깨 주었다. 도대체 무슨 시에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느니, 철없이 킬킬댄다느니, 뭘 여편네에게 맡겨둔다느니 하는 속된 말들이 나올 수 있지? 그런데 왜 조지훈의 '승무(僧舞)'나 박목월의 '나그네'를 접했을 때 느끼지 못했던 묘한 감정이 올라오는 걸까?


그 시에는 '산나루 건너서 밀밭길' 같이 극도로 추상화된 장소대신,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학교 앞 소줏집, 기름집 담벽,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 내가 살던 강원도 산골마을 어디선가 보았거나 보았을 법한 장소가 나온다. 그리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같이 관념으로 채색된 아름다움의 표현 대신,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는 둥,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다는 둥, 서림이처럼 해해댄다는 둥 어린 내가 눈과 가슴 깊이 담아둔 느낌과 장면들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이 모든 생생한, 뭐랄까 현장감이나 임재감 같은 이 내 가슴을 흔들어놓았던 것이다.


그 후 대학에 진학한 나는 문학이 전공은 아니었지만, <창작과 비평>을 통해 리얼리즘이라는 문학사조를 알게 되었고, 틈틈이 그 계간지에 실린 시들도 살펴보고 드물게나마 시집도 사보면서 시와 문학에 새롭게 눈을 떴다. 시인의 첫 시집 <농무>는 여러 하숙집과 자취방을 전전하면서도 내 책꽂이에 오랫동안 꽂혀있었다. 비유컨대 내가 문학을 이해하는 과정은 '승무'에서 벗어나 '농무'에 이르는 과정이었다.


얼마 전 같은 학과 친구 자제의 결혼식에서 아주 오랜만에 동기생 몇 명을 만났다. 결혼식장이 1960, 70년대 요정으로 이름 높던 '삼청각'이라, 대화는 자연스레 삼청각과 함께 당시 3대 요정 중 하나였던 '대원각'으로 이어졌다. 대원각을 말하게 되면 무슨 코스요리처럼 길상사, 법정스님, 본명이 김영한인 자야 여사 그리고 백석 시인으로 연결되게 되어있다. 당시 시가로 1천억 원에 달하는 대원각이 백석 시인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는 자야 여사의 빛나는 어록은 그 코스요리의 맛난 디저트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는 나만의 뇌피셜일 뿐이었다. 그들은 길상사와 법정스님까지는 아는데 그 이후 코스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금융권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낸 이력이 그렇게 나타났던 것이다. 유신시절 국정교과서로 '국어'를 배우고 1980년대 초 대학을 다녔던 그들이 1990년이 다 되어 해금된 월북시인을 모른다는 걸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아무리 그래도 김소월, 정지용과 함께 우리나라 서정시의 큰 산을 이룬 백석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 했다는 건 그만큼 그들편협되게 살아왔다는 증거가 아닐까. 모르긴 몰라도 오래전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승무'의 정서도 돈과 물질의 범람에 휩쓸려 까맣게 잊고 살아온 게 아닐까.  


금융 즉 돈이라는 매개체로 세상을 이해하며 살아왔을 그들은 어쩌면 나를 별 걸 다 아는 엉뚱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메마르고 푸석푸석한 지난 삶을 향해 강한 측은지심의 화살을 쏘아댔다는 걸 그들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넌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니?”라고 묻는 한 친구에게, “네가 주가 시세표나 시황 분석자료를 보고 있을 때 난 시집이나 평론집을 보았기 때문이지”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얼버무리며 그냥 웃고 말았다.


그날 내가 백석 시인과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멋진 시의 한 구절을 그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던 것도, 젊은 시절 한때였지만  소설이나 문학평론을 끄적거려본 것도, 그 출발점에는 신경림과 ‘농무’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시인은 가도 시는 남는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시인의 또 다른 대표작 '목계장터'에 나오는 이 절창대로, 시인은 하늘의 명을 받아 구름이 되었거나 땅의 명을 받아 바람이 되었을 것이다.


         

농무(전문)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 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 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 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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