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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서생 Jun 02. 2024

 『설국』삐딱하게 읽기

오랫동안 벼르다가 읽은『설국』. 눈,  온천, 사미센, 삼나무숲, 지지미... 이런 일본적인 고요의 상징들, 그리고 작품 깊숙이 보석같이 박힌 아름다운 문장들과 함께 나직한 울림이 있다. 그래도 모든 걸 좀 삐딱하게 보는 못된 버릇이 있는 내 눈에 몇 가지가 포착되었다.


첫째는 소설이란 장르의 정의 문제. 이 작품은 특별한 사건도 갈등도 없이 시종일관 밋밋하게 전개된다. 있다면 마지막에 등장하는 누에공장의 화재 정도? 하지만 그조차 전체 이야기구조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역자후기를 보니 '서정소설'이라는 묘한 용어를 썼던데, 하기야 '서사시'도 있으니 공감이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이야기가 있는 에세이'라고 해서 틀릴 것도 없지 않을까?


둘째는 작품과 시대의 관계 문제. 이 작품의 완결판은 1948년에 출간되지만, 집필된 때는 1935년 전후다. 그 시기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삼킨 군국주의 일본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앞두고 전국민적인 전시동원체제를 구축하던 때가 아닌가. 그런데 이 작품에는 이와 관련된 어떤 어떤 낌새도 없이, 미와 허무와 정욕의 유희 속에 머물고 있다. 이 문제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셋째는 번역의 문제. 내가 읽은 번역본은 민음사 판(유숙자 옮김). 총평을 하자면 전체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듯하지만, 실은 워낙 유명한 첫 문장부터 썩 마음에 안 들었다. 역자는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라고 옮겼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로는 "~설국이었다"이다. '국경' 즉 나라의 경계를 넘으면 다른 어떤 나라가 나와야 문장의 호응도가 더 높으니 '눈의 고장'보다 '설국'이 더 자연스럽다. 굳이 '눈의 고장'이라고 하려면 '국경'부터 다른 말로 바꿔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 “시마무라에겐 덧없는 헛수고로 여겨지고 먼 동경이라고 애처로워져도 지는 고마코의 삶의 자세가 그녀 자신에게는 가치로서 꿋꿋하게 발목 소리에 넘쳐나는 것이리라.” 이 문장은 무슨 뜻인지 도저히 해독이 안 된다.


넷째는 노벨문학상 선정의 기준 문제.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작품을 내세워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여기서 1968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때는 2차 세계대전의 패망국 일본이 한국전쟁의 특수를 발판 삼아 세계경제 2위 국가로 확고한 위치를 굳혀가던 시기다. 또한 이른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부정적 시각도 있기는 하나, 서구인이 동양의 문화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이국취미의 경향이 고조되던 시기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결과적으로 <설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좋은 번역과 함께 세계 2위의 국력, 서구인의 이국취미 등 작품 외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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