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영화로 본 <눈먼 자들의 도시>를 원작 소설로 읽었다. 원작 소설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가 제작되었을 경우, 소설의 미묘한 감정표현과 세밀한 배경묘사를영화가 못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더러 영화가 더 나을 때도 있다.<눈먼 자들의 도시>의 경우는 어떨까. 가물가물한 기억을 비집고 비교해 볼작시면, 영화가 원작보다 더 나은 것 같다. 좀 장황하고 반복적인 소설보다, 콤팩트하게 군더더기를 뺀 영화가 보기에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아뭏든조만간 영화도 다시 봐야겠다.
어느 도시에서 갑자기 실명이 유행병처럼, 예컨대 코로나처럼 번져서 대다수 시민이 실명하게 된다는 가상의 상황이 이 작품의 모티브다. 실명한 시민들은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가 탈출해서 집으로 돌아오고, 결국 다시 정상을 회복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행태들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문명의 진실을 묻고 있는 소설이라고나 할까. 이런 형식을 '알레고리'라 한다. 알레고리란 이솝우화라고 할 때 그 '우화'라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 몸의 중요한 부위, 가령 뇌나 손발에 비해 눈을 소홀히 여기기 쉽다.눈의 소중한 정도는 뇌나 손발 못지않은데, 그 소중함을 인식하는 정도는 그에 훨씬 못 미친다는 얘기다. 인간의 역사에서 시각이 차지하는 역할이 얼마나 지대한가, 그리고 두 눈을 뜨고 뻔히 볼 수 있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간은 얼마나 근시안적이고 맹목적인가, 포르투갈 출신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특유의 알레고리 형식을 통해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그리고숨은 그림 찾기처럼 실눈을 뜨고 살펴보면 작품 깊숙한 곳에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준비해 놓았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결국 작가는 이 말을 하기 위해, 황당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독특한 이야기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