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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고 사진과 '텅 빈 기표'

by 까칠한 서생

요시고 사진전에 다녀왔다. #Yosigo 는 스페인 출신 사진작가의 예명인데 왠지 일본어 느낌이 물씬 난다. 끝나지 않는 여행이라는 뜻의 전시 제목(#milestogo )에도 go가 들어있는 걸 보면, 새로운 소재를 찾아 늘 어디론가 떠나는 작가의 삶이 담겨있는 듯.


하나의 기호로서 그의 사진은 기의(즉 의미)가 사라진 기표, 즉 텅 빈 기표였다. 아무리 표현이나 기법에 비중을 두는 아티스트라도 의미를 담는 시늉이라도 낼텐데, 요시고는 닥치고 표현, 닥치고 기법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소재가 뭐든 관계없이, 노골적으로 새로운 표현과 기법을 통한 낯설게 하기를 끊임없이 실험하는 듯이 보였다. 20세기초 러시아 형식주의가 그랬다고 알고있는데, 내 기억에 그들의 말로는 좋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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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요시고 사진의 성과 중 하나는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것이 아닐까. 저쯤 되면 추상계열의 화가들이 자신들 나와바리를 넘지 말라고 촛불시위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멋진 자연을 보면 그림 같다고 해야할지 사진 같다고 해야할지 헷갈리겠다.


사람들은 그의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었고 나는 그들이 사진 찍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무한 거울의 방이 아니라 무한 사진의 방에서는 기의가 무한히 기표로 수렴되며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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