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 대학에서 정년퇴직하고 나서, 얼마전 자기 집 근처에 따로 연구실을 마련한 친구에게 액자 선물을 했다. 액자 안에는 내가 그린 그림이 끼워져있다. 행복한 글쓰기라는 제목 아래 글 쓰는 것과 관련된 소품들이 진열된 그림이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쓰라는 의미를 담아 그린 그림인데, 요 몇년간 글쓰기가 부담스럽다는 친구가 이 그림으로 더 큰 부담을 느끼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지인에게 직접 그린 펜드로잉을 액자에 담아 선물하는 건, 최근 몇년간 생긴 나만의 리추얼이다. 나름 상대의 취향과 내 희망을 고려해 그린 그림을 준비한다. 우리 세대에 특히 친구끼리 선물을 주고받으려면 잠시라도 어색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받는 사람은 야 이거 나중에 큰돈 되겠네 라고 말하고, 나는 그럴 일 없으니 꿈깨 라고 말하는 것으로 그 어색함에서 벗어나곤 했다. 이번에는 어떤 대화가 오갈지 궁금해지는 것도 이 나만의 선물을 준비하는 즐거움 중 하니다.
2.
드디어 책이 나왔다. 제목은《베이비부머, 네 겹의 시간을 걷다》. 표지의 신발(왕자표 운동화) 그림은 내가 그린 본문의 삽화에서 따온 것이다. 책을 내준 루아크 대표에게는 저녁식사와 함께 액자선물을 주는 것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액자에 들어간 그림도 본문에 삽화로 들어간 펜드로잉의 원화다. 책이 소재인 그림이니 사무실 한쪽에 세워두면 여러가지로 어울릴 것이라 생각해서 골랐다. 책은 11월 20일 오전 인터넷 서점에 입고되었다.
3.
외동아들의 생일을 맞아, 우리 부부와 아들 부부가 함께 함께 식사를 했다. 내가 준비한 생일선물은 (내가 그린) 한옥 그림 액자와 이번에 낸 책. 나만이 할 수 있는 선물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내 책(베이비부머, 네 겹의 시간을 걷다)에는 아들의 결혼문제를 다룬 '비혼의 강을 건너며'라는 글이 실려 있다. 많은 베이비부머가 비혼이라는 뜻밖의 사태 앞에서 당혹스러워한 경험이 있다고 본다. 나는 다행히 비혼이라는 강을 잘 건넜는데, 그 과정에서 마음 조리며 분투한 경험을 담은 글이다. 그 글 말미에 비출산에 대해 걱정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문제를 직접 전하지 않고 이렇게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하는 것도 신의 한수가 아닐까 ㅎㅎ
그건 그렇고, 아들 부부의 삶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점점 나아지고 있는 듯해서 좋았다. 무엇보다 AI의 거센 파도를 잘 타고 있었다. AI를 직업적인 위기로 인식하고 있는 젊은이를 알고 있는데, 아들 부부는 직업적으로도 AI를 오히려 기회로 여기고 잘 활용하고 있는 듯했다.
식사후 평창동 전망 좋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다음 만남은 1월초 며느리 생일 직전으로 날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