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환 Sep 21. 2022

운전면허를 공짜로 땄어

“내가 운전면허증을 일곱 번 떨어지고 여덟 번째 붙었잖니. 요즘도 주행시험에 그런 게 있는지 몰라. 우리 땐 언덕이 있고, 언덕 중앙 못 미쳐 정지선이 있고, 거기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주행하는 거. 그러다 뒤로 많이 밀리면 불합격이고. 여기서 매번 떨어지는 거야. 정지선에 앞바퀴를 맞추고.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뀔 때 까지 기다렸다가 클러치 떼고. 가속패달 밟고. 뒤로 밀리지도 않았는데. 틀린 게 하나도 없는데 번번이 불합격. 7번 떨어지고 그만할까했는데. 술자리 옆 테이블에 있던 어떤 모르는 분이 ”정지선에 앞 범퍼를 맞춰야지 왜 앞바퀴를 맞춰? 그러면 정지선에서 멈추지 않고 그냥 통과한 걸로 인식하는 거 아닌가? “ 하는 거야.  학원에서도 알려주지 않았고. 떨어질 때마다 내 울분을 들어주던 수많은 지인들도 건성으로 넘겼던 그 정지선 문제는 그렇게 어이없이 해결됐어. 오늘의 교훈. 남의 말을 들을 땐 주의 깊게 들어라 이거지“


학창시절 몰려다녔으나 자녀들이 학교를 졸업한 뒤에야 다시 모인 우리는 운전면허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난 우리 중에 제일 먼저 운전면허증을 땄을 거야. 운전면허증 따놓으면 군대 가서 편하다 길래 방학 중에 합격했지. 그런데 면허증 받은 바로 그 첫 날, 운전하다 가로수를 들이 받았어. 그리고 지금까지 운전대 잡아본 적이 없어. 덕분에 버스나 지하철타고 편하게 다니고 있어”


학교 다닐 때 아드레날린이 지나치게 많이 분비되었던 친구였다. 넘쳐나는 기운 덕에 격한 운동을 좋아했고 팔다리가 성한 날이 없던 친구였다. 오늘은 아들이 운전해줘서 편하게 왔다며 씩 웃었다.   


“ 난 운전면허증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공짜로 땄어. 내가 30개월 빵살이 했잖아. 집시법 위반으로. 학교 다닐 때 내가 좀... 음... 강했지. 의정부 교도소에서 지냈는데 출소할 때 교도관아저씨가 귀띔해주는 거야. 나가면 운전학원에 가서 1종 면허 등록하래. 그리고 교도소에서 해준 서류를 제출하면 학원비를 면제해준다는 거야. 갱생프로그램에 그런 게 있대. 한마디로 국비 장학생인거지. 출소하자마자 운전학원에 등록했지. 막막했는데 버스나 트럭을 운전할 수 있게 되면 얼마나 든든하겠어. 게다가 운전학원 아저씨들이 나한테 친절하고 공손한 거야. 내가 가여워 보였나? 덕분에 쉽게 붙었어.”  


 술자리가 정리될 즈음 빵살이 했던 친구는 계산서를 집어 들었다. 아드레날린 친구는 회비로 계산하면 된다며 말렸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내가 낼 일이 있어. 아들이 반수해서 의대 붙었거든. 그리고...”

“ 그리고? 뭐 또 있어?”

“ 이번에 회사 대표됐어. 우리 회사에 인재가 없어서. 나보고 한번 맡아보래서. 그냥...”


빵살이 친구는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길만 걸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지만 겸손했고 최선을 다했다. 그에게 돌아온 행복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가 이유 없는 불안감에 시달려 깊은 잠을 못 드는 일은 없을 거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이전 09화 정을 많이 주지는 않을 거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