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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의자 Sep 02. 2020

바이블 스토리

피에르 레비 글/ 피에르 프티 그림. 종교

큰 맘 먹고 성경을 통독한 적이 있었다. 몇 달에 걸쳐 인내심을 시험하며 그 두껍고 건조한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는 책의 내용 대부분을 바로 잊어버렸다. 수많은 등장인물과 맥락 없이 부각되었다 사라지는 사건들을 일일이 기억하는 것은 내게 벅찬 일이었다. 믿음 없이 성경을 읽은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짐작한다. 무신론자인 나에게 성경은 성스러운 책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록이라는 의미 정도였다. 이제 다시는 성경을 통째로 읽어보겠다는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경이나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의 의미를 낮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탄생 배경과 과정, 인간성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 중에 발견한 책이 레비와 프티의 <바이블 스토리>이다. 이 책은 구약과 신약의 중요한 이야기를 만화로 엮은 프랑스 책이다. 자칫 지루하기 쉬운 성경을 만화라는 형식을 빌려 재미있게 풀이했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크기도 흔한 신국판보다 크고 크라운판보다 조금 작다.    


성경은 종교의 경전이기 이전에 인류 문화를 담은 고전이다. 성경의 주요 공간적 배경은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고 그리스 문명이 발생한 곳이다. 수천 년에 걸쳐 그곳에서 흥망성쇠를 반복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담겨 있다. 굳이 신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 책에서는 절망과 희망, 좌절과 도약, 한숨과 함성이 교차하는 수많은 사건들을 만날 수 있다. 마치 전설이나 민담처럼 성경 안의 이야기들은 다른 지역에 같거나 비슷한 이야기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성경의 맥을 잡는데 이 책은 매우 유용하다. 핵심 줄거리를 잘 정리하고 있고, 역사나 인문학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도 충분한 생각거리를 제시해준다. 만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발칙한 상상력은 성경을 무거운 책이라고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이 책을 쓴 레비는 성경학자가 아닌 유대계 가톨릭 평신도 천체물리학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성경을 더 재미있게 풀이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도대체 기원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성경 문체에 식상해하던 사람들은 이 책의 현대적인 문체도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무신론자의 입장에서는 모세의 하느님, 바울의 하느님, 무마드의 하느님이 다르지 않다. 소중함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종교는 인류가 만들어낸 매우 중요한 정신적 유산이고,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종교 이해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종교 경전은 중계자를 통해 풀이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이것이 순진한 종교인들을 어리석은 대중으로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이다. 어차피 우리에게 종교가 필요하다면 조금은 가볍고 쉽게 접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원하는 사람에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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