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 너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씬"이 있다. 빛이 바랠 만큼의 세월을 보내고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그 한 씬... 건망증 때문에 매일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는데도, 그날의 그 장면만큼은 내 뇌리 어딘가에 박제되어 버린 걸까.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 몇 달이 되지 않은 때였다. 중학교 때 친구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다. K가 지금 위급한 상황이라고. 위급은 우리 나이에 걸맞지 않은 단어 아닌가.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겁이 덜컥 났다. K가 입원한 병실 문을 여는 순간 내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그만 다리 힘이 풀렸다. 어떻게 된 일이야 이게!!
그녀는 스스로 삶을 끝내는 극단적 시도를 했다. 병실 침대의 그녀는 식도가 다 타들어 그 어떤 것도 삼킬 수 없고, 말조차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입과 목에 호흡기며 의료기구들을 달고 있는 K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그 눈동자에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옆에서 K를 지켜보는 일은 무섭고 힘든 일이었다.
중학교 시절 우리는 학교에서 만나면 하하 호호 재밌게 잘 지냈다. K는 가정환경이 좋지만은 않았다. 부모님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 갈등을 빚는 일이 많았고 부모님 두 분 사이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K는 갑작스러운 혼돈에 빠진 것 같다. 늘 뭉쳐 다니던 애착관계의 친구들과 어쩔 수 없이 흩어지고, 남자친구와 사이도 나빠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에 많이 아팠던 것이리라.
K의 소식에 중학교 시절 앞뒤 자리에 앉아 깔깔거렸던 친구들이 한 걸음에 달려왔다. 이별을 고했다던 남자친구도 눈이 퉁퉁 부은 채 옆자리를 지켰다. 지독히도 무서운 긴장감과 불안감에 우리는 휩싸여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K에게로 향하는 '간절한 마음'들 때문인지 '온기' 또한 느껴졌다.
이삼일 후 결국 K는 떠났다. 번복할 수 없는 선택이었던 걸까. K는 번복하고 싶어 했다. 내게 K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였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그녀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
"살 고 싶 어"
그 병실에서 K는 안 걸까, 자신이 사랑받는 사람이란 걸.
10년이 지났고, 다시 10년, 또다시 10년이 지났다.
여전히 그녀의 마지막 말이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