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작심하다
시작은 이러했다.
영양제 먹는 것으로 건강에 대한 걸 다했다고 생각지 말고, '돈 들여서라도 제대로 근육 운동 하세요!'라는 노년내과 담당의사 정희원 선생님의 말에 자극을 받았다. 어느덧 오십의 나이가 됐고, 앞으로의 '나'를 그려보자니 그래도 꼿꼿하게 바른 자세로 서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하물며 나는 영양제조차 먹지 않고 있으니 큰 일이지 않은가. 허리도 아프고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뒤통수가 쑤시고, 왼쪽 눈은 염증으로 몇 달째 안과를 다니는 중이고 보면 '내 몸 방치'를 제대로 하고 있었다.
PT를 시작했다. 24회에 1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멋있게 일시불로 지불했다. 아깝다고 생각지 말고, 비싸다고 주저하지 말자라며 '오십에 사치 좀 하자' 다부지게 마음먹었다. 사실 난 헬스장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두세 시간 걷는 게 낫지 실내에서 머신들과 진땀을 빼는 건 지루해서 재미가 없다. 여하튼 요즘은 '근육테크'란 말도 있을 정도니, 그동안의 '지루하고 어쩌고 저쩌고'의 핑계들은 접기로 했다.
비명이 난무하는 PT의 연속이었다. 유연성이라고는 1도 없는 몸뚱이, 오른쪽과 왼쪽의 불균형, 내 몸 상태를 전혀 알지 못했던 무지함... 뭐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그래도 단 하나,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건 '코치의 긍정 가스라이팅(?)'이었다. 한 동작 한 동작할 때마다 손주먹을 불끈 쥐며 '할 수 있다' '파이팅' '좋았어요'를 미소 속에 외치는 운동 파트너. 처음에는 그 미소가 악마의 미소로 보였다.
50대 중반에 헬스장을 찾아온 이가 있었다. 그녀는 딸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있었다. 딸은 자기 관리를 안 하는 엄마가 창피했고 싫었다. 남편의 권유로 헬스장을 찾은 그녀는 지금의 나의 PT 쌤을 만났다. 쌤이 첫날의 그녀를 말하건대 몸 관리도 문제지만 얼굴 표정 또한 우울해 보였다고 한다. 한 달이나 나올까 싶었다. 그런데 꾸준히 약속된 시간에 운동을 나왔고, 1년이 지났다. 그녀의 몸은 변했다. 6개월에 6Kg을 뺐고, 1년 후엔 10Kg을 뺐다. 이 정도쯤 되니 사람들이 그녀의 변화에 놀라움을 표현했다. 엄마를 무시했던 딸이 먼저 변했다. 엄마의 관리된 모습에 대화량이 늘어났고, 이전의 냉랭한 사이가 녹기 시작했다.
"예전엔 모임 나가면 대화의 주제가 아이들 교육에 관련된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대화의 포커스가 저로 바뀌었어요. 사람들이 저에게 물어요, 어쩜 이렇게 달라졌냐고! 그러면서 어떻게 다이어트를 했냐고. 요즘 사는 재미가 나요."
딸과의 관계가 회복됐을 뿐 아니라, '나 중심의 대화'속에 높아진 자존심과 자부심! 그 기분이야 말해 뭣하랴.
두 번째 시간쯤에 나의 pt 쌤은 이 간증(?)을 했다. 그러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3개월이 지났다. 오늘 나는 20회 출석 사인을 했다. 세상에!! 출석률도 그렇거니와 중요한 건 나 또한 작은 '변화'들을 몸소 느끼고 있다는 거다. 뻣뻣한 장작 같았던 몸이 그래도 요새는 말랑말랑 해졌고, 유연함도 좀 생겼다. 운동 후의 '개운함'도느끼게 됐다. 나의 pt 쌤은 '자신을 사랑하라'를 pt 시간에 자주 말한다. 나를 위한 태교를 할 시간이라고.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일만 상상하는 '태교'를 나 자신에게 할 지니~!
이런 생각을 했다, 혹여 내가 부렸던 '짜증'들이 '내 몸의 피곤'에서 연유된 건 아닌가 하는. 그럴 수 있겠다. 나의 이유 없는 짜증들로 좋은 관계들에 균열이 갔던 건 아닌가.
사치하기로 먹은 맘, 당분간 이어나가야겠다.
오십... 사치는 정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