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는 나의 일상은 타인을 위한 시간들로 점철된다. 물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예쁘고 귀한 아기를 돌보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행복하고 보람된 시간이지만 하루 종일 아기 옆에서 작은 사람의 필요와 욕구를 채우는 일을 하다 보면 나 자신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육아를 하며 보내고 버티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나는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애쓴다.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을 들으며 세간의 소식을 접하기도 하고 책에 관한 유튜브를 틀어놓고 유튜브가 나를 인도하는 대로 표류하기도 한다. 오늘은 우연히도 알쓸인잡의 알츠하이머 편을 듣게 되었는데, 가슴에 콕 박히는 말을 듣고 한참을 그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김영하 작가가 풀어놓은 이야기가 얼마나 인상 깊던지. 내용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독일의 한 여성이 자신의 병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였다. 이 분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딸들을 집밖으로 내보낸다. 보통 병에 걸리면 다른 사람을 의지하고 싶어 하는 것과는 상반된 행동이다. 병에 걸린 나 자신을 받아들이면서도 병과 싸워 보겠다는 의지가 아니었을까. 그리고는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병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때 김영하 작가는 극한 상황에서 우리는 존엄을 지키기 위해, 내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한다. 안네의 일기처럼. 마치 나처럼.
나는 태생이 이과라서 그런지 본래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소 무미건조하고 시니컬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내 글도 건조하고 감성적이지도 못하다. 생전 글이라고는 보고서나 논문 밖에는 써본 적이 없는 나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글쓰기를 향한 열망이 생겼다. 바로 육아를 하면서부터 말이다.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내게 주어진 역할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로 존재할 수 있고, 이 시간을 통해 나는 누군가의 주변인이 아니라 철저히 내 삶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것이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까닭이다. 글쓰기 실력이 남들 보이기 부끄러운 수준이고 내 생각을 솔직한 언어로 풀어놓는다는 것도 민망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괴발개발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였나 보다. 육아와 돌봄의 그림자에 가려진 내 자신이 인간임을 알리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불러주는 동요 중에 '멋쟁이 토마토'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야 주스 될 거야, 나는야 케첩 될 거야
나는야 춤을 출거야. 멋쟁이 토마토'
우리 사회는 토마토가 주스가 되고 케첩이 되기를 요구하면서 스스로 존재의 쓸모를 증명할 것을 원한다. 실용적이고 경제적 효용이 있는 것을 최고로 우대해 주는 이 세상에 굴하지 않고, 멋진 꿈을 꾸는 토마토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꿋꿋이 춤을 출거라고 말하는 멋쟁이 토마토처럼, 나는 그렇게 오늘도 내 시간과 품을 들여 돈이 되지 않는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