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줄일기 쓰기를 시작하다.
세줄 일기 쓰기를 어느 날부터 루틴으로 추가했다. 시작은 루틴을 공유하는 소모임에서 세줄 일기 또는 감사일기를 쓰는 분들을 보면서부터였는데 이런 소소한 기록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바로 일상의 변화를 감지하면서부터였다. 남편의 일이 바쁜 겨울, 독박육아가 일상이 되고 하루종일 아이 말고는 어느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기 어려워지면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점점 감사와 행복이 사라지고 불평과 불만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아 너무 힘들다.. 쉬고 싶다'라는 외침이 계속되면서 내 삶 속에 그렇게 불평과 불만이 씨를 뿌리고 스멀스멀 똬리를 틀어갔다.
지친 몸과 정신으로 하루종일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일상에 활력도 사라졌다. 운동을 하기에도 너무 벅차고 무엇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부담으로 다가왔다. 운동은 미루고 미루다 더 미룰 수 없어질 때 겨우 겨우 횟수를 채우는 것으로 만족했고 독서며 글쓰기며 겨우 숙제처럼 가끔씩 읽고 끄적일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이, 운동과 독서와 글쓰기를 항상 옆에서 함께 해주는 동료들이 있어 이렇게 동굴에 들어가서 모든 의지를 잃어버릴 때에도 벌금을 내지 않으려는 외재적 동기에 힘입어 최소한의 활동들을 이어나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들이 어쩌면 나의 자아를 지탱해 준 최소한의 힘이었지 않나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매일 해내면, 일상에 먼지처럼 떠돌던 불안감—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는—이 점차 사라집니다. 일을 미루거나 해야 할 일로부터 늘 도망치는 사람(네, 접니다)이 평생 느껴온 자책감, 나는 안 될 것 같다는 무력감도 희미해지고요.
<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김신지 지음 > 중에서
예전에 시험공부를 할 때 나는 늘 규칙적으로 생활했었다. 아침 9시에 도서관에 앉아서 하루를 시작하고 늘 저녁 9시 정도에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만든 약속은 누구와도 공유하지도 않았고 강제성도 없었지만 이 시간을 어기면 시험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는 듯 나는 늘 시계를 바라보며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했다. 이것은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가끔 공부에 지쳐 멘털이 무너질 때도 나는 늘 자리를 지키며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어느 날은 공부가 잘 되지 않아 울면서 도서관에 앉아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던 동기가 내 등을 두드리며 말을 걸었고 내 눈물 젖은 얼굴을 보면서 당황해하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보면 다시 내 페이스로 돌아와 주어진 공부를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었고 관성의 법칙은 어김없이 그곳에서도 통했다.
그 관성의 법칙을 나는 현재 내 삶에 끌어와서 생각해 본다. 나를 지탱해 주는 최소한의 것들. 독서와 글쓰기와 운동. 그것들을 하는 시간이 마냥 행복하다고만은 말할 수가 없다. 가끔은 너무 하기 싫고 너무 지루하고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하는 현타 오는 순간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내 삶의 자존을 지켜주는 시간들이기에 일주일에 횟수를 정해 그것들을 지킨다. 그것들을 지킴으로써 무너져 내리려는 나 자신을 지켜낸다.
매일이 하루치의 인생이라고. 오늘을 잘못 쓴 메모처럼 아무렇게나 구겨 휴지통에 버리지 말고, 잠들기 전 5분 만이라도 시간의 틈새를 펼쳐 들여다보라고. 평범한 일상이 평범하게 유지되기까지 내가 어떻게 애쓰고 있는지, 그런 나 자신이 얼마나 대견한 건지, 똑같다고 여긴 하루하루 속에 얼마나 다채로운 기쁨과 슬픔이 숨어 있는지.. <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김신지 지음 > 중에서
이렇게 힘든 와중에 세줄일기 쓰기를 루틴으로 추가하고 며칠 시도해 보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내가 사용하는 일기 앱에는 매일의 기분을 고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파김치가 되어 늘어져있던 저녁이더라도 막상 오늘 하루가 어땠나 떠올려보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하루였던 것이다. 아이들도 자기만의 속도로 건강하게 잘 커주고, 가정은 평화로우며, 시간이 부족해도 짬짬이 내 자존을 세우는 일들을 미루지 않는 내 삶이 말이다. 아니, 미루면서라도 꼭 해내고 마는 내 삶이 달리 보면 자랑스러워지기까지 했다.
매일 비슷한 날들이지만 늘 똑같은 날은 아닌 것처럼,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나의 생각과 다른 말과 행동에 상처받을 때도 있었다. 이런 날들도 어김없이 저녁에 세줄일기를 쓰며 생각해 보면 그런 말의 저의가 걱정의 일환이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졌고, 그것이 내 존재에 대한 비난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가사분담의 미묘한 신경전에서 짜증이 났던 하루에도 일기를 적으려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남편 또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물에서 헤엄치는 오리처럼 보이지 않는 발장구를 끊임없이 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순간의 분노와 찰나의 서운함으로 하루를 못살았다고, 오늘 하루는 영 별로였노라고 규정하기에는 퍽이나 열심히 살아온 하루라 서글퍼지고, 돌이켜보면 꽤나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긍정하게 되는 희망적인 사고의 회로가 세줄일기 쓰기를 통해 열리기 시작함을 경험했다.
김신지 작가의 말처럼 하루하루에는 다채로운 기쁨과 슬픔이 숨어있다. 그것들을 늘 경험하는 것이 하루고 인생이 아닌가 떠올려보게 된다. 돌이켜보면 삶은 늘 우리를 서운하게만 하지도 않고, 우리가 일평생 경험해 온 힘들었던 갈등상황은 언제 그랬냐는 듯 그렇게 기억에서 희미해져 왜 싸웠는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도 잊어버리게 된다. 늘 알지만 자주 잊게 되는 이 단순한 사실을 나는 세줄 일기를 쓰며 잊지 않으려 한다. 우울해지려는 찰나, 일상의 루틴의 힘으로 수렁에 빠지려는 나 자신을 건져 올린다. 적다 보면 나쁘고 우울하기만 한 하루는 의외로 잘 없다. 다 살만한 나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