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과 무례의 경계에서
쌍둥이 엄마가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바로 어떻게 쌍둥이를 만들었냐는 질문이다. 일란성 쌍둥이거나 둘이 외모가 비슷하면 이런 질문을 조금 덜 받을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 이란성 둥이인 데다가 서로 성별이며 외모가 다르다 보니 아무래도 이란성쌍둥이라고 하면 어떻게 이란성쌍둥이를 가졌는지, 그러니까 인공적인 방법을 썼는지 아닌지 그 유래(혹은 기원)를 궁금해하며 묻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한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일까? 단순한 호기심 충족을 위함인가, 타인의 생식력을 확인해 보려는 의도인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 무례하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어떠한 의도든 그러한 질문은 다분히 타인의 사적 영역을 침범하는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단태아를 키우는 엄마를 보고 아이를 어떻게 얻었냐고 아무도 묻지 않는 것처럼.
처음에는 이런 질문이 낯설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도대체 어떻게 답해야 하나 하고 그 내용에 대해 남편과 의논한 적도 있다. 남편은 어차피 한번 보고 말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받지 말고 "아~유전이에요. 남편이 쌍둥이예요~"하고 넘기라고 한다. 그나마 나는 운 좋은 쌍둥이 엄마인 것인지, 남편이 쌍둥이라 무례한 질문에 답하기가 한결 간단하다. 남편은 실제로 일란성쌍둥이이고, 어머니는 임신 중기는 되어서야 쌍둥이 임신사실을 아셨다 한다. (시집에 가면 남편과 똑 닮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남편의 그런 조언에 "그래, 그게 좋겠다."하고 그 말을 조용히 읊조렸다. 누가 묻기라도 하면 바로 남편도 쌍둥이예요. 하고 대답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과 식당을 갔더랬다. 식당에서 서빙하는 분께 그러한 질문을 받고 바로 말했다. "남편도 쌍둥이예요." 그런데 웬걸, 식당 종업원이 나직인다. "어 이상하네요. 쌍둥이는 보통 모계유전인데요." 이 질문을 받고 나와 남편은 눈이 마주치며 동공지진이 났다. 이럴 수가. 쌍둥이 고수를 만나버린 것이다.
그분은 실제로 모계로 다수의 쌍둥이를 보유한 가계의 구성원이었다. 엄마도 쌍둥이, 딸도 쌍둥이, 조카도 쌍둥이.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가족구성원이 이런 식이었다. 그렇기에 이란성쌍둥이가 모계유전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그분 앞에서 나는 거짓말을 해버린 것이다. 그분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됐다. 보통 일반적인 여성은 배란주기에 하나의 난자가 배란되는데 여러 개의 난자가 배란되는 형질이 유전되는 것이기에 쌍둥이는 모계유전이 흔하다는 것이다. 근데 나는 그분 앞에서 남편이 쌍둥이라 쌍둥이가 유전이라 해버렸으니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은 격이다. 낯 뜨거운 거짓말 앞에 당황한 나와 남편은 하하 웃으며 얼버무리고 어찌어찌 상황을 모면했다. 그 식당의 상호와 음식 맛은 기억도 나지 않는데 그 대화가 종종 머릿속을 맴돈다.
이후로도 종종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아기가 잘 안 생겨 시험관으로 얻었노라고 구구절절 궁색한 설명을 해야 하나, 자연산이라고 거짓말을 해야 하나. 실제로 소통하는 쌍둥이 엄마들 중에서는 타인의 편견과 오지랖이 두려워 시험관으로 아이를 얻었음에도 자연적으로(?) 생겼노라고 가족들에게까지 숨기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생기면 어떻고, 저렇게 생기면 어떤가. 시험관으로 낳은 손주는 덜 소중하고 부부관계로 낳은 아이는 더 소중한 것도 아니고, 시험관으로 낳은 아이가 더 자주 아프거나 더 열등한 것도 아니다. 시험관으로 낳았다고 해서 부부에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며 그저 그런 일이 일어났을 뿐인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쌍둥이 가족을 만나거든 어떻게 생겼냐는 질문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타인의 생식력이 궁금하거든 머릿속으로 넘겨짚으면 그만이다. 그러한 질문은 타인의 사적 영역을 침해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ps. 딩크나 싱크족들은 훨씬 더 무례한 질문에 직면한다. 사람들은 아이를 못 낳는 것인지 안 낳는 것인지 궁금해하고 그런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딩크로 오래 살아온 내 경험담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이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많은 편견과 조우해야 하는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미처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