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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웨이숲 Apr 22. 2023

걷기에 대한 사색



© eric_masur, 출처 Unsplash


 임신 전 당연하게 누렸던 자유를 오랜만에 만끽했다. 아이들의 어린이집 적응 시간이 1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어나면서 아이를 맡기고 나서 하고싶은 일들을 머릿속으로 쉼없이 계획했다. 월요일이 밝자, 운동복 차림으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늘의 주제는 산책이다.



생산 지향적 문화에서는 대개 생각하는 일을 아무 일도 안하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아무일도 안 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일도 안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무슨일을 하는 척 하는 것이고, 아무 일도 안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은 걷는 것이다. 인간의 의도적 행위 중에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에 가장 가까운 것이 보행이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생각과 경험과 도착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육체노동이라고 할까. 
<걷기의 인문학> 리베카 솔닛 p.20


 아무일도 안하고 싶으나 퍼져 있기에는 좀이 쑤시고 흘러가버린 시간을 아까워하며 더 알차게 자유시간을 보내지 못함을 후회할 것 같아 '아무일도 안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인 산책을 하기로 했다. 공원을 한바퀴 돌며 봄을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아이들 없이 걷는게 얼마만인지, 조부모님께 맡기면 몸은 조금 편할지언정 마음은 늘상 불편했다. 할일을 분주히 끝내고 발길을 재촉해서 시간에 쫓긴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게 되던데 어린이집에서는 이렇게 마음 편하게 아이를 맡아주다니. 어린이집 만세다 정말.



 기존의 일상적 보행이 이동의 목적에 충실했었다면, 오늘의 보행은 '보행' 그 자체가 목적이기에 늘상하는 걷기가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사람들이 바쁘게 걷고 뛰는 그 모든 모양새가 영화처럼 생경하게 다가왔다. 벌써 봄이 되었나 싶게 집 근처 벚나무에서는 벚꽃이 피고 움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벚나무에 달린 꽃들을 이리 저리 찍어보며 봄을 맛본다. 땅에서도 민들레, 제비꽃, 별꽃 등 여러 풀꽃들이 꽃망울을 피웠다. 어떻게 봄이 온 것을 알고 이렇게 땅을 뚫고 올라왔을까 자연의 섭리가 신비롭기만 하다.



 한참 걸음을 걷다보니 공원에 위치한 한 빵집이 떠올랐다. 불란서인이 직접 만든 크로와상을 파는 곳인데 빵이 정말 맛있다. 내가 먹어본 크로와상 중에 단연 으뜸이다. 이곳 빵을 먹으며 공원을 산책하면 꼭 파리지앵이 된 것같은 착각에 빠져들기에 오늘의 이 여유에 프랑스의 감성을 한스푼 더해야지 생각하니 더욱 행복하다. 갓나온 크로와상과 커피를 사서 집에 가야겠다 생각하며 다시 걷기 그 본연의 목적에 집중한다.



 한국 사람들은 얼마나 부지런한 것인지 공원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강아지를 산책시키기도 하고, 조깅을 하는 사람, 유아차(혹은 개모차)와 산책하는 사람 등 아침부터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구나 감탄한다. 아이들이 부쩍 자란 1년동안 자연도 또 한차례 옷을 갈아입고 여기저기 새 시작을 알리느라 바쁘다. 봄이 옴을 알리고 허물어지는 매화도 한참을 들여다보고, 피어나는 수수꽃다리 꽃망울의 향기도 맡아본다. 한참을 걸으며 주변을 관찰하는데 사람들마다 노란 봉다리를 들고 산책을 한다. 호기심이 일어 유심히 살펴보니 봉다리 안에는 과일이며 채소가 들어있다. 어떤 이의 손에는 오렌지가, 다른 이의 손에는 딸기가. 아! 저기가 그 말로만 듣던 유명한 청과물점이구나, 싶어 찾아 가봤다. 조그만 구멍가게 같은 외관인데 사람들이 북적북적 다들 노란 봉다리를 들고 쇼핑을 한다.(!)


 딸이 좋아하는 오렌지를 고르고, 아들이 좋아하는 딸기를 고르고 아이들이 먹을 식재료를 구경하다보니 나도 공원에서 본 사람들처럼 과일과 채소를 한아름 사게 됐다. 양손에 가득 들고 나오니 갑자기 집까지 갈 것이 걱정된다. 들 손이 없어 기대했던 불란서인의 크로와상도 오늘은 패스다. 아쉽지만 파리지앵이 되는 것은 다음번으로 미뤄야겠다.



 비록 파리지앵이 되는데는 실패했지만 하원하고 오렌지와 딸기를 맛있게 먹을 아이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고 입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목적 없이 왔건만 내가 가장 힘들어하고 또 소중히 여기는 그 '엄마'라는 역할에 충실한 걷기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걷기를 하며 육아하는 것과 육아하지 않는 것, 엄마로 혹은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의 균형을 이루어냈다. <생각과 경험과 도착>외에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려 했으나 본분을 잃지 못하고 약간의 노동을 해버렸다.(노동이라고 말하기도 무색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보행의 본래적 목적과 더불어 아이들의 피와 살이 될 식재료를 이동시키는 생산적 목적이 추가된 채로 두 손 무겁게 노란 봉다리를 들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렇게 여자로 태어난 나는 엄마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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