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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디어오리 Mar 10. 2022

사람이란, 메시지인 동시에 저의 환경이자 기반이죠

장은선 PD 


<미디어IN싸를 찾아서>는 미디어오리가 미디어업계 인싸라고 생각하고, 더욱 인싸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다양하고 멋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코너입니다.



장은선 님을 처음 만난 건 미디어오리 사무실에서였다. 내가 얼마 되지 않은 ‘미디어 뉴비’라 업계가 익숙하지 않은 탓일까? 왠지 모르게 ‘미디어’라는 단어가 나에게 주는 인상은 차가운 쪽에 가까웠다. 그 낯선 온도에 적응하기로 마음 먹고 있던 즈음, 은선 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은선 님은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얼마 전 닷페이스를 그만두었다고 덧붙였다. 이제 막 미디어 업계에 발을 들인 나는 개인적인 궁금증이 생겨났다. 국내 미디어 스타트업의 대표주자가 된 닷페이스를 초반부터 만들어 온 은선 님. 이제는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


“새로운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팀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아영: 안녕하세요 은선 님! 저는 미디어 업계에서 일을 시작한 지 이제 5개월 정도 되었어요.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배우고 있는데요. 이렇게 누군가를 인터뷰해 보는 것도 처음이에요. 먼저 은선 님의 미디어 커리어가 시작된 배경을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은선: 저는 언론고시를 2년 정도 준비했어요. 시사교양 피디가 되고 싶었는데, 결과가 잘 안 나오니까 답답했죠. 그러면서 신문사에서 인턴도 했어요. 저는 애초에 글 쓰는 기자가 되기 보다는 방송을 만드는 피디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인턴 생활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공부 하면서 친구들하고 이런저런 프로젝트도 많이 시도해봤어요. ‘아랑’이라는 예비 언론인을 위한 온라인 카페 안에서 콘텐츠도 만들고, 따로 팀을 꾸려서 정치 관련 콘텐츠도 만들고 그랬죠.

아영: 그러던 차에 닷페이스를 만났다고 하셨는데, 직접 지원을 하신건가요?


은선: 제가 시도했던 여러 가지 중에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이라는, 한겨레와 블로터가 함께하는 아카데미가 있었는데, 2016년도에 거기도 기웃거렸어요. 거기서 닷페이스 조소담 대표를 만났죠. 그때 저는 친구들과 함께 영상과 글 콘텐츠를 모두 하는 ‘모비딕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고요.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에서 제가 두각을 나타내거나 대단히 열심히 했던 건 아닌데,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이 있다더라’하는 소식을 듣고 조소담 대표가 절 찾아와서 물어 보더라고요. 


언론고시를 준비한다고 해서 스터디만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자기 콘텐츠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하고, 그걸 실현해 내는 사람을 원했던 것 같아요. 아무튼 조소담 대표와 짧게 이야기 나눈 후에, 따로 만나서 닷페이스를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인턴십 퇴사하라고요. (웃음) 저는 알겠다고 하고 그 다음 주인가? 바로 퇴사했어요.


아영: 우와. 결단이 진짜 빠르셨네요. 어디나 조직의 ‘처음’은 어렵잖아요. 내가 만들고 싶은 콘텐츠를 만들기 이전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일하는 방식을 포함해서 결정해야 하는 부분도 많았을 것 같아요.


은선: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오히려 완전 초창기였기 때문에 뭐든 해볼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재미있었어요. 닷페이스의 첫 반년 동안은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까 이것저것 해보는 방식으로 했던 것 같아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그게 그냥 단순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즐거웠지만 이 팀이 기존에 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팀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어요. 저희가 처음 시작하던 그 당시에는 숏폼 콘텐츠가 한국에는 거의 없었거든요.


영상을 만든다는 것 안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잖아요. 내러티브를 잘 만드는 사람, 기획 아이디어가 좋은 사람, 이미지를 잘 뽑아내는 사람, 편집을 잘하는 사람...그런데 그때는 당장 내 장점도 뭔지 잘 모르는 상황이니까 이것저것 부딪히면서 해보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목격한 걸 알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아영: 저는 은선 님이 제작하신 닷페이스 콘텐츠 중에 <Here I am>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남성들의 10대 성매수 문제를 다룬 <Here I am>을  은선 님이 기획하셨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은선 님과 이야기하는 지금이 신기하고 좋아요. 2018년 온라인 저널리즘 어워드의 비디오 저널리즘 부문을 수상한 <Here I am>은 뉴미디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기획이라고 봐도 괜찮을까요?

출처: 닷페이스

은선: 그때까지만 해도 잘 몰라서 무작정 했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었다고도 생각해요. 대단히 치밀하게 계산을 하고 기획하지 않았어요. 원래 맨 처음에는 피해 청소년을 만나려고 했다가 연결이 어려워졌는데요. ‘아, 이제 어떻게 하지?’ 하고 고민하다 무심코 채팅어플을 다운받아봤는데 가해자 만나는 게 너무 쉬운 거예요.


영상에 담긴 것처럼 메시지가 쏟아져 오는데, 이 충격을 그대로 잘 전달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가해자들과 약속 잡아서 나가자고, 조금은 충동적으로 결정했어요. 대신 그냥 나가면 위험할 것 같으니까 ‘팀원들과 같이 가자, 가서 차를 타게 되면 누가 앞에 서서 막아줘라,’ 이런 얘기들을 했죠.


아영: 제작하면서 멘탈은 괜찮으셨어요? 회복에도 오랜시간이 걸렸을 것 같아요.


은선: 맞아요. 첫 촬영 당일에 택시 타고 돌아오면서 팀원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제작 후에 반응이 좋았던 덕분에 ‘그래,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탠 것 같다’라는 생각에 위안이 좀 됐죠. 사실 콘텐츠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거로 회복을 하거든요.


그 당시에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도 회복이 완벽하게 된 것 같지는 않아요. 제작 과정에서 가장 크게 충격을 받았던 건 ‘가해자들이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구나’ 라는 부분. 많은 사람이 가해를 저지른다는 거고, 또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요.


아영: 그렇게 힘든 취재과정을 견디면서도 은선 님이 세상에 말하고 싶은 메세지는 무엇인가요?


은선: 제가 저널리즘에 족적을 남긴다거나, 사회에 기여를 하겠다는 차원은 아니고요. 그냥 저는 그 상황을 맞닥뜨린 순간부터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특히나 제가 다룬 주제들은 피해자가 분명히 존재하는 이슈들이잖아요.


그런 사실을 이미 알았을 때는 거기서 멈춰있을 수 없는 거죠. 저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그 상황을 맞닥뜨린 게 아니라 콘텐츠를 만들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으로서 목격한 거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더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었고요. 알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은 ‘어떻게 더 잘 알리느냐?’ 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고요. 


“사람이란, 메시지인 동시에 저의 환경이자 기반이죠”


아영: 오랜시간 함께한 닷페이스에서 독립한 지금은 그럼 어떤 고민을 하고 계세요?


은선: 사실 ‘독립’이라는 느낌은 아니에요. 쉬려고 나온 게 가장 커요. 벌써 3개월 됐는데, 그동안 특별히 뭐 한 건 없어요. 여성 대상 폭력 사건들을 많이 취재하고 가까이서 보다 보니 어느 순간은 약간 압도된 느낌을 받았어요.


주제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닷페이스라는 조직 자체도 계속해서 변화를 추구하는 팀이다 보니까 그 역동성을 따라가기에 어느 순간 힘에 부치더라고요. 이렇게 여러 가지가 겹쳐지면서 잠시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둔 거고요.


저는 일할 때 스스로 불나방 같다고 생각을 해요. 이슈들이 눈앞에 오면 항상 달려들게 되더라고요. 참을 수 없으니까. 아마 이 시기가 지나고 에너지를 되찾고 나면 또다시 불나방처럼 그 이슈들을 들여다보겠죠?


아영: 최근에는 뮤직비디오라는 새로운 작업을 하셨더라고요. (DOMA - 겨울발라드)


은선: 사실 그건 되게 예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거였어요. 제가 닷페이스에 있을 때 다른 도전도 해 보고 싶고 해서 좋아하는 밴드(도마)에 먼저 연락을 드렸어요. 시간이 지나 지금에서야 하게 됐지만요. 처음 해보는 장르였음에도 불구하고 동료들 덕분에 제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 나온 것 같아요.

출처: 밴드 도마의 <겨울 발라드>

아영: 다큐멘터리와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다르던가요?


은선: 저는 다큐멘터리가 더 좋긴 해요. 그렇지만 뮤직비디오 작업을 해본 건 되게 좋은 경험이었어요. 협업을 큰 단위로 해본 경험이었거든요. 닷페이스에서 콘텐츠를 만들 땐 많아야 세 명이 협업하는데, 뮤직비디오를 한다고 하니까 촬영팀에 미술팀에 현장 지원해주는 PD...이렇게 저렇게 7명이 금방 모이더라고요. 함께하는 동료가 더 많고 다양하고 분업이 확실했어요. 그런 협업을 해볼 수 있어서 즐겁고 신기했고, ‘아 이렇게 일을 할 수도 있구나?’ 그런 차원에서 되게 마음이 벅찼어요.


아영: 닷페이스에서의 이야기를 꺼내실 때도, 이번 협업을 이야기하실 때도 동료와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는 게 인상적이에요. 은선 님의 콘텐츠에서 ‘사람’이라는 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은선: 제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콘텐츠는 사실 사람이 전부인 거죠. 사람이 곧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누구를 만날지 정하는 것부터 저는 메시지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인터뷰라는 작업이 정말 즐거워요.  어떤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기억이나 생각들을 묻고, 듣고 하는 작업이 저에게는 영화 인사이드아웃에서 빙봉이 지키고 있는 기억 구슬을 하나씩 얻어먹는 기분이랄까. 그런 게 되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사람을 그냥 만나는 것도 재미있지만 인터뷰라는 명목하에 마주 앉아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건 엄청난 특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답하는 사람도 열려있잖아요. 말하려고 나왔으니까. 말하려고 나온 사람의 의지를 믿는 것도 되게 중요하죠. 제가 인터뷰이를 존중하는 방식은 그 사람의 의지를 확실히 믿고, 들려준 이야기를 잘 만들어내는 것이에요.


아영: 맞아요. 그래서 저도 오늘 은선 님을 처음 뵀지만 이런 질문들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즐거워요. 은선 님이 인터뷰 작업을 즐거워하시는 건, 개인적인 부분에서 기인하는 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은선: 저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구랑 같이하느냐가 너무너무 중요하더라고요. 특히 회사에서 나와보니까 그 전엔 미처 몰랐는데 그 끈적한 소속감이 얼마나 중요하고 큰 지지가 되는지, 옆에서 잘하는 동료들과 의견을 주고받고 발전시켜나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깨닫고 있어요. 사람들이 결국 내 환경이 되고 기반이 되는 거니까요. 그런 면에서 저를 키운 건 팔할이 닷페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영: 사람이 환경이 된다는 말에 공감이 되네요. 좋은 동료의 중요성.


은선: 지금은 또 작업실에서 좋은 동료들과 협업하고 있지만, 새로운 좋은 동료들이 많이 찾고, 만나고 싶어요. 어떤 사람들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내가 어디로 갈 수 있을지 새로워지고 가능성도 넓어지는 거니까요.    


*

미디어라는 그릇 안에 담기는 것은 다양하겠지만, 사람들과 함께 ‘사람’이라는 주제를 담아내는 ‘불나방’과 같은 은선 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미디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차갑지 않게 느껴진다. 미디어라는 따뜻하고도 넓은 세계에서, 앞으로의 은선 님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글/인터뷰 우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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