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아 태몽에 함께 온 강아지
팬티를 벗는 것도 닮았네
30년 전, 둘째를 가졌을 때 크고 빠알간 사과 세 개를 사는 꿈을 꾸었다.
친정 엄마는 아들을 낳을 태몽이며 내게 세 명의 자식이 있을 것이라 해몽을 해주셨다. 첫째가 딸이니 둘째는 아들이면 좋겠지만 딸이어도 괜찮다. 워킹맘으로 살며 둘을 키우는 것도 힘들 테니 내 사전에 자식이 셋이 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딱 잘라 말했다. 엄마 말에 그렇게 선을 그었지만 혹시나 쌍둥이이면 어쩌나, 그래서 정말 세 명의 자식이 되는 건 아닐까 살짝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내 말대로 딸 하나 아들 하나를 키우며 살았다.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사랑이가 우리 집에 왔다. 강아지를 싫어했던 나는 아이들이 원해서 할 수 없이 그냥 강아지려니 하고 별 마음 없이 키우기 시작했는데 키울수록 친정엄마 말씀이 맞는 것 같았다. 사랑이를 키우면서 내 자식은 셋이 되었다. 사랑이는 우리 집 셋째가 된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말 잘 듣고 예쁜 귀여움으로 아들딸이 주는 기쁨과는 다른 기쁨과 다른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다.
사랑이가 15살이 되면서 노화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벼운 경련을 하여 약을 먹였더니 부작용으로 근력이 약해졌다. 대소변을 볼 때에만 겨우 힘을 내서 일어나고 그 외 시간은 힘이 없어 축 처진채 누워있거나 잠만 잔다. 게다가 갑자기 보이지도 않게 되니 겨우 걷는 걸음도 비틀비틀이다. 보이지 않아도 화장실을 찾아가서 볼일을 보았는데 이제는 몸이 힘든 탓인지 자다가 실수를 하거나 화장실을 찾아가는 것도 힘들게 되었다. 실수를 한 것에 대해 혼을 내지 않았는데 물을 잘 먹지 않는다. 소변보는 것이 힘드니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억지로 먹이려 해도 잘 먹지 않는다. 물을 먹지 않으니 혈액이 끈적해졌단다. 물을 먹여야 한다.
근력을 약하게 하는 약을 중단하고 다시 처방받은 약은 물을 많이 먹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소변도 자주 보게 된다. 부작용이 없으니 사랑이가 힘을 내어 조금씩 걷는다. 여전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눈에 힘이 보인다. 자기 밥그릇을 찾아 물도 먹는다. 이번엔 물을 너무 많이 먹으니 소변의 양이 많고 너무 잦아 실수를 하게 된다. 자신의 실수를 사랑이도 싫어하는 눈치이다. 약을 먹는 동안 기저귀를 채우기로 했다.
강아지용 기저귀는 폭도 좁고 아무래도 아기용 기저귀가 질이 나을 것 같아 신생아용 팬티 기저귀를 채웠다.
엉덩이에 느슨하니 채우니 통기성도 괜찮고 답답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걷는데도 별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다른 일을 하다가 사랑이를 보니 기저귀를 벗고 자고 있다. 어떻게 벗었을까? 싫어하는 눈치도 없더니 엄청 불편한가보다. 이튿날, 다시 기저귀를 채웠다. 기저귀를 채우는데 오늘도 어제처럼 얌전히 협조적이다. 오늘도 어제처럼 자다가 팬티를 벗어던졌다.
우하하, 이렇게 닮을 수가 있을까?
팬티를 벗어던지는 것 까지 형아를 닮은 우리 사랑이는 우리 집 셋째, 내 새끼임이 틀림없다. 30년 전에 미리 내 꿈에 형아를 따라 와있었나보다. 30년 전, 꿈속의 크고 빠알간 사과를 살 때부터 사랑이는 내 새끼, 내 운명이 되었다. 그렇게 둘째와 사랑이는 형제가 되었다.
우리 둘째의 팬티 사건은 이렇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하면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겼다. 당시 7살이던 첫째는 유치원과 미술학원을 다니고 해서 엄마품을 떠나는 것을 그런대로 받아들였는데 5살이던 둘째는 어린이집이 처음이라 힘들어했다. 어린이집을 처음 다녀온 날, 집에 온 둘째는 팬티를 입고 있지 않았다. 볼 일을 보다가 서툴러서 화장실에 벗어버린 줄 알았다. 며칠 동안 계속 팬티를 벗어놓고 오길래 공동생활이 처음인 둘째가 화장실 보는 것이 힘든 것 같으니 팬티 입는 것을 도와주십사 어린이집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부탁을 드렸다.
"어머님, 규식이 팬티 몇 장이 미끄럼틀 밑에 있네요."
자유로운 영혼으로 집에서는 내복과 헐렁한 팬티 차림으로 살다가 매일 옷을 갖춰 입으니 불편했다. 갑갑한 겉옷과 티와 바지 등은 몸에 끼고 싫었다. 게다가 새로 입은 삼각팬티는 더 갑갑하고 싫었다. 미끄럼틀에서 놀다가 팬티를 벗어던졌다. 들키면 부끄러울 것 같아 미끄럼틀 밑에 살짝 숨겨두었다.
갑갑한 것이 싫어 팬티를 벗어던진 둘째와 사랑이, 형제는 그렇게 닮았다.
사춘기 시절의 둘째는 사랑이를 시샘한 적이 있었다.
막내로 자라다 갑자기 강아지란 녀석이 나타나서는 엄마 아빠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니 심사가 꼬인다. 본인도 사랑이가 예쁘고 귀엽긴 하지만 왠지 내 자리를 뺏긴 것 같아 아무도 안 볼 때 괜히 혼을 내고 슬쩍 한 대 쥐어박기도 했다. 사랑이로서는 그런 형아가 좋지 않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혼이 날까 싶어 형아가 부르면 얼른 달려가긴 한다. 하지만 형아는 서열 4위이다. 그렇게 사춘기 둘째와 사랑이는 애증의 관계였다.
둘째가 고3일 때, 아들을 태우러 학교에 가면서 사랑이를 종종 데리고 갔다.
캄캄한 밤에 똑같은 교복을 입고 나오는 무수한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사랑이는 형아를 찾고 좋아라 꼬리를 흔들어댔다.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잠시 외국에 다녀온 후에도 사랑이는 형아를 잊지 않고 반겨주었다. 둘째도 여행을 다녀오면 꼭 사랑이의 옷과 먹거리, 장난감도 사 오고 그렇게 둘째와 사랑이는 형제가 되었다.
사랑이는 형아가 부르면 엄마 아빠가 부를 때보다 훨씬 더 꼬리를 흔들고 얼른 달려간다.
그걸로 보아 둘째는 이제는 자신이 서열 4위는 아니라고 좋아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사춘기 시절의 만행(?)때문에 사랑이가 형아를 무서워해서 말을 잘 듣는 거라고, 결코 그렇게 많이 좋아하는 것은 아닐 거라 하였다. 둘째는 오래전에 사랑이에게 정식으로 사과했기 때문에 그 일은 사랑이가 용서했을 것이며 그래서 본인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끔은 산책도 같이 다니며 그렇게 둘째와 사랑이는 의좋은 형제가 되어가고 있다.
사랑이와 둘째는 어려서부터 잘 먹고 잘 자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아파도 밥 한 그릇 뚝딱하면 금세 낫는 둘째처럼 사랑이도 그렇다. 잘 먹으니 밥심으로 아픈 것도 잘 이겨낸다. 말은 못 하지만 사랑이도 일어나려고 조금씩 힘을 내고 있다. 그렇게 훌훌 털고 일어날 것이다.
더 잘 먹고 더 힘내서 헬스로 다져진 몸짱 형아의 탄탄한 근력도 닮기를 간절히 바란다.
30년 전의 내 꿈속 사과는 여전히 크고 빠알간 모습으로 내 품에 있다.
나에게 넌 이쁜 내 새끼로, 너에게 난 운명같은 엄마로 그렇게 살자.
우린 그렇게 정해져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