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ove Stor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줌마 May 18. 2021

내 마음도 보이지?

사랑이 사랑해!

우리 집 강아지 사랑이는 15살이다.

그동안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 늘 고마웠다. 처음 데리고 와서 강아지를 키우는 게 미숙하여 너무 추운 겨울날에 목욕을 시켜 딱 한 번 감기에 걸린 것 외에 아프지 않고 잘 자랐다. 늘 아가였는데 이제는 나와 함께 늙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청력이 약해진 걸 제외하고는 걱정할 것 없었고(https://brunch.co.kr/@ibjk65/32) 작년 11월에 한 건강검진 결과(https://brunch.co.kr/@ibjk65/59)도 너무 좋아 동네방네 브런치에 자랑을 했었는데 내 말에 동티가 났다. 건강 자랑은 하지 않는 거라더니 그 말이 맞았다.

나 혼자 조용히 좋아할 걸.


3개월 전, 사랑이가 자다가  경미한 경련을 일으켰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처음 겪는 일이라 너무 놀랐다. 노령견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2주일분의 약을 먹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만 약의 부작용으로 힘이 좀 없는 듯했으나 약을 끊고 나니 그것도 괜찮아졌다.

한 달 보름쯤 후에 다시 한번 더 경련을 하여 약을 처방받았는데 이번엔 근력이 너무 약해져 잘 걷지를 못했다. 일반적인 경우, 약의 부작용으로 근력 손실이 있다고 하였지만 사랑이는 잘 걷지 못할 정도로 심하다. 다시 아주 극소량의 약을 처방받아 먹여보았지만 그래도 마찬가지다. 약을 끊었다. 그랬더니 예전처럼은 아니지만 잘 걷고 해서 다시 해피한 일상을 누렸다.


5월 , 밤에 화장실을 가는 사랑이의 걸음이 이상하다.

경련약을 복용하지 않아서 비틀거림도 없었는데 몸이 기우뚱거린다. 며칠 전만 하여도 센서등이 켜지면 불빛을 확인하고 볼일을 보던 사랑이가 센서등이 켜져도 그냥 지나친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벽에 부딪힌다. 소변판을 찾아 쉬를 하더니 캄캄한 화장실에 켜진 센서등을 넘어뜨리고 문을 찾아 헤매는 모습이다. 얼른 안아 데려왔다.


아침이 되어 밝아져도 사랑이가 이상하다.

밥을 주니 그릇 앞에서 킁킁거리며 밥을 찾는다.

여전히 몸이 기우뚱거리고 벽과 문에 부딪힌다. 발걸음이 느리고 조심스럽다. 내가 불러도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두리번거린다. 사랑이의 시력에 문제가 생겼다. 주말을 지내는 동안 사랑이는 많이 칭얼거리고 계속 나를 찾는다. 사랑이의 옹알이에 애절함과 울음이 섞여있다.


백내장이라고 한다.

작년 11월에 검사할 때도 괜찮았는데 6개월 사이에 시력이 너무 많이 약해졌다. 노령견의 6개월은 사람으로 치면 4~5년의 세월이라고 한다.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랑이의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

잘 보이지 않으니 비틀거리고, 거기에 약의 부작용까지 더해져 사랑이가 너무 힘들었었다. 한 번에 이렇게 약해진 게 아닐 텐데 그동안 그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잘 보이지 않아 예민해진 걸 모르고 나이가 들어서 고집이 늘었다고만 했다.

잘 보이지 않으니 불안하여 엄마를 찾았는데 나를 찾을 때마다 먹는 걸 달라는 줄 알고 식탐만 늘었다며 잔소리를 했다.

잘 보이지 않으니 화장실에 간다고 해도 배변 실수가 잦아졌는데 나는 그것도 혼을 내기만 했다.


지난주 내내 사랑이가 많이 힘들었다.

왜 자기가 비틀거리는지, 왜 갑자기 엄마가 안 보이는지도 모르고, 캄캄한 상황에 있는 사랑이가 너무 가엾다. 급격히 약해진 시력 때문에 적응하는 시간이 부족하다. 잘 들리지 않는 청력에 의지하여 엄마를 찾고, 집안의 사물을 기억하며 다니는 것 같다. 얼마큼 보이는지 알 수가 없으니 사랑이를 보는 내 마음은 캄캄함 그 이상이다. 나이 든 사랑이의 모습이 애처롭다.


지난주 내내 나도 많이 힘들었다.

갑자기 변한 자신의 상황이 힘들어 사랑이는 나만 보면 보챈다. 엄마가 안 보인다고 칭얼거리고 집안을 돌아다니다 막다른 벽에 부딪히면 자신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나를 부른다. 캄캄함이 무서운지 계속 부대끼며 안아달라고 한다. 그런 사랑이를 안아주고 달래주느라 몸도 힘들지만 사랑이가 이렇게 되도록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 제일 힘들다. 나이 든 사랑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아프다.


세월 앞에서는 사람도 강아지도 어쩔 수가 없나 보다.

그동안 사랑이의 건강을 위해 주변에서 유난스럽다 할 정도로 사랑이에게 정성을 들였다.

시중에 파는 간식을 먹이지 않았고 수제간식을 만들고 보양식도 만들어 먹였다. 나이가 들면서는 피부, 관절, 눈 건강 등의 각각 영양제며 유산균, 오메가 3도 빠지지 않고 챙겼다. 특히 눈에 좋다고 하여 블루베리는 몇 년째 먹이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한꺼번에 노화현상이 나타나니 사랑이나 나도 감당하기가 힘들다.


강아지의 시력은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려우며 사랑이의 경우 15살의 노령견이라 수술도 권하지 않았다.

 더 이상 진행되지 않거나 진행을 늦추도록 하는 방법밖에 없다. 집 안 구석구석 부딪힘 방지 테이프를 붙이고 사랑이가 다니는 집안의 동선에서 부딪힐 만한 것들을 정리하였다. 제일 중요한 건 사랑이가 덜 힘들게 생활하는 것인데 사랑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안타까워할 뿐 어떻게 도와줄지 몰라 너무 답답하고 슬프다.


나의 노화는 내가 알아채고 대비하니 슬프지 않다.

거기에 맞춰 살아가면 되니 그 삶 또한 기꺼이 맞이하면 된다.

사랑이도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 사랑이의 남은 삶 또한 나처럼 기꺼이 맞이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대하려 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쓰나미처럼 밀려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랑이는 씩씩하다.

나처럼 슬퍼하지만 않는다. 적응하려 애쓴다. 밥도 잘 먹고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정해진 곳을 찾아가 볼일을 본다. 조금씩 벽에 부딪힘도 줄어들고 피해 가는 모습도 보인다. 여전히 엄마에 대한 애착은 강하여 칭얼거리지만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다. 아마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사랑이는 늘 내 옆에서 아가일 줄 알았다.

사랑이는 늘 나와 눈 맞추고 나를 보며 웃어줄 줄 알았다.

유난히 동그랗고 맑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그 모습을 오래오래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도

다행히

사랑이의 눈은 늘 나를 향해 있다.

사랑이의 눈엔 내 마음도 보인다.

내가 사랑이와 눈 맞추며 오래오래 보아주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14살, 노령견 아니고 아가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