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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Jul 24. 2020

14살, 노령견 아니고 아가견

사랑이 사랑해

“엄마, oo이가 우리 사랑이보고 나이 들어 보인데 헐~~. 난 이쁘지도 않은 지네 강아지 이쁘다고 해줬구먼. 어딜 보고 우리 사랑이한테 그런 말을 하는지 짜증 나.”

친구 만나러 간 딸아이가 씩씩거리며 전화해서 쏟아붓듯이 내게 일러준다. 엄마를 부를 때보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사랑이를 부르고 집에 올 때마다 강아지에게 좋다는 영양제나 간식을 챙겨 오는 딸에게 친구가 사랑이가 늙었다고 말을 했으니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딸아이 친구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 사랑이는 이제 14살에 접어들었으니 노령견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영원히 아가이니 노령견이라는 말에 마음이 짠해지고 인정하기 싫은 심정이다.   

 

딸아이가 고2이던 11월 어느 날, 사랑이가 우리 집에 왔다. 늦은 사춘기로 잘 웃지도 않고 자기 방에만 있는 아이가 강아지를 원했던 것이다. 강아지를 입양하면 딸아이가 활짝 웃을 것 같았고 강아지로 인해 대화가 늘어날 것 같아 그 길로 바로 동물병원을 수소문하여 사랑이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처음 만난 사랑이는 50일이 채 되지 않은 새끼 강아지로 까만 털로 덮여있는 눈만 땡그란 아이였다. 엄청나게 강아지를 무서워했던 나는 처음 사랑이가 온 날은 이뻐하기는커녕 만지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쳐다보기만 했다. 그저 우리 딸을 위한 값어치만 해주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아기 강아지가 낯선 집, 낯선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와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로 그냥 현관 앞에 울타리를 치고 강아지 집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나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고 미안하다.    

사랑이는 100일이 지나고 사람 아가들이 백일 때 머리 밀 듯이 온몸의 털을 깎았더니 희한하게도 유난히 털이 빛나는 실키 테리어로 변신하여 우리 집에서 미모를 담당한다. 데리고 다니면 누구나 입을 대며 이쁘다고 하고 어느 동물병원에서는 강아지 모델을 시키라고도 했다. 털은 직모로 찰랑찰랑하며 스틸블루와 브라운이 믹스된 색으로 그야말로 예술이다. 매일 마다 빗겨주고 샤워할 때에는 린스 듬뿍하여 그 부드러움을 유지하고 있다. 얼굴은 포메라니안급으로 동글동글한 눈을 반짝이며 쳐다볼 때에는 우리는 모두 사랑이에게 홀려버린다.

또한 얼마나 똑똑한지 별 다른 배변 훈련 없이 대소변을 가리고 다른 집에 가는 경우도 화장실을 찾아 실례를 한다. 심심하면 장난감을 물고 와서 이리저리 던지라 하며 놀자고 하는 정도이다. 착하기는 더할 나위 없다. 이발을 하거나 주사라도 맞는 날에도 싫은 내색은 하지만 잘 참으며 배가 고프다고 사람의 음식을 몰래 먹거나 하지 않는다. 가끔 휴지를 씹어 어질러 놓는 때가 있긴 하지만 휴지를 물었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지가 알아서 뱉어내는 모습은 정말 귀엽다. 그렇게 사랑이는 내게 많은 위로와 사랑을 주며 나의 중년을 함께 보내고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셋째 자식이 되었다.    

그렇게 이쁜 놈이 이제 조금씩 나이 들어감을 보인다. 내가 퇴근 시간보다 조금 늦게 가면 현관 앞에서 기다려 나를 미안하게 하더니 요즘은 “사랑아, 엄마 왔어, 우리 사랑이 어디 있니?”를 외치며 들어가도 제 집에서 뭉그적거리며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강아지가 아니고 토끼인가 싶을 정도로 잘 뛰어다니고 소파며 침대를 날아다니던 놈이 이제는 강아지용 계단을 이용하며 계단이 없는 곳에서는 안아서 올려달라고 쳐다보고 서있다.

산책을 가장 좋아하던 놈이 이제는 산책도 조금 귀찮은지 별로 반기지 않고 나가면 좋아서 잘 다니면서도 집을 나설 땐 할 수 없이 따라나서는 폼이다. 게다가 움직이는 모든 것을 보면 짖어대서 산책을 하기도 조심스럽다. 킥보드 타는 아이들은 아주 우습게 보고 짖고 오토바이 배달원은 물론 날아다니는 비둘기를 향해서도 짖어댄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엄마가 일어날 때를 기다려 밥을 달라고 하던 놈이 이제는 새벽 4시, 5시에도 지가 눈을 뜨면 밥을 달라고 칭얼거린다.

강아지들이 원래 잠을 잘 자기는 하지만 요즘의 사랑이는 잠이 너무 많다. 명퇴를 한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 사랑이와 놀아주기도 있었는데 사랑이는 피곤한지 나와 노는 시간보다 잠을 자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피부질환이다. 매일매일 살펴보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종기 같은 것이 확 번지듯이 나서 사랑이의 배부분이 거뭇거뭇하다. 아파도 말도 하지 못하는 사랑이가 종기가 털이나 집안의 물건 등에 스칠 때 얼마나 따가울까 생각하면 안쓰럽다. 

얼마 전에는 이유도 없이 밤새 잠을 못 자고 변을 보지도 않으면서 자꾸만 화장실만 들락거리고 움직일 때마다 깨갱거려서 병원을 갔더니 사람 노인이 신경통 앓는 것처럼 강아지도 삭신이 쑤시고 아픈 것이라 하였다. 주사를 맞고 일주일 약을 먹었더니 괜찮아졌다.

왜 그렇게 자신을 귀찮게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약을 발라야만 하는 사랑이가 이렇게 노령견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랑이는 무엇이든 잘 먹는다. 강아지가 뭘 가리겠냐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사료를 안 먹고 고기 육포만 먹거나 사료에 맛있는 것을 섞어주어야만 먹는 강아지도 꽤 있다. 우리 사랑이는 배추, 오이, 상추, 당근, 사과, 블루베리, 양배추, 브로콜리 등 몸에 좋은 야채를 다 좋아한다. 물론 고기를 더 좋아하여 고기와 야채가 함께 있으면 고기 달라고 야채는 고개를 돌려버리기도 하지만 아마 야채의 영양가가 우리 사랑이를 더욱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 생각한다.

    

어제저녁 산책길에 만난 부부가 우리 사랑이를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17년 키운 우리 강아지랑 너무 닮아서요.”

“많이 보고 가세요. 힘드셔서 어떡하셨어요”

무지개 다리를 건너간 자식을 만난 듯한 그 부부의 눈빛을 보며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얘는 몇 살이에요”

“우리 애는 아직 어려요”

나는 우리 사랑이의 나이를 말하지 않았다. 14살이라고 하면 돌아올 답이 뻔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딸이 원해서 함께 하기 시작 헸지만 사랑이는 우리에게 자식이 되었고 동생이 되었다.

그렇게 사랑이는 우리 가족 안에 늘 있었다. 함께 한 세월이 우리뿐만 아니라 사랑이도 행복했으리라 믿으면서 앞으로의 시간은 더욱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사랑이도 분명 같을 마음일 것이다. 우리 사랑이는 아직 아가이며 앞으로도 쭈욱 아가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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