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사랑해 2
그날 이후 사랑이가 나를 피한다. 내가 부르면 오지 않는 것은 물론 침대 밑으로 숨거나 쳐다보는 것조차 부담스러운지 슬그머니 내 옆에서 멀어진다. 그래도 엄마를 좋아하는 마음은 남아있어 눈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걸로 위안으로 삼지만, 서운함은 어쩔 수 없다.
그날의 사건은 바로 셀프미용!
몇 년 동안 해왔지만 요즘 들어 부쩍 싫어하는 기색을 나타낸다. 아마 사랑이가 나이가 들면서 미용하는 것도 아픈 것 같다.
아가 때부터 다니던 동물병원의 원장님과 미용사는 나와 사랑이에게도 익숙하여 진찰을 받거나 미용을 하여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실키테리어의 미용은 다른 견종에 비해 미용이 까다로워서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하지만 보기에도 이쁘고 사랑이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었지만, 미용한 후에도 별다른 이상징후가 없어서 다행이라 여기며 지내왔다.
살던 동네를 떠나 이사를 오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사랑이가 50일쯤 되어 우리 집에 입양된 후 5년여 동안 익숙하던 것에서의 변화가 사랑이로서는 힘들었다. 게다가 그들은 모두 청진기, 가위, 이발기 등 사랑이로선 위협적인 도구를 들고 대하였으니 더욱 그러했다. 사랑이의 그런 마음은 생각지도 못하고 나는 그저 이쁜 헤어스타일만 관심이 있었다.
대부분 강아지는 몸통을 완모하거나 얼굴 부분은 둥글둥글하게 짧게만 잘라주면 되지만 실키테리어는 털이 포인트니만큼 몸통과 얼굴의 털을 예쁘게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미용사는 실키테리어는 해 본 경험이 없어서 못 한다고 거절을 하기도 한다. 3개월마다 미용을 해야 그나마 그 미모를 유지할 수 있는데 내 맘에 들게 미용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찾아가서 미용 전에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말했지만 생뚱맞게 얼굴 부분의 털을 댕강 잘라놓는가 하면 얼굴과 몸통의 털이 삐뚤빼뚤하고 강아지와 실랑이를 하면서 사랑이의 몸이 이발기에 다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피도 났었다. 게다가 미용하러 다녀오면 며칠 동안 눈이 충혈되고 힘들어하여 안쓰러웠다. 사랑이는 사랑이대로 힘들고 나는 나대로 미용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내가 미용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아 동네의 동물병원을 순례하듯 돌아다녔다.
우연히 본 TV에서 예쁜 여자 탈렌트가 강아지 셀프미용에 도전하는 것을 보고 나도 용기를 냈다. 오랜 시간 몸을 맡기고 미용을 해야 하는 강아지들이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데, 이때 교감을 많이 나눈 주인이 미용을 직접 해준다면 스트레스와 긴장을 꽤나 줄일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두니 진작에 그럴 생각을 못 한 것이 후회되었다.
인터넷으로 가위 2종류(일반 컷용, 샤기컷용), 이발기도 2종류(발등용, 발바닥용으로 작은 것)로 주문하고 강아지 셀프미용에 대한 폭풍검색을 해 보았다.
강아지 셀프미용 TIP
① 미용하기 전에 빗으로 털을 빗어 뭉친 곳이 없게 하기
② 털은 정방향으로 밀기
③ 강아지를 미용시키기 전에 클리퍼(이발기의 전문용어)의 소리를 미리 들려줘서 긴장하거나 놀라지 않도록 하기
④ 중간중간에 지루해하거나 싫어할 때는 간식주기
남편과 아이들은 망칠 게 뻔하다, 사랑이 얼굴 미워지면 책임지겠냐, 이발기나 가위로 찝기라도 하면 어짜냐 등 오만가지 이유로 반대했지만,
드디어 D_DAY.
비장한 각오로 바닥에 깔 신문지, 내가 뒤집어쓸 세탁소용 비닐봉지(긴 것에 팔을 내밀만한 구멍을 낸 것으로 털이 옷에 묻는 것을 방지), 약간의 간식과 가위와 이발기를 준비하였다.
다행히 우리 사랑이는 착하고 말을 잘 들어서 우여곡절 끝에 첫 미용을 끝낼 수 있었다. 다만 약간의 간식이 아니라 많은 양의 간식이 필요했고 삐뚤빼뚤하기는 여전했으며 발가락 사이를 조금 찝어 피가 사알짝 나기도 했다. 2시간 넘게 걸려 나도 사랑이도 기진맥진하였지만 낯선 이가 주는 스트레스나 혹여나 있었을지도 모를 강아지에 대한 홀대함의 걱정이 없어서 나름 만족하였다.
그렇게 사랑이 셀프미용을 한 지 5~6년 정도 된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미용 솜씨가 일취월장하여 이제는 3주에 한 번 정도 발 정리, 얼굴 정리, 귀 정리를 하고 전체 털정리는 수시로 봐가며 하고 있다. 그동안 도구도 더 늘어나고 사랑이도 익숙해져서 힘들고 귀찮아도 잘 참아주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너무 싫어하며 얼굴 부분을 할 때는 심지어 나를 향해 으르렁거린다.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정작 물지는 않지만 얼마나 싫고 아프면 이럴까 싶다. 강아지도 나이가 들면서 누가 만지면 살이나 뼈가 아프다고 하더니 미용을 한답시고 사랑이를 마구 만져서 아픈 것 같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니 나도 누가 나를 만지는 것이 싫고 이제는 아프기도 하다. 일명 개통령이라 불리는 분도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그동안 우리는 사랑이를 너무 귀찮게 하고 아프게 한 것 같다.
토실토실 엉덩이가 귀여워 궁디팡팡,
밥 잘 먹어 이쁘다고 머리 쓰담쓰담,
쉬와 응가 잘한다고 또 궁디팡팡,
체조해준답시고 다리 쭉쭉,
마사지 해준다고 배 문질문질,
말 잘 들어 이쁘다고 귀 간질간질,
발 냄새 좋다고 발가락 만지작만지작,
놀라는 게 귀여워 뒤에서 몰래 콕콕,
양치한다고 입이 찢어지게 벌리기,
공을 던지면 물고 오는 게 이뻐 놀이를 지치도록 하게 하기
가족이니까 사랑하니까 우리 사랑이가 참아준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어 조금의 터치에도 몸이 아프니 더 참을 수 없게 되어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임을 이제야 알았다니, 오죽하면 엄마를 피해 다닐까 생각하니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래도 잘 때가 되면 슬그머니 내 머리맡에 자리를 잡거나 내 등에 몸을 바짝 붙여 엄마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우리 사랑이에게, 아프지 않게 눈으로 마음으로만 사랑하기를 실천해야 하는데 내 손은 자꾸만 사랑이에게 간다.
이제부터 궁디팡팡도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