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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Sep 23. 2020

내 마음은 들리지?

우리 함께 건강하자. 오래오래

우리 집 강아지 사랑이는 엄마는 밥을 주고 예뻐하고 돌봐주며 기대는 사람으로, 아빠는 자신의 호구 즉 언제든 까까를 얻어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한 듯하다. 자고 일어나서 밥을 달라고 하거나 응가가 꼬리에 조금 붙어 있거나 할 때, 그 외 노는 시간에도 늘 내 주위를 맴돌며 나를 찾는다. 그러다 간식이 먹고 싶으면 아빠에게 가서 귀여운 옹알이로 아빠를 꼬셔 까까를 얻어먹는다.    


어느 날, 사랑이가 샤워하고 나오는 남편의 발등을 핥아주어 그 모습이 귀여워 남편이 까까를 주게 되었다. 그 후로부터 사랑이가 터득한 가장 좋은 까까획득 방법은 아빠의 아침 샤워 후 몸을 닦아주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사랑이를 부른다.

“사랑아, 엄마 왔어. 엄마”

큰 소리로 불러도 나오지 않는다.

떨리는 마음으로 안방을 살며시 살피면 자기 집이나 엄마 침대에서 정신없이 자다가 잠에 취한 눈을 겨우 뜨고, 그제야 반겨준다. 반기며 뛰어오르거나 밥을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큰 소리로 불러도 나오지 않는다. 떨리는 마음, 잠에 취한 눈.

요즘 사랑이를 보며 느끼는 내 마음이다.

    

장난꾸러기 사랑이가 우리와 잘 놀지 않고 혼자 자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잠을 자더라도 우리 주위를 맴돌며 자는 모습을 보면 내가 사랑이에게 어떤 존재이길래 저렇게 정스러움을 나타내는가 싶어 미안해질 때가 많다. 우리는 저 혼자 두고 직장을 가고 외식을 하며 여행도 갔는데 일편단심 사랑이의 마음이 고맙고 안쓰럽다.    


퇴근 시간이 좀 늦어지는 날은 현관문 앞에서 사랑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이에게 빠진 우리는 이놈이 영특해서 시계를 볼 줄 안다며 격하게 반기는 사랑이의 몸짓을 사랑하였다. 그런데 이젠 엄마가 왔음을 크게 알리며 들어가도 잠을 자느라 잘 듣지 못하는 건지~ 살짝 귀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사랑이는 숨소리만큼의 목소리로 “까까”만 말해도 좋아서 펄쩍 뛰었었다.

어느 땐 우리끼리 하는 말끝에 들리는 “까”만 들려도 까까를 달라고 난리를 치던 놈이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   

사랑이와 큰 소리로 이야기할 일이 없으니 사랑이의 청력에 대해서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사랑이의 청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길래 유심히 살펴보았다. 내가 부르는 소리에도 둔하게 반응하고 아빠의 샤워도 눈으로 확인하는 것 같았다.     

       


사랑이의 일상은 이랬다.  

 

엄마를 깨운다. 내 신호에 발딱 일어나지 않으면 엄마 배에 오른다.

그래도 일어나지 않으면 나의 뜨뜻한 배로 엄마 목을 감싸며 애교를 부린다. 아침 획득 성공

  

 

아빠는 여간해서 잠을 깨우기 힘들다.

일어날 때를 기다려 1까까. 아빠가 샤워하는 동안에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한다.

샤워 소리가 멈추면 얼른 가서 발등을 닦아 주며 2까까. 좀 더 먹고 싶은 날은 좀 더 정성을 들이면 된다.

아빠가 옷을 입는 동안 또 잠시 휴식, 가방을 드는 순간 다시 3까까.

출근 인사하며 다시 4까까.

아빠는 참 쉽다. 그냥 있어도 잘 준다.

   

엄마는 출근 인사하며 겨우 2까까. 왜 그럴까?

  

모두 없으니 자다가 놀다가 잔다. 또 잔다. 자도 자도 엄마는 오지 않는다.

엄마는 언제 오려나? 기다림도 지친다. ㅜㅜ

엄마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 현관문에 가볼까?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도어락이 삐삐삐~~

나는 팔짝팔짝 뛰며 엄마를 반긴다.


밥을 먹고 산책하러 다녀온다. 산책 중 벤치 있는 곳으로 엄마를 데리고 가서 3까까.

산책으로 엄마를 기다린 지친 마음 극복!

아빠가 오면 눈짓 몇 번으로 또 까까를 먹고 애교 옹알이로 치약머그자(이닦기)를 하면 된다.

그리고 잔다.   

 

그랬는데 요즘은  

  

아빠의 샤워 멈추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화장실 앞에 내내 앉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잘 들린다.


엄마가 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에 겨우 눈을 다.

 현관문 앞의 발자국 소리, 도어락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엄마가 나를 부르지 않는다.    


동물병원에 문의했더니 노화현상이라고 한다. 나는 혹시 내가 귀를 자주 닦아주고 해서 문제가 생겼나?

사랑이의 청력이 나빠지는 시기를 내가 알아채지 못하여 제때 치료하지 못한 건 아닐까? 마음이 무겁다.

   

우리가 살면서 세월의 더께가 쌓아지는 만큼 늙어가고 약해지는 것은 덤덤히 받아들이고 있는데 사랑이한테는 쉽지 않다. 아마 이 작은 생명체에 대한 책임감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이는 여전히 건강하고 사랑스럽다.

차르르 반짝이는 털 빨, 예쁜 얼굴, 초롱초롱 눈빛, 예전보다 덜하지만, 목적이 분명한 애교 옹알이, 신나는 폴짝거림, 맛있는 식욕과 왕성한 배변활동은 훌륭하다. 귀는 조금 들리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은  사랑이에게 잘 전해지고 있고, 사랑이는 여러 훌륭함으로 우리를 안심시킨다.


사랑아!

내 마음은 들리지?

그럼 됐다.

우리 함께 건강하자. 오래오래

저녁을 먹고 엄마 아빠와 함께 산책을 했다 . 아빠는 나를 데리고 가고 엄마는 사진찍느라 바쁘다.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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