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ove Stor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줌마 Jun 21. 2021

동견(犬)상련

나도 눈을 감아보았다.

유모차를 타고 가는 강아지와 보호자를 가끔 보게 된다.

예쁜 치마를 입은 시추가 유모차에 얌전히 앉은 채 산책을 하고 있다. 노령견을 키우는 처지에선 남의 일 같지 않지만 선뜻 사정을 물어보기는 그렇다.


"몇 살이에요?"

남편이 초로의 아주머니께 강아지 나이를 물으며 말을 건넸다. 남편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강아지 나이를 묻다니, 그런 성격이 아닌데 이상하다. 그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강아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아주머니의 강아지는 13살의 암컷 시추이며 유난히 산책을 좋아했었는데 얼마 전부터 발바닥이 부어올라 걷지를 못한단다. 엄청 귀엽고 얌전하며 그동안 건강했었는데 갑자기 눈도 잘 보이지 않고 조금만 걸어도 아파해서 유모차 산책을 하고 있단다. 이렇게라도 밖에 나오면 좋아하여 아침저녁으로 유모차를 끌고 나온다고 하셨다. 손주를 태우고 다닐 나이에 강아지를 태우고 다닌다며 남들은 웃지만 강아지를 키우지 않은 사람은 이 심정을 모른다며 우리에게 눈으로 동의를 구하는 듯하셨다. 내 입장에서는 13살이 부럽고, 유모차에  얌전히 앉아있는 것이 부럽고, 잘 걸을 수 있는 것이 부럽고,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는 것이 부러워서 격하게 공감하였다. 벌써 강아지 장례식장도 알아봐 두었다고 한다. 갑자기 닥칠 때를 대비해 미리 좋은 곳을 알아봐 두는 것이 좋다고 하셨지만 나는 왠지 꺼림칙하고 싫었다.


일면식도 없는 우리에게 저렇게 털어놓으면 위로가 될까?


우리도 사랑이의 산책을 위해 유모차를 구입했다.

집 뒤에 있는 산 밑으로 산책을 간다. 낯선 유모차가 싫은 사랑이는 곧 싫증을 내고 안아달라고 찡찡거린다.  

사랑이를 태우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사랑이를 보는 눈과 말이 부담스럽고 싫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곁눈질로 누워있는 사랑이를 살펴보는 사람도 있고 왜 누워있나? 개팔자가 좋다, 너는 좋겠다, 어디가 아프나? 나이 들면 다 아프다, 15살이면 오래 살았다고 말하는 등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건네는 사람도 종종 있다. 강아지를 길러보지 않은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며 이해하려 하지만 마음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산책을 다녔다. 사람들이 우리 사랑이가 아픈 것을 아는 것도 싫고 아픈 사정을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사랑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비치는 것이 싫었다.


강아지의 아픔과 이별을 준비하는 생각은 나와 다르지만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심으로 같이 걱정하고 위로를 해드렸다. 한참을 이야기를 하시고 우리가 건네는 말이 위로가 되셨는지 서로 강아지 잘 키우라고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주머니의 한 마디가 마음에 남는다.


"얼마나 답답할지 내가 눈을 감아 보았다니까"


나도 그랬다.

사랑이의 시력이 걱정되었을 때 나도 눈을 감아 보았었다. 표현방식은 정반대인 아주머니와 나였지만 마음만은 오롯이 강아지를 향해 있었다. 강아지를 아끼고 위하는 마음은 같았다. 모든 반려견주의 마음 또한 같을 것이다.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불편해했던 나를 반성했다.


지나가는 아주머니에게 왜, 어떻게 말을 건넸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아주머니의 눈빛이 내 말을 들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13살의 예쁜 시추가 건강하길,

아주머니와 오래오래 함께 하기를,

마음 모아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형아 태몽에 함께 온 강아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