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 1
2007년 11월 25일.
나는 서울의 어느 동물병원 케이지에 있었다. 내 옆에도 나와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은 잘 먹고 잘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내가 어디서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여기에 왜 있는지도 모른 채 유리창 너머로 사람들이 나를 구경하는 것이 싫었다. 사람들은 귀엽다며 인형 보듯 나를 보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무서웠다. 어떻게 할지 몰라 눈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전등 빛에 노출되어 있어 피곤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움직여보라고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는 일도 많다. 못 들은 척, 무섭지 않은 척 잠을 자다 눈을 떠도 아직도 환하다. 낮인지 밤인지 알 수가 없는 이곳이 싫다. 병원에 있던 사람은 어느 때가 되면 모두 집으로 간다. 나도 집이 있었을 텐데 저 사람들처럼 편안한 집으로 가고 싶다. 셔터가 내려진 건물 안의 적막함과 불빛 하나 없는 캄캄함이 또 무섭다. 동물병원에 있게 된 날이 며칠 째 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친구들을 보러 왔다.
귀엽다고 예쁘다고 하지만 선뜻 데려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얀 털과 예쁘장한 얼굴의 친구는 며칠 전 주인을 만나서 이곳을 떠났다. 그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가서 잘 살고 있으려나 걱정도 되었다. 나는 유난히 눈이 동그래서 사람들이 이쁘다고 말하면서도 까만 털이라 그런지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빠와 남매로 보이는 세 사람이 동물병원에 왔다.
나와 내 친구들을 예뻐라 쳐다보는 눈빛이 선하다. 호들갑스럽게 좋아하지도 않고, 움직여보라고 유리를 치지도 않고 조용히 웃으며 귀엽다고 쳐다보기만 하는 남매가 착해 보였다. 아빠로 보이는 아저씨도 괜찮아 보인다.
왠지 끌린다. 뭐라고 조용히 이야기하더니 문을 나선다. 뒤돌아보며 나가는 남매와 눈이 마주쳤다. 아쉬웠다.
조금 뒤, 다시 그들이 왔다.
나를 쳐다보는 남매의 눈빛이 반짝인다.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더 크게 더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았다.
"누나가 안고 가."
남동생의 말에 누나라는 사람이 나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나는 또 어디로, 어떻게 살 것인지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들의 선한 눈빛을 믿고 누나의 품에 포옥 안겼다. 그렇게 나는 서울의 어느 동물병원을 떠났다.
"엄마, 까만 요크셔테리어 데리고 가요. 태어난 지 50일 쯤 되었다는데 엄청 귀여워요. 까만 강아지 인형 같아요. "
집으로 가는 차에서 남동생이 전화를 했다. 아까 동물병원에서의 조용한 모습은 간데없고 흥분된 목소리로 크게 떠들었다. 아하, 엄마가 있었구나. 세 사람이 좋아 보이긴 하지만 엄마가 없는 집은 나를 잘 돌봐주지 못할 것 같았는데 엄마가 있다니 다행이다.
차 안에는 내가 잠자게 될 집, 울타리, 방석, 예쁜 밥통과 물통, 소변통, 소변 패드, 장난감 등 내 짐이 가득하다. 동물병원의 휑했던 케이지와는 비교가 안된다. 이제 나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겠구나, 내 가족이 생겼구나 해서 안심이 되기도 하지만, 아직 얼굴을 보지 못한 엄마라는 사람은 어떨까? 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대할까? 낯선 집, 낯선 사람들과 내가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생겼다.
처음 타보는 승용차라 멀미가 난다.
자꾸 인형처럼 예쁘다고 하는데 정말 나를 인형 취급만 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어지러움이 더해진다. 나는 살아있고, 예쁘다고 갖고 놀다 버리는 인형이 아닌데, 강아지이긴 하지만 내게도 마음이 있는데 내 마음을 잘 알아주고 마음을 나누는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나라는 사람이 주섬주섬 내 짐을 챙기고 나를 다시 조심스럽게 안는다.
집이 가까워 오고 있나 보다. 아직 만나지 못한 엄마, 그리고 세 사람, 나 이렇게 가족이 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