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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줌마 Jul 05. 2021

우리 집, 우리 엄마가 생겼어요.

나는 사랑이, 성 사랑입니다.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새로운 가족인 나를 환영하는 것 같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래도 여전히 떨린다. 누나 품에 안긴 내 몸을 바짝 웅크린 채 집으로 들어섰다.


"엄마, 귀엽죠? 한 번 안아보세요."

"어, 아니......."

"괜찮아요. 안 무서운데"

"아직은......."

어라,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 나를 데리러 올 때 엄마라는 사람이 오지 않은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날 예뻐하는 게 아니었구나. 이제 이 집에서 어떻게 살지? 왈칵 서러움이 밀려왔다. 두려움에 서러움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멘붕이다. 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린다.


남매는 나를 엄청 좋아하였지만 나의 떨림을 눈치채지 못했다.

바닥을 콩콩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서로 자기를 좋아하는 거라며 신이 났다. 정말 나는 인형 같은 존재일까? 나의 기분은 아랑곳 않고 본인들 기분에 들떠 나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고 여기저기서 부르며 내가 쳐다보면 좋아라 웃는 얼굴이 선하다. 덕분에 떨리는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지만 엄마라는 사람은 여전히 불편하다.


딸아이가 어릴 때부터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말하였지만 워킹맘인 나로서는 고등학생 중학생 둘을 키우는 것도 만만치 않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나는 강아지가 무섭고 싫다. 강아지에게 물린 경험도 없는데 그냥 무섭다. 강아지를 키우는 선배가 자주 귀여운 사진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하여 보는 것은 귀엽지만 내가 직접 만지고 키우는 것은 싫다.


딸이 늦은 사춘기로 학교에 갔다 오면 방에 들어가서 잘 나오지 않고 잘 웃지 않는다.

공부하느라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신경이 쓰인다. 움츠려 든 딸의 마음을 편하게 웃게 해주고 싶어 궁여지책으로 강아지 키우는 것을 허락하였다. 허락은 하였지만 동물병원에 함께 갈 만큼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도 새 식구가 온다기에 현관문을 열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동생이 가족을 소개해주었다. 내 이름은 사랑이이며 사람 좋아 보이는 키 큰 아저씨가 아빠, 나를 무서워하는 좀 까칠해 보이는 아줌마가 엄마, 나를 선택한 여고생이 누나, 그리고 제일 어린 남동생이 형아이다. 형아는 난생처음 형아가 되어서 좋은지 자기가 형아라고 몇 번을 말한다. 온 가족이 나를 둘러싸고 나만 쳐다보고 있다. 엄마도 나를 안아주지는 못하지만 아기 보듯 조심스레 만져보기는 한다. 동물병원에서의 첫 만남과 나를 예뻐하는 태도를 보아 나를 정말로 많이 사랑해줄 것 같은 가족이다.


오늘 하루는 너무 힘들다.

동물병원에서 몇 차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었고 마지막으로 새 가족을 만났다. 동물병원을 떠나는 것은 홀가분하고 좋았지만 새롭게 살아가야 하는 날들에 대한 떨림과 새 가족을 만나는 긴장감으로 몸과 마음이 피곤하다. 가족들은 여기저기서 "사랑아"를 외치고 이리저리 집안을 구경시켜 주느라 나를 가만 두지를 않는다. 엄마는 형아와 누나에게 애초에 약속했던 것처럼 나의 응가와 쉬를 치우는 일을 꼭 해야 한다고 또다시 약속을 받아냈다. 이제 슬슬 잠도 오고 배도 고프다.


내 자리는 현관 바로 앞 거실 구석으로 정해졌다.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밥그릇, 물통, 방석 등이 있고 나머지 공간엔 배변패드가 쫙 깔려있다. 울타리 안에서 밥 먹고 쉬 싸고 다 하면 되는 것 같았다. 낯설고 피곤한데 저녁을 먹고 나니 잠이 밀려왔다.

"사랑이 잔다. 조용히 들어가자."

"엄마, 방에서 데리고 자면 안 돼요?"

"안돼."


한참을 자다가 낯선 소리와 불빛에 눈이 떠졌다.

동물병원에서는 조용한 적막감과 캄캄함이 무서웠는데 여기는 밤새 불빛이 새어 들어오고 차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무서움이 밀려온다.

나는 이제 겨우 50일 정도 된 아기 강아지이다. 낯선 곳에서의 처음 만난 가족들과의 만남으로 지쳐 정신없이 잠이 들었지만 자다가 눈을 떠보니 또 다른 낯선 밤의 풍경에 겁이 났다. 동물병원에서는 옆 케이지에 친구들도 있었는데 이 집엔 친구도 없고 모두들 각자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 다시 잠을 청하지만 잠이 쉬이 들지 않고 무서움은 여전하다. 나의 무서움을 생각하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서운한 마음도 생긴다. 내 이름은 사랑이 인데 사랑받으며 살 수 있을까?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울타리 안에서 자다 깨다했다.


"어머, 사랑이 아가 벌써 깼구나. 밤새 잘 잤니? 안 무서웠니?"

어! 이 엄마가 어제 그 엄마 맞나? 내가 무섭다더니 나를 조심스레 안아 들며 내게 인사를 한다.

방에 데리고 자면 안된단고 단칼에 자르더니 밤새 내가 무서울까 걱정했나보다.

어젯밤의 섭섭함과 무서움이 사라졌다.


우리 엄마가 생겼어요.

까칠해보이지만 나를 걱정해주는 엄마가 생겼어요.

우리 집에서 행복하게 살 것 같아요.


나는 사랑이, 성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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