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ove Stor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줌마 Aug 02. 2021

'나 홀로 집에' 착한 주인공

오후 다섯 시의 행복을 기다리며

집에 온 지 사흘 만에 나만 두고 모두 어딘가 가버렸다.

동물병원에 있을 때는 옆에 친구라도 있었는데 여긴 완전히 나 혼자이다. 큰 집에 혼자 있으려니 무섭다. 모두 어디를 간 걸까? 빨리 올게 라며 나선 가족들은 언제 오려나? 잘 놀고 있으라고 했는데 뭘 해야 하나? 무섭고 막막한데 잠이 온다. 무서움과 지루함을 달래기에는 잠을 자는 게 차라리 낫다. 이건 동물병원에서 터득한 나의 생존전략이다. 이렇게 유용하게 다시 쓸 줄이야 ㅠㅠ


한숨 자고 일어났다.

그래도 아직 밖은 훤하고 아무도 오지 않는다. 내 자리 옆에 밥도 있고 물도 있다. 엄마가 줄 때보다 입맛은 덜하지만 조금씩 먹고 있다 보니 다시 잠이 온다. 또 잤다.



사랑이를 혼자 두고 출근을 해야 한다.


아이들이 강아지를 키우자고 할 때부터 가장 고민했던 일이다. 

어린 아가를 데려와서 하루 중 9시간을 혼자 있게 하는 것이 미안했다. 강아지가 혼자 있으면 거의 잠을 자니 괜찮다고들 하지만 양육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없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뿐 아니라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강아지가 힘들어지는 최악의 경우까지 걱정하다 보니 죄스러움마저 들었다. 그러다 보호자마저 힘들어져 결국은 파양한 친구의 경험담을 들은지라 더욱 불안하였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벌어진 일이니 어떻게든 사랑이의 불안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첫째, 사흘 안에 최대한의 사랑을 느끼게 하기

       다른 가족들은 강아지를 겁내지 않고 안아주고 하니 이건 엄마인 나만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하였                 지만  특별히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 몇 시간 만에 사랑이는 내 자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행동반경의 최대화로 자유롭게 지내기

       혼자 지내는 것이 불안한 경우 온 집안을 초토화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울타리를 치지 않았                  다. 집안을 돌아다니다 보면 불안감도 잊고 집에서 노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셋째, 대소변의 부담을 최소화시키기

       집안 곳곳에 소변 패드를 깔아 두어 대소변으로 인한 부담을 덜어주고자 하였다.


착하고 똘똘해 보이는 사랑이를 믿고, 미안함 가득한 채 출근을 했다.

 



쉬가 마려워 잠을 깼다.

불안한 마음에 물을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울타리 안에 소변 패드가 있어 거기에 누우면 엄마가 이뻐했는데 지금은 울타리도 없다. 어떡하지? 돌아보니 내 자리 옆에 소변 패드가 있다. 성공~


자다 깨다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잠도 안 오고 잠이 안 오니 무섭다. 울타리가 없는 것을 보니 잘 놀고 있으라는 말이 생각났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는 것 같다. 슬슬 집안을 돌아다녀볼까? 그럼 시간도 잘 가겠지?


안방을 나오니 엄마 화장대와 옷장, 컴퓨터 책상이 있는 방이다. 

어제 가족들과 함께 이불 깔고 놀았던 곳이다.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이불에 쉬를 쌌었는데 엄마는 혼도 내지 않고 온 식구가 귀엽다며 웃었다. 식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잠시 혼자 있는 것을 잊게 되었다.


방 한쪽에 소변 패드가 보인다. 아하 ~

방과 연결된 화장실 앞에도 아하~

각 방마다 아하~

거실에도 식탁 밑에도 아하~


엄마는 나를 두고 가면서 걱정이 많았나 보다.

배고플까 봐 밥과 물도 준비하고 쉬 쌀까 봐 소변 패드도 구석구석 깔아놓은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잘 놀고 있으면 엄마가 빨리 올게라는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조금 덜 무서워졌다.


그래도

하루 종일 현관문만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빨리 오지 않았다.


삐삐삐.

드디어 엄마가 왔다.

"사랑아, 잘 있었어? 밥 먹었어? 미안해, 무서웠지, 엄마가 정말 미안해."

"우리 사랑이, 쉬도 잘했네 아유 이뻐라."


저녁을 먹고 나는 엄마만 따라다녔다.

엄마도 나만 따라다녔다.


"사랑이 잘 놀고 있어, 엄마가 빨리 올게"

엄마는 아침 8시에 출근하여 정확히 오후 5시 이전에 퇴근을 하였고 나는 엄마를 기다리며 잘 놀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서로 약속을 지켰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며 나는 '나 홀로 집에'의 착한 주인공이 되었다.


오후 다섯 시쯤의 삐삐삐.

엄마가 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리이다.


오후 다섯 시가 되면 나는 더 행복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다 말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