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나는 우리 집의 막내, 아가가 되었고 가족들이 나를 정말 예뻐하고 충분히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다. 엄마가 빠빠 줄게, 아빠가 안아줄까? 는 나의 든든한 빽이 되었고 누나와 형아의 장난스러운 행동은 정말 재미있다. 동물병원에서의 외롭고 막막했던 감정은 싸악 사라져 버렸다. 이제 꽃길만 걸을 것 같다.
두 번째 맞는 밤,
거실 구석이 아닌 방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잤다. 동물병원의 첫 만남에서 느꼈던 사람 좋아 보이던 인상이 틀리지 않았다. 아가인 나를 혼자 자게 한 것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하루 반나절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금사빠처럼 나에게 빠져들었다고나 할까 ㅎㅎ.
말똥말똥 꼬물꼬물 사랑이의 몸짓이 이쁘다.
손바닥에 올라갈 만큼 작은 몸으로 동물병원 케이지에서 며칠을 보냈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 우리에게 와서 밥도 잘 먹고 쉬야와 응가도 얌전히 잘한다. 다행이다. 첫 만남에서 바로 안아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엄마라고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예쁘기도 하지만 그것도 마음 아프다. 진짜 엄마의 품을 언제 떠났는지, 엄마의 품을 알기나 하는 것인지, 혹시 엄마품의 따뜻함을 기억하고 있다면 엄마를 얼마나 그리워할까? 내가 더 잘해주어야지.
11월 말의 날씨에 거실 구석에 사랑이를 재우는 것이 편치 않다.
아직 아가인데 감기 걸릴까 걱정도 되고 밤새 무서웠는지 이른 새벽 깨어있던 것도 맘에 걸린다. 말똥말똥하지만 겁먹은 듯한 눈빛이 맘에 걸린다. 동물병원에서 알려준 대로 따로 재워야 하는 게 맞겠지만 데리고 자면서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가릴 수 있게 습관을 잘 들이면 되지 않을까? 천방지축 1학년 꼬맹이들도 가르치는데 작고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 제대로 가르치지 못할까 싶었다. 사랑이의 눈빛을 보니 착하고 똘똘해 보인다. 하루 반나절이지만 소변 패드에만 쉬야와 응가를 하는 걸 보니 제법 눈치도 있다. 사랑이의 집을 안방으로 옮겨버렸다. 강아지 입양을 결정하는 순간부터 많은 생각으로 쉬이 잠들지 못했고, 어제는 사랑이를 혼자 재워 불편한 마음으로 잤는데, 오늘은 사랑이와 함께 잘 잤다.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동물병원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사실 어제도 이런저런 생각에 잠 한 숨 제대로 못 잤었다. 비록 울타리가 쳐진 상태지만 오늘은 엄마 아빠와 한 방에서 잠을 자니 하나도 무섭지도 않고 형아와 누나보다 내가 더 사랑받는 느낌이 들었다. 자는 중간중간 엄마는 내가 추울까 봐 이불도 덮어주고 울타리를 넓게 펴서 소변 패드도 더 많이 깔아주었다. 잠에 빠져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엄마 아빠는 작은 소리로 두런두런 계속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이제 50일 된 강아지이니 앞으로 내가 접종해야 할 예방접종이며, 해야 할 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등에 대해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내용들이었다. 나를 위한 마음을 느끼며 잠을 자니 정말 행복하였다.
오늘 아침은 어제와 다르다.
어제 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엄마는 내 밥을 챙겨주고, 아빠는 일찍 출근을 했다.
"사랑이, 잘 놀고 있어, 아빠 갔다 올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따뜻하다. 기분이 좋다.
형아와 누나도 서둘러 학교를 갔다.
"사랑이, 잘 놀고 있어. 학교 갔다 올게." 장난감을 던져주고 간다. 기분이 좋다.
이제 엄마와 둘이 남았다. 오늘은 엄마가 나를 몇 번 안아줄까 기대를 하며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다.
이상하다.
엄마가 바쁘게 세수를 하더니 이내 외출복 차림의 옷을 입는다.
"사랑이, 잘 놀고 있어. 엄마 빨리 갔다 올게." 내 그릇에 밥을 한 번 더 넣어준다. 까까도 준다. 먹을 것을 더 주었는데도 기분이 별로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몇 번이나 돌아보고 잘 놀고 있어를 몇 번 반복하더니 엄마가 현관문을 나섰다.
엄마가 없어졌다.
좋다 말았다.
꽃길 견생은 일장춘몽일까?